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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걱정없는세상/회원의 이야기

문화제고백③ 출발선을 지키고 아이의 좌절을 어루만져주고 싶습니다

이 글은 2012년 9월-10월 두달동안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선행교육금지법 제정을 위한 성찰과 고백의 광장, 시민 문화제>에서 낭독된 글입니다.


초등 2학년 딸을 둔 엄마입니다. 저는 요즘 분위기와는 다르게, 무슨 믿는 구석이 있는지 간덩이가 부은 씩씩한 엄마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1학년 때는 그래도 80점, 90점 맞아오더니 2학년 수학 첫 단원평가에 반띵을 해 왔습니다. 사실 첫순간 놀라기는 했습니다. 내가 받아본 적은 없는 점수였기에. 또 야무지고 똑똑하다는 소리 들어온 딸이기에. 하지만 이내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런 순간에 여러분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2학년 중반 이상을 지나온 지금, 계속 시원찮은 수학시험지를 들고 올 때마다 생각합니다. ‘지금 이 단원에서 요구하는 기본만 알고 있으면 된다. 긴 문장의 응용문제는 독해력이 필요한 것인데 그것은 잘 자라고 있는 아이라면 몇 개월만 지나도 저절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집에서 틀린 문제 풀어볼 때는 모르겠다고 그러다가도 한 학기 지나면 ‘내가 왜 이런걸 틀렸지?’합니다. 이해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조금씩 쌓이는 것이지 수학문제를 많이 풀어본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잖아요. 수학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 이해력 문제이니까요.


그런데 여기다 이제 초등 저학년인 아이를 수학을 못하는 아이로 낙인찍는 것은 매우 억울하고 불합리합니다. 다 경험하셨다시피 아이들은 아주 신기하게도 부모의 불안을 금방 알아채잖아요? 스스로 좌절하게 될겁니다. 한술 더 떠서 그 불안감에 선행학습을 시키기까지 합니다. 선행학습은 예습과는 다릅니다. 예습은 다음에 배울 내용을 둘러보며 호기심을 갖게 하는 역할을 하는데까지입니다. 그 누구도 예습을 경쟁에서 이기려는 목적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선행학습은 그저 출발선에서 한 발이라도 나가있어 결승점에 빨리 도달하려는 목적뿐입니다.


아이들이, 아니 사람이라면 꼭 갖고 있어야 할 것이 호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른도 똑같은 얘기를 두 번째 들을 때엔 다 아는 얘기라고 시큰둥해하지 않습니까? 사실은 제대로 아는 것도 없이 말이지요. 사교육을 통해 이미 한 번 들어버린 내용을 학교에서 되풀이 할 때, 과연 아이들은 내가 아는 것이 나왔다고 기뻐하며 눈을 반짝거릴까요?


제 아이가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시더군요. 지원이는 모를 때엔 갸우뚱거리고 이해가 될 때는 아하~하면서 좋아한다고. 그래서 수업시간에 지원이가 기준이 되어 반 아이들의 이해정도를 아신다고요. 저는 그 말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지원이는 다 잘하네요’ 이런 얘기보다 훨씬 듣기 좋았습니다. 새로운 것을 알았을 때 기쁨을 느끼고 모를 때엔 알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얼마나 예쁩니까. 그것도 학교에서 그런 모습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제 교육관이 잘못되지는 않았다고 자부했습니다.


저는 영어는 3학년 공교육과 함께 시작하겠다고 굳게 다짐했기에 아이가 어릴 때보다도 더 영어 걱정이 안되는 이상한 엄마입니다. 다른 아이들 다 겪는 영어 스트레스 없이 지내다가 학교에서 시작하면 얼마나 재미있어할까 설레기도 합니다. 제가 교육 출발선을 지키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도 공정한 사회에 대해 학습해 갈거라고 확신합니다. 


공부를 잘하고 싶지 않거나, 어른들에게 사랑받고 싶지 않은 아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넘어져서 까지고, 아프고, 자책하는 아이에게 ‘그럴 줄 알았어. 내가 뭐라고 그랬어. 넌 맨날 그래.’ 이런 말을 하여 더 아프게 하는 건 항상 부모입니다. 엄마까지 아이를 경쟁에서 이기도록 채찍질하지 말아주세요. 아이는 갈 곳이 없습니다. 장차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될지도 모를 아이를 엄마의 불안으로 가두지 말아주세요.


감히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지원이 앞에서, 다정한 엄마가 되어주자 약속합니다. 바깥에서 받아온 좌절의 경험을 씻어내고 어루만져주는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그런 안정감에서 아이는 좌절했다가도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길러 갈 것입니다. 부모의 역할은 이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