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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걱정없는세상/회원의 이야기

고백⑥ 저는 훌륭하진 않지만, 부끄럽지 않은 아빠라고...

이 글은 2012년 9월-10월 두달동안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선행교육금지법 제정을 위한 성찰과 고백의 광장, 시민 문화제>에서 낭독된 글입니다.


저는 보기에는 30대 총각처럼 보이지만, 세아이를 둔 40대의 아빠입니다. 우리 세아이들을 잘 키워서 그야말로 훌륭한 사람을 만들어 보겠다는 욕심은 세상의 어떤 부모보다 더 큽니다. 자라면서 몸도 건강했고, 유난스럽지 않았던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초등학교 입학하면 학교 적응도 잘 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큰아이가 유치원을 마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 그 예상은 크게 빗나갔습니다. 아이는 아침마다 학교에 가기 싫다고 우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영문도 모르고 아이를 야단쳐서 반 강제로 등교를 시켰습니다. 학기초라서 그러려니 했던 겁니다. 그런데 한 두달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아침마다 등교전쟁을 벌였습니다. 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아이와 보내려는 엄마의 실랑이가 끊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담임선생님에게 약간 문제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년을 앞둔 나이 많은 여자선생님이셨는데, 만사를 귀찮아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교실 내 환경미화도 신경 쓰지 않았고, 아이들의 수업준비나 진행에도 열의가 없었습니다. 음악시간에는 뽕짝을 틀어놓고 따라 부르게 하고, 당신은 학교 업무처리를 위해 컴퓨터에 앉아있기도 했으며, 미술시간에 사용해야 할 크레파스는 일 년 동안 한 번이나 사용했을까 크레파스 끝은 거의 그대로였습니다. 큰아이는 타악기 셋트를 한번 열어서 썼다고 투덜거렸습니다.


학교는 학교대로 방과 후 교실에 영어 수학을 집중적으로 반으로 늘리면서 농구반도 사라지고 창의교실들이 사라졌습니다. 교장선생님은 그것이 당연한 현상으로 생각하셨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아주 좋은 교육을 시킨다고 자랑하시기까지 했습니다. 우리 부부에게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교육에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영어, 수학학원에 보냈습니다. 가정학습지가 뭐가 좋은지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등대지기학교를 등록하게 되었고, 8주간의 현장강의를 쫓아다니며, 아이의 미래에 대한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비겁하게 살지 말라고 하면서, 공교육의 넘지 못하는 벽앞에 사교육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비겁한 부모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용기를 내어서 학원을 끊(?)었습니다. 학원을 끊는다는 것은 마치 큰아이에게 연결되어 있는 유일한 미래와의 유일한 밧줄을 끊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 여간 갈등을 했던 것이 아닙니다.


설상가상 .. 큰아이는 영어공부를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한 번도 마다하지 않고 학원에 다녔고, 발음도 잘 굴렸던 터라 영어학원마는 그냥 다니게 하고 싶었습니다. 더군다나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세계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아이로 자랄 것을 기도해왔기 때문에 영어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21세 국제화에 걸맞는 아이로 키우려는 부모의 마음이 사교육과 무슨 상관이 있겠냐 싶었습니다.


이런 갈등을 할 무렵 둘째 딸아이는 유치원에서 한참 한글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5살이 되어서 자기 이름을 쓰기 시작하더니 .. 각종 과일 이름을 쓰는 겁니다. 저는 그 아이가 천재인줄 알았습니다. 더 좋은 교육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꿈꾸는 가정] 문패를 당당히 두 번째로 달면서, 이 모든 욕심을 내려놓았습니다. 문패를 보면서 ... 자연스럽게 그리고 정말 아이들 스스로가 하고 싶을 때까지 부모가 억지로 나서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우리집 아이들은 걱정스러우리만치 자유스럽게 지냅니다. 물론 학원이나 학습지, 학교에서 하는 방과후학습에 동원(?)시키지 않습니다.


지금도 아이들의 교육환경은 나아진 것은 없습니다. 환경은 바뀌지 않았지만, 부모인 제가 아이 성적에 대한 욕심을 버리니, 아이들이 행복해합니다. 사교육을 시키지 않으니, 가계도 비교적 쪼들리지 않게 살고 있습니다. 덕분에 재작년엔 일본에, 작년에는 제주도에, 올해는 필리핀에 가볼 생각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여행, 우리와 다른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경험시키는 것 우리 가정의 유일한 사교육입니다. 몇 일전에는 가족모두가 양평으로 캠핑을 다녀왔습니다. 캠핑카를 빌려 강변에서 숯불에 고기를 구어먹고, 좁은 캠핑카 안에서 참참참을 하면서 배꼽이 빠져라 웃어댔습니다. 그리고 그날 올려다본 양평의 밤하늘은 도시에서 볼 수 없었던 수많은 별들로 가득했습니다.


이처럼 남들보다 자유분방하게 키우고 있는 탓에, 딸아이는 학교를 마치면 온 동네를 휘젖고 다니며 놉니다. 지저분해진 옷에 새까만 얼굴로 집에 들어오는 일상의 모습을 보노라면 .. 솔직히 아직까지도 불안한 마음이 저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확신합니다. 수학문제 하나를 더 풀고, 영어 단어 한 개를 더 외우는 것으로 미래를 준비시키는 것보다, 보다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행복하게 뛰어노는 것이, 미래를 위한 이만한 준비가 없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기대하는 것보다 더 훌륭한 사회인이 되어서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리고 자부합니다. 나는 훌륭하진 않지만, 부끄럽지 않은 아빠라고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