[교사등대5강 강의스케치] '분노'에 길을 묻다...
이번 강의는 전남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님을 모시고 “학벌 없는 세상을 말한다.”는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김상봉 교수님은 칸트를 연구한 철학자이시지만, ‘학벌없는사회’라는 시민단체 활동과 최근엔 기업에 대한 날선 비판 등의 활발한 사회 참여로도 유명한 분이시지요. 교수님은 요즘 ‘혁신학교’ 등을 통해 공교육이 변화를 시도하지만 학생들의 운명은 변하지 않는 현실이고, 학생들의 문제는 나날이 나빠지는데 누군가는 타개책을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냐며 운을 띄우셨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경험하고 연구했던 것을 기반으로 우리가 이 시점에서 특별히 고민해야 할 것과 타개해야 할 것을 짚어 주셨습니다.
교수님은 먼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으로 건전한 교육철학을 짚어주셨습니다. 교육은 사람됨의 과정이며 누구도 자기가 자기를 교육할 수는 없고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교육받을 수 있는데요, 따라서 교육의 본질은 ‘만남’에 있고, 너와 나의 만남을 통해 내가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만남은 아직 상대적으로 수동적인 주체와 능동적인 주체의 만남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비대칭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교수님께서 이러한 비대칭성에서 교육의 숭고함과 위험이 비롯된다고 보셨는데요. 문제는 현실에선 이러한 만남을 시장에서의 만남처럼 동등한 것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시장에서처럼 학교도 경쟁체제로 몰아가는데, 교수님께서는 분명하게 교사가 장사꾼이 아니듯이 학생도 소비자가 아니라고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학교와 시장에서의 인간관계가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학교를 시장화 하는 것은 교육의 본질을 거스르는 처사로서, 필연적으로 교육의 파탄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교육적 만남이 비대칭성이라는 점에서, 교육자가 악용하여 피교육자를 세뇌시킬 위험이 생깁니다. 교육자가 교육 내용을 조작할 수 있고, 교육이라는 이름하에 본인이 원하는 모양으로 학생들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것인데요. 이런 염려를 하시면서 교사는 학생이 어떤 사람이 되도록 작용을 행사하게 되고 또 행사해야 하지만,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미리 규정하는 것은 월권이며 이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피교육자가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에 대해 남이 결정해 주어서는 안 되고, 교육이 과도하게 개입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를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의 삶을 스스로 형성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은 자동적으로 생겨나는 능력이 아닙니다. 따라서 교육은 학생이 스스로 자기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확장시켜나갈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한국의 경우 공교육, 제도교육은 지나치게 학생들을 규정하여 문제가 되고, 대안교육은 학생들에게 자유를 주긴 하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돕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공교육 상에서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갈수록 규제가 심해지고 자유시간이 줄어들고, 학교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시키는 일 이외의 다른 일을 찾아서 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이런 상태로 사회에 나오게 되는데, 어른이 되는 연습도 청소년 시기에 하지 않으면 수동적·정형적 사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교육이 성숙하고 발전한다는 것은 학생의 입장에서 볼 때 자유와 주체성이 확장되는 것인데, 우리는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지요.
교육 철학에 대한 말씀을 마치시고 짧게 역사에 대해 나누셨는데요, 한국의 근대적 공교육은 식민지 지배와 함께 기초가 놓였다는 점을 언급하셨습니다. 한국 최초의 근대 공교육이 신민, 노예를 기르기 위한 교육으로 시작되었고, 현재도 자본의 노예로 기르기 위해 학벌을 강조하며 교육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셨습니다. 학벌주의가 한국 사회에서 유독 기승을 부리는 까닭은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주체성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아픈 말씀도 덧붙이셨습니다. 그러면서 교수님은 시험 성적이 좋은 사람이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미신에서 벗어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시험은 어떤 일을 하기 위한 소극적 조건을 측정할 수는 있어도, 그것 자체가 일의 탁월함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지요. 한국의 학교는 학생들을 시험선수로 기르는 것 외에 다른 어떤 적성과 소질의 계발도 해주지 못하고, 대학에 들어와서야 자기의 적성과 소질이 무엇인지 찾아야 하는데 상황인데, 뒤늦게 찾는 것이 제대로 찾아질지도 의문이지만, 그것을 찾는다 하더라도 다른 나라의 청년들보다 훨씬 뒤늦게야 자기 고유의 적성을 계발하기 시작하게 된다고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우리의 상황에 대해서 절망하려는 찰나, 이어서 우리에게 희망적인 말을 해 주셨는데요. 현재 한국 교육이 학벌경쟁의 점정에 있다는 점, 곧 정상에 도달한다는 것은 내려오는 일만 남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시험의 공정성과 객관성이라는 신화, 학벌경쟁을 통한 계급이동의 가능성의 유혹, 다시 말해 입시경쟁에서의 승리를 통한 개인적 출세의 유혹이 학벌체제를 다른 어떤 것보다도 효율적인 체제 유지의 수단이 되게 만들어 주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먼저 학벌 경쟁에 참여하는 학생의 수가 임계점에 달해 이제는 줄어드는 일만 남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가 오기 전, 과도기에 살고 있는 지금 현실은 참 힘들고 견디기 힘들 것이겠지요. 그래도 지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학생들 자신이 학벌사회에서 병든 교육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타파하기 위해 나서게 할 수 있는가에 맞추어 교사나 학부모가 아니라 학생들 자신이 문제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더불어 교사들에게도 몇 가지 조언을 주셨는데요, 먼저 돈은 학원에서도 벌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교사를 직업으로서 생각하지 않을 것, 자기 학생을 위해 좋은 것에만 잘못된 열심을 내기보다 전체 사회의 입장에서 생각할 것, 교육활동 그 자체가 교육운동이어야 하니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 학생들을 설득하는 것에 힘쓸 것, 그리고 무모한 말이고 아무 변화를 일으키지 못 하는 것 같아도 ‘좋은 대학 간다고 해서 대접 받고, 좋지 않은 대학 간다고 해서 대접받지 못한다는 것은 잘못되었다.’라는 것을 끊임없이 말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이 외에도 어떤 일이 있어도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말고, 너도 하면 된다고 학생들을 기만하지 말고, 학생의 점수에 따라 기계적으로 원서를 쓰게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사 자신이 문제집만 보지 말고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언제라도 학교를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교단에 서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3시간 남짓의 긴 강의시간동안 치열하고도 깊은 문제의식을 보여주신 김상봉 교수님을, 그렇게 견인해가는 힘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교수님은 ‘분노’를 말씀해주셨습니다. 분노는 증오와 다르고, 개인을 미워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공적 거부감’ 과 같은 것인데, 이는 열정으로 말미암아 생깁니다. 교수님은 열정이란 뜻을 담은 단어 중 가장 뜻을 잘 담았다고 생각하는 단어가 독일어 ‘leidenschaft’라고 하시며 뜻을 풀이해주셨습니다. ‘leiden’은 동사 suffer에 가장 뜻이 가깝고, ‘chafts’는 보편화하는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즉 보편화된 고통, 세상의 고통이 자기의 고통이 되는 것이 열정이라는 것이지요. 보편적 고통은 끝이 없고 마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에 감수성을 가진 아이들은 끝끝내 후줄근해질 수 없다고, 고통의 감수성이 보다 더 높은, 밝은 빛을 향해 스스로 분투하고 상승하게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학생에 관한 일이라면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자세로 해직 교수가 되었지만, ‘교수가 되려고 학문한 것은 아니었다’는 단 한 가지 생각으로 후회하지 않았다는 김상봉 교수님의 고통, 그 고통이 만들어낸 열정, 결기가 강의장을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열정이 없는 한국 아이들을 볼 때마다 미치겠다는 교수님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그런 열정을 끌어올리고 있는가 돌아볼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그 고통을 적당히 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고통 속에서 치열하게 사는 이의 삶이 얼마나 많은 고통의 문제에 응답하고 있는가, 여러 생각들에 사로잡힙니다.
교사등대지기학교 6강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실장님이신 김승현 선생님이 “입시사교육 ZERO, 그 해답을 찾다”는 주제로 우리가 어떻게 입시를 넘는 교사로 살 수 있을지 강의해주실 것입니다. 입시를 넘는 교사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기대해보려 합니다. 6강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