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개혁이 안되는 이유 1


언어는 세계를 보는 창이라고 했던가. 이 말은 만일 우리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세계를 볼 수 없다는 말임과 동시에 언어가 사물을 정확히 비추지 못할 경우에도 세계를 바로 보지 못할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필자는 우리나라 교육이 개혁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로 우리가 사용하는 교육용어가 교육현실을 정확히 비추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오고 있다. 만일 교육용어가 교육현실을 정확히 비추어주기만 한다면 지금처럼 교육이 얽혀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교육개혁을 해야한다는 말을 사용한지 20년이 넘었다. 노태우정권에서 교육개혁심의회를 구성했었으니까 교육개혁의 필요성을 느낀지는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교육개혁을 논하고 있으니 사실상 교육개혁이 지지부진하다는 반증이 되기도 할 것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교육개혁이 필요없다거나 교육개혁이 이미 되었다거나 가벼운 정도로 보완하면 되지 요란하게 교육개혁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아마 그래서 교육개혁이 답보상태에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간에 필자는 교육개혁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고 그런 입장에서 안되는 이유를 찾아보고자 한다. 교육개혁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서는 다루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교육개혁이 안되는 첫째 이유로 교육언어의 부정확한 사용을 들고 싶다. 교육개혁적 용어들이 부정확하게 사용된다면 그런 용어들이 교육현실을 왜곡되게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용어들 중 <입시>, <평준화>, <학벌주의>에 대해서 먼저 검토해보고자 한다.


사람들은 <입시>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사용하는데 그 의미는 대학입학제도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입학제도와 입시는 차이가 있다. 대학입학제도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절차를 의미하지만 입시는 그런 절차 중의 특이한 한가지 형태를 나타내는 용어일 뿐이다. 다시 말해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시험보아 그 성적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는 말이다. 만일 대학에 입학하는 절차에 공개경쟁시험이 없고 그 성적에 따라 대학에 입학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입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주 쉬운 예로 <미국의 입시> 운운하는데 미국에서 대학에 입학하는데 공개경쟁시험이 없는 이상 입시라는 말을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보는데 자꾸 <미국의 입시>운운하고 말하니까 미국에서 대학에 진학하는데도 시험이 있는 걸로 오해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주위에 미국에서 대학을 이수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데 그 누구도 공개경쟁시험을 본 적이 없고 점수와 석차도 본 적이 없으며 시험본 날자도 없고 장소도 없고 시험문제지도 본 적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입시가 있다면 그럴 리가 없는 일이다.


이처럼 입시제도가 없는 미국의 대학입학제도를 자꾸 <미국의 입시>라고 표현하고 우리의대학입학제도도 <입시>라고 표현함으로서 대학입학제도를 바로 볼 수 없게 하는 언어의 부정확한 사용은 결국 우리나라 대학입학제도의 개혁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둘째로 <평준화>에 대해서인데 우리나라는 68년도에 중학교 평준화를 시행했고 74년도에 고등학교 평준화를 시행했으며 한동안 평준화는 크게 문제시되지 않았는데 언제부터인가 평준화가 도마위에 올랐다.


평준화가 의미하는 바는 두가지로 갈리는데 하나는 시설의 평준화이고 다른하나는 실력의 평준화이다. 68년도와 74년도에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평준화시킨 것은 의심의 여지없는 시설의 평준화이다. 공립학교간의 평준화는 도시와 시골의 균등화를 추구한 것이고 공립과 사립간의 평준화는 사립학교에 대한 지원으로 해결했다. 그러니까 도시건 시골이건 공립이건 사립이건 중학교는 중학교대로 고등학교는 고등학교대로 시설과 교원의 보수를 균등화했다. 이것이 평준화인데 어느 틈엔가 평준화가 실력의 평준화로 전이되었고 그 후에는 실력의 상향평준화니 하향평준화니 하면서 다투고 있다.


학교공부에서 실력의 평준화란 성립하지 않는다. 예컨대 모두에게 똑같이 천자문을 가르쳐도 실력이 들쑥날쑥하는게 학교 공부다. 누구는 하나를 가르쳐도 열을 알고 누구는 열을 가르쳐도 하나밖에 모른다. 공부란 그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교육이 평준화덫에 걸려 국가경쟁력이 퇴보하고 있다는 트집아닌 트집으로 평준화를 허물려고 하고 있다.  그것은 교육과정의 획일적 운영을 말하는 것이고 그런 점을 비판해야지 시설평준화를 허물어서야 말이 되지 않는다.


모두다 세금을 내는 국민의 이세라고 한다면 그리고 국가에서 준비한 시설에서 교육받게 한다면 시설기준이 같거나 비슷해야 맞지 지나치게 시설에서 차이가 나서는 안된다. 도시와 시골의 차이가 없어야 함은 물론이지만 국공립과 사립사이에도 지나치게 차이가 나서는 안된다. 사립중고등학교가 국가의 지원을 받지 않는다면 국공립학교와 시설에서 차이가 나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국가의 지원을 받으면 국사립간에 같거나 비슷해지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사립중고등학교 시설이 국공립만 못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금전적 지원을 하면서 평준화를 시행했지만 강제성을 띈 점이 있어 내내 불만이 쌓인 것처럼 평준화해제론자들은 말하고 있지만 이제라도 국고지원을 받기로 하면 국공립과 시설에서 평준화를 이루고 받지 않기로 하면 차이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이때 중등교육의 (실력의) 평준화 운운해서는 안되고 국가의 책임과 권한 범위내에 들어오면 (시설의) 평준화를 유지하고 그 범위내에 들어오지 않으면 사립 독자의 길을 모색하게 하면 된다. 괜히 <평준화>를 탓하고 그를 허물자고 하는 것은 중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바로보지 못하게 할 뿐이다.


셋째로 <학벌주의>란 용어도 심히 왜곡된 용어이기는 마찬가지이다. 필자는 지난 11월 22일 저녁 12시 YTN 시사프로에서 기자와 뉴스진행자가 스스럼없이 <학벌주의>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학벌주의>라는 말은 학벌을 중시하는 사고의 흐름이나 경향을 말하는것 같은데 이처럼 부정확한 용어가 있을 수 없다. 학벌이란 사회학적 용어로 권력을 의미한다. 좀더 정확하게는 학연을 매개로한 특정한 비공식적 특정세력으로 국가의 교육적 중요정책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 권력에 주의라는 말이 어떻게 부가 될 수 있는가. 권력은 그 자체가 권력이지 권력을 중시하는 사고의 흐름이나 경향을 지칭하지 않는다. 권력을 중시하는 흐름이나  경향은 (니이체의) 권력의지 정도로 표현하면 그만이다. 


우리는 특정 군인그룹이 정치를 좌지우지 할 때 <군벌>이라고 부르지 <군벌주의>라고 부르지 않았다. 또 특정 자본가 그룹이 정치에 영향을 미칠 때 그들을 <재벌>이라고 했지 <재벌주의>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권력은 그 자체로 완성된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벌주의>란 말은 어디서 연원해서 튀어나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학벌이라고 표현해 우리나라에 엄존하고 있는 특정 국가학벌의 눈총을 받기 싫어  사고의 흐름이나 경향을 나타내는 <...주의>라고 표현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처럼 현실을 부정확하거나 왜곡되게 나타내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면 결국 학벌사회의 문제점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고 나아가 학벌사회 속에 포박당하게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입시>라던가 <평준화>라던가 <학벌주의>라는 말을 일상중에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그만큼 교육현실을 바로보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고 교육개혁을 힘들게 하는 것이다. 용어의 정확한 사용이 교육개혁의 첫걸음이라고 감히 주장하는바이다.


학벌없는 사회만들기 대표 이공훈


원문: http://cafe.daum.net/no-worry/3FW6/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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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수능을 앞두고


필자는 해마다 수능일이 다가오면 불안에 떤다. 아스라이 먼곳에서 망령이 일진광풍처럼 일어나 서서히 다가와 모든 것을 휩쓸고 가버리는 그런 모습이 상상된다. 지나친 기우일까.


내일 모래 11월 13일이란 수능일이기도 하지만 꽃다운 청춘이 아파트에서 반드시 뛰어내리는 세시행사가 시작되는 날이다. 신문에서 혹은 방송에서 그 소식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


이런 살인의 추억이 어김없이 찾아드는 수능일을 두고 불안에 떨지 않을 수 있다면 그는 우리 젊은이들을 말할 수 없고 교육은 더욱이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 바이다.


오직 이 땅에 태어났다는 단 한가지 이유만으로 해마다 인신공양을 자그마치 200구 가까이 해야만 하는 그런 공포를 감내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죽음의 무도는 그치게 해야한다.


시험없는 대학입학제도


이런 방법말고 꽃다운 청춘이 혹은 아파트 옥상에서 혹은 한강에서 혹은 어느 으슥한 골방에서 소리없이 죽어가는 살인시리즈를 막을 방법이 있을 것인가.


필자가 많은 사람들을 붙잡고 어린 아이들을 살려내는 방안을 강구해보자고 호소한지도 오래되었다. 그때마다 죽는 것은 본인책임이라고 하면서 자기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외면하거나 기껏해야 시험제도를 잘 고치자는 게 고작인 것을 많이 보아왔다. 마치 자살하는 아이들이 먼나라 얘기이기나 한 것처럼.


해마다 200명 가까이가 입시철에 죽어나가고 이런 세시풍속이 40년 가까이 된다고 해도 이를 막을 방도를 강구하지 못하는 것은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노동이나 산업이나 이런 분야가 아니고 바로 교육 한가운데에서 일어나는 이런 사태를 정말 이토록 무심하게 보아와도 되는 것인가.


필자가 해마다 아이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더욱 분통스럽게 여기는 또하나의 이유는 이런 죽음의 시리즈가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난다는 사실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학입학시즌에 죽어나가는 일은 지구를 통털어 그 잘난 대한민국 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학제도를 탄생시키고 700년간 유지 발전시켜온 서구에서는 대학입학시험 자체가 없다. 그러니 자살자가 나올 근거가 없다.  미국도 SAT나  ACT점수 갖고 대학에 들어가는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닌 이상 그 점수에 목을 거는 법이 없다. 독일의 아비투어나 바깔로레아도 자격시험이기 때문에 자격을 획득못하는 아쉬움은 있겠지만 목을 걸 정도는 아니다.


우리와 유사한 대학입학제도를 갖고 있는 일본이나 대만이나 중국도 우리나라처럼 대학의 서열이 철저하지 않기 때문에 시험점수와 석차에 우리만큼 연연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자살자가 나오지 않는다. 이게 사실이라면 그리고 우리나라만 자살자가 속출한다면 이 땅이 저주받은 땅이 아니고 무엇이랴.


자살하는 이유에 대해 한마디 하고자 한다. 자살을 개인책임으로 돌리는 것도 입시를 국가가 주도하면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지만 개인이 낮은 점수에 좌절하고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기 때문에 자살한다는 너무나 무책임한 말들에 필자는 분노한다.


자살하는 진정한 이유는 그의 좌절이 보호받고 은폐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시험점수와 석차는 낱낱이 공개되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무시된다. 원하는 점수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자살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사실이 햋빛아래 고스란히 노출된다는데 있다.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이 받는 심리적 충격은 상상을 넘는다. 결국 그는 스스로를 지키는 유일한 길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이유이다.


외국에서 시험을 보아 대학생들을 선발하지 않는 이유는 물론 여럿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가 시험(재학중의 시험이 아니고 입학시험을 말함)을 보아 점수와 성적을 알게 해주면 아이들을 보호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리라고 본다. 물론 우리나라는 이처럼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개념이 이해불가능하지만.


입학시험은 근본적으로 점수와 석차를 공개하겠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시험을 보면서 공개하지 말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리고 공개하게 되면 학생들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도 진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죽음으로부터 구해내기 위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겠는가. 시험을 보아서는 안된다고 하는. 그것이 유일하고도 궁극적인 길이라는 것을.


우리나라는 고등교육 받을 기회를 얻는 것을 특혜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시절은 말할 게 없지만 해방과 건국후로 대학수는 너무나 부족했고 기회를 얻고자 하는 열망은 너무나 뜨거웠다. 이런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를 시험을 보아 그 점수와 석차로 해결했다. 그리고 누구도 이런 손쉬운 방식에 의문을 달지 않았다. 그러나 필자는 그들에게 교육철학이 있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대학제도를 만든 서구가 공개경쟁시험선발제도(입시)를 쓰지 않는 것을 몰랐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절차가 번거롭고 힘들더라도 시험선발제도를 채용하지 않았다면 입시시즌에 죽어나가는 수천명의 생령은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넣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대학제도를 수립한 해방과 건국당시의 소위 교육선각자들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그런 과거를 탓하고 있을 계제가 아니다. 당장 모래 수능일부터 시작될 죽음의 무도회를 어쩔 것인가.


필자가 호소하고 싶은 것은 서구에 유학했던 많은 분들이 직접 시험보고 그 성적으로 대학에 간 적이 없음을 공동으로 발표하고 우리나라도 그렇게 할 때만이 아이들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표명했으면 하는 것이다.


마침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이 무시험입학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해서 기대를 걸게 하지만 아이들이 죽어나가도 모른척하는 어른들이 과연 무시험입학제도를 지지할른지 의문이다.


교육 한가운데에서 벌어지는 죽음의 춤판, 죽음의 무도회를 어찌 눈을 뜨고 볼 수 있을 것인가.   

* 글: 이공훈 (학벌없는사회만들기 대표)

원문: http://cafe.daum.net/no-worry/3FW6/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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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율곡선생의 사당이 있는 자운서원을 가 보았다. 옆을 지나다가 우연히 들른 것이지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율곡선생 묘소와 신사임당 묘소도 있어 함께 참배했다. 조선 성리학의 거봉인 율곡선생이 그 곳에 잠들어 있을 줄은 몰랐다. 광해군이 내린 자운서원이란 사액과 함께 사당도 잘 조성되어 있었고 조경도 매우 뛰어나고 공간도 넓어 마음이 흡족했다. 걷는 즐거움에 더해 율곡선생의 생애를 생각해 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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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운동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일이 수도 없이 일어난다. 만나면 반갑고 헤어지면 아쉬움이 남는다. 그저 단순한 만남과 헤어짐이 아니라 뜻이 같아 동지같은 걸 느낄 때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고 헤어질 때면 앙금도 남고 때로는 적의를 느낀다. 그럴 때면 슬픔이 오래간다. 개인간이 아니라 단체간에 일어났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흥사단에 참여한 후 이어서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에 흥사단 대표로 참여해 약 2년간 활동했다.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는 전교조와 참교육학부모회가 중심이고 고만고만한 교육운동단체 20여개가 참여해서 만든 단체이고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사회에 그런대로 제기한 단체이다. 이런 모임에 참여함과 동시에 학벌없는 사회에도 참여했다.

2000년 11월이었는데 그 단체는 출범은 1999년이고 2000년 9월부터 공식적인 활동을 했다. 나는 그곳에 공식활동한지 2달정도 후에 참여한 셈인데 이듬해인 2001년 4월에 분열되었고 학벌없는 사회만들기라는 단체를 5월에 새로 창립했고 이 모임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런지 8년이 된 셈이다.

학벌없는 사회가 공식활동에 들어간 후 이내 ‘학벌없는 사회’와 ‘학벌없는 사회만들기’ 두 단체로 나누어졌는데 두 단체 모두 우리 사회가 학벌사회라는 점을 우리 사회에 제기한 공로가 있다고 본다. 그 전에는 우리 사회를 학벌사회로 규정한 바가 없다. 그러나 그 이후로 학벌사회라고 하는 공론이 형성되었고 여러차례 세미나가 열렸으며 언론도 기사화했고 저서도 여러권 나왔다. 물론 이제는 학벌사회라는 말을 일반사회와 지식인들이 스스럼없이 사용할 만큼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학벌사회를 시정하기 위한 대안에 합의가 이루어졌다거나 치열하게 고민한다거나 사회적 추동력을 얻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 그런지 학벌사회라는 말에는 쉽게 공감하면서도 그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다들 공범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아니면 우리사회를 진단하는데 미숙하기 때문일런지도 모른다.

교육운동하면서 단체에 가입해 활동한 건 얼마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사단 활동을 중지한 것도 마음에 앙금이 남고 교육개혁시민운동에서 손을 뗀 것도 그렇고 학벌없는 사회가 분열한 것도 오래동안 걸린다.

특히 학벌없는 사회와 학벌없는 사회만들기로 분열할 때 파열음은 매우 컸다. 다 같이 학벌없는 사회만들자고 의기가 투합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4개월만에 두조각이 나면서 서로를 못볼 상대로 대하게 되기까지는 인간적인 고통이 따랐다. 몇 달을 두고 인터넷상에서 싸움이 그치질 않았고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그 여파가 아직까지도 가고 앞으로도 언제 활화산처럼 타오를지 모른다.

교육운동진영에서는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으며 안타까워 하는 바이지만 그렇다고 중재도 어려워 보인다. 단순히 인간적 감정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정책과 비전 그리고 이념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학벌없는 사회'는 독일식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교육에서도 평등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반면에 '학벌없는 사회만들기'는 미국식 자유주의를 지향한다. 이런 차이가 초중등교육에서는 드러나지 않고 별 차이도 없다. 그러나 고등교육에서는 여실히 드러난다. 즉 우리나라 고등교육체제를 어느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가 하는데서 이견이 드러나는 것이다. 학벌사회를 해소하기 위해서 고등교육을 미국식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독일식으로 할 것인가 하는데서 결정적인 차이가 드러나는 것이다.


고등교육을 크게 나누면 미국식과 독일식으로 나눌 수 있으며 영국이나 일본이나 우리나라는 절충형이다. 즉 미국식과 독일식이 함께 섞여 있는데 이는 그런 절충식이 이론적으로 정립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 현실에서 수동적으로 생겨난 것이고 그만큼 이론적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과연 학벌사회를 해소하기 위해서 미국식으로 고등교육을 시장에 맡기고 정부는 관여하지 않는게 좋을까 아니면 시장에서 맡았던 부분까지 정부가 흡수해 정부주도로 운영하는 것이 좋을까. 이 부분의 차이는 매우 크다. 그러나 합의가 어렵다. 왜냐하면 이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와 평등주의는 물론 함께 가야 한다. 그러나 서로의 지향점이 다른 이상 모두를 하나의 사회가 함께 같은 비중을 두고 수용하기는 어렵다. 일정부분 상대의 이념을 침식하면서 자기주장을 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이념적 대립은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철학적 문제이기도 하다. 단 어떤 사회를 두고 말할 때 그 사회의 기반이 무엇이었는가를 인정한다면 그에 비추어 선택을 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것도 그 사회의 기반을 문제삼기로 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에 기반을 두었고 그것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동반한다. 따라서 우리사회가 무엇을 기반으로 해서 성립되었는가 하는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건국한지 불과 반세기가 조금 넘었고 그 전의 체제는 우리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었으니 말할 것이 없다. 그렇다면 불과 반세기의 역사를 가지고 우리 사회를 규정지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하는 반론이 성립할 수도 있다. 또 한반도의 나머지 반은 의심의 여지 없는 사회주의국가이기도 하다.

'학벌없는 사회'의 주장은 이런 전제에서 대학에 대해 국가경영을 주장한다. 우리나라 국립대학이 20%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데 기회가 되는 대로 늘려 궁극적으로 완전국립대학체제를 완성하자는 것이다. '학벌없는 사회만들기'는 정반대이고.

이런 이념적 대립이 함께 하는 동지들 사이에서 일어났고 급기야는 얼굴을 붉히는 사태로 까지 발전하더니 두조각이 났고 이제는 타인보다도 먼 사이가 되고 말았다. 좋게 보면 모두 우리 사회를 위해서 한 일이지만 방향이 다르다 보니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런 싸움이 그래도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데 초석이 된다면 그래도 참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런 생산적인데 기여하기 보다 소모적이고 퇴영적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이견이 있어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최종적 선택을 사회에 맡기고 그 결과에 승복하면 어떨까. 적어도 학사만(학벌없는 사회만들기)은 그럴 용의는 있다. 사회가 선택하는 것을 거부할 수도 없으려니와 사회발전을 목적으로 하면서 사회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사회가 잘 선택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하고 공론의 장을 만들고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노력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런 논리도 패배를 예상하는 쪽에서는 수용하지 않으려 한다. 만일 승리를 예상한다면 수용할 것이다. 그러나 패배를 예상한다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저지하려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기본 구성원리인 다수의 의사와 절차적 민주주의도 그럴 경우 무력해지고 만다.

고등교육체제를 국가가 경영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시장에 넘길 것인가 하는 주장의 차이가 두단체로 분열하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동지를 적으로 만들었으며 인간적 갈등을 야기했다. 이념이 무엇인지.(이 글은 몇년전에 쓴 것인데 그때 느낀 감정이 지금도 여전한 것같고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고 시차도 느껴지지 않아 다시 올려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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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다는 것은 편해서 좋고 그리고 즐겁기도 하다. 크게 마음쓰지 않아도 쉽게 내디딜 수 있고 몸이 피곤해지거나 지루함을 느낄 때 쯤해서 적당히 방향을 돌려 돌아오면 된다. 나이가 들면서 걷기에 관심이 늘어간다. 원래 걷기를 좋아하지만 건강문제가 서서히 대두되면서 대안으로 걷는 걸 늘려간다. 그렇게 취미삼아 걷기도 하고 운동삼아 걷기도 하며 보낸 세월인데 한 동안 하는 일에 매달리다가 게을러졌고 그런 점을 깨닫고 다시 걷기를 재개했다.

이번에는 조금 계획성 있게 걷기로 했는데 그게 북한산 주변을 목표로 정하고 걷기로 한 것이다. 보통 걷기는 특별한 목표가 없는데 이번에 목표를 정하고 나니 나름대로 궁리할 일이 생긴다. 어디로 가고 차편은 어떠하며 가서는 무얼 볼 것인가 하는 사소하지만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하는 일들이 그것이다. 걷기는 원래 그런 게 아닌데. 무계획적인 게 제격인데. 틈이 나면 걷고 안나면 그만이곤 하던 게 내 습관인데 그렇다면 한 단계 발전한 것인가.

북한산은 서울을 내려다 보고 있는 진산이고 지역이 넓어 그 저 단순한 산이 아니다. 북한산에 들어가는 길목도 많아 동서남북에 걸쳐 수십군데가 될 것이고 그 길에는 사찰도 많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가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북한산은 새로운 모습을 내게 보여준다. 목표를 정하고 길을 선택해 걷는다는 것은 종전의 나의 걷기 습관과는 다르다. 무턱대고 몸이 피곤해질 때까지 무언가를 골돌히 생각해 보며 걷다가는 지우고, 지우고는 다시 생각지도 안던 일이 떠올라 다시 생각에 잠기며 걷다가 이번에는 저절로 그 한 생각이 나도 모르게 사라지곤 하는 게 내스타일인데 상황이 변했다.

가볍게 세운 것이긴 하지만 목표가 있으니 그를 향해가게 되고 이루고 싶어져 결국 허허로운 마음의 행로를 즐기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떤 방식이 좋을까가 다시 화두가 된다. 목표를 세운 걷기가 좋을까, 아니면 목표 없는 걷기가 좋을까. 이리 저리 궁리하며 한참을 걸어도 결론이 나지를 않는다. 목표없는 걷기가 몸에 밴 나지만 갈 데를 정한 목표있는 걷기도 그런대로 재미를 들이고 있는 중이다.

벌써 석달 사이에 북한산을 목표로 이길 저길 걸은 게 10여 곳이 된다. 북한산을 보는 눈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그 전에는 그저 서울의 큰 산이려니 했는데 최근에는 북한산이 서울과 운명을 같이 하는 공동운명체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성계가 서울을 도읍으로 정하기 전까지만 해도 북한산은 큰 의미가 없는 산이었다. 한양이 조선의 수도가 되면서 북한산도 비로소 사람들의 주목의 대상이 되는 산이 된 것이다. 산은 원래 그 곳에 있었지만 새로운 산이 되었다고나 할까. 이처럼 새롭게 산이 보이게 된 것은 내가 북한산을 목표로 걷기를 하고나서 얻게 된 망외의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무학대사가 이성계에게 한양을 천거했을 때 북한산이 역사중심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나에게는 서울을 둘러싼 여러 산중에 하나인 그저 그런 산에 불과했던 것이다.

사물은 이처럼 눈에 보이게 될 때 비로소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 전까지 나에게 북한산은 지리학적 산일지는 몰라도 역사적 산이지는 않았는데 시간적 제약을 갖는 산이라는 걸 깨닫게 되자 한결 가깝게 다가온다. 도봉산 자락 회룡마을에는 이성계가 함흥에서 돌아오다가 한양에 들어오지 않고 다시 함흥으로 돌아가겠다고 해서 태종이 그를 붙잡느라고 진땀을 흘린 고사가 남아 있는데 조선 건국 일화도 알게 모르게 역사의 의미를 일깨우고 있다. 이처럼 북한산은 역사의 옷을 입고 나에게 다가오지만 그건 내가 세월의 두께를 알기 시작했음를 의미하는 것이고 또한 그만큼 내가 세월을 보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도 걷기는 주변을 둘러보며 아무 생각없이 걷는 것이 좋다. 북한산을 목표로 걷고 여기저기서 역사의 흔적을 살피는 것은 무심한 걷기에 하나의 파적은 되지만 이게 목적은 아니다. 부수적으로 조선개국의 일화를 듣고 북한산과 한양과 한강의 의미를 찾는 것은 아주 가벼운 사색 속의 외도일 뿐이다.

무심히 걸어라. 온몸이 피곤해질 때까지 오래 오래 걸어라. 그게 진정으로걷고 싶은 목적이 아니겠는가. 그런 피곤 속에 몸을 맡길 때쯤 되면 따뜻한 소주 한잔이 포장마차 속 아낙의 눈흙김 속에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되리라.

북한산이 어떻고 이성계가 어떻다고? 그런 건 잊은 지 오래다. 오늘도 나는 이렇게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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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무책임화는 어떤가

고등교육을 국가의 책임으로 할 것인가 하는 것은 국민국가가 출현할 당시 중요한 문제였다. 유럽식(대륙식)국가들은 초중등교육과 함께 고등교육도 당연히 국가책임으로 하였지만 영미국가들은 국가무책임화를 표방하였다. 이유는 국가무책임화가 개인의 책임을 인식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등교육을 국가가 책임을 지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국가체제를 규정짓는 하나의 잣대가 되었으며 이후의 국가간의 경쟁 요소가 되어있다. 독일과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의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은 고등교육분야를 국가책임으로 두고 국가발전을 도모하고 있기도 하다. 영미식은 고등교육분야를 시장의 책임으로 두고 개인의 선택사항으로 한다.
우리나라는 성인제도를 두고 있는 나라이고 이를 교육분야에 적용해 초중등교육을 미성인교육으로 보아 국가책임화하면서도 사립학교를 두어 책임의 일부를 전가시키고 있고 또 성인이 받는 고등교육분야에 대한 국가책임도 일부 인정하고 있다. 그건 국가책임을 인정하는 통일되고 보편화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처럼 18세를 기준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하고 그때까지만 국가가 책임지고 그 이후에 대해서는 국가무책임화를 선언한다면 성인의 국가책임여부에 대한 논란은 사라질 것이다.
우리나라가 국립대학을 두고 국가비용으로 성인을 교육시키는 것은 성인의 자기책임원리에 반한다. 국가가 강제적으로 교육받게 하거나 사후적으로 의무봉사연한을 둔다면 자기책임은 면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국립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자기선택이 최우선이고 자유경쟁의 결과로 입학여부가 결정된다. 이는 시장의 경쟁원리가 가감없이 적용되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런 교육에 국가가 비용을 부담할 이유가 없다. 단지 국립대학을 설립했다고 해서 무한책임을 질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고등교육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지는 것이 타당한가 여부를 검토해야 하고 근대교육제도를 도입할 당시에 국가가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근대교육제도는 일제가 강제로 이식시킨 것이고 우리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일본제국이 근대교육제도를 도입하면서 고등교육에 대해 어떤 입장에 있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일본은 근대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후발주자로서의 이점을 갖고 있었다. 다시말해 유럽식(대륙식) 고등교육체제와 영미식 고등교육체제를 보면서 선택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일본은 근대화가 급한 나머지 양자의 체제를 모두 도입했다. 처음에는 유럽식으로 국립대학을 설립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사립대학도 인가해 주었다.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책임화에 철저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개인책임화에도 철저하지 않았다. 국가건 사인이건 고등교육기관을 설립 운영할 수 있기만 하면 그만이고 국민을 계몽시키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이 없었다.
그러나 초기에 잘못 길을 들어서면 되돌리기 어려워진다. 고등교육분야에서 국가책임화 혹은 무책임화에 철저를 기하지 않고 경우에 따라 때로는 국가책임을 인정하고 때로는 인정하지 않는 무원칙은 근대화에 대한 조급성과 교육철학의 부족이 그 원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시민이 자기의 책임과 권한 그리고 의무를 충분히 인식한 가운데 자유롭고 창의롭게 살게 하는 것만큼 국가를 발전시킬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 것인가. 대학도 거기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고등교육을 국가책임화하는 고등교육정책은 그만큼 시민의 자기책임에 대한 인식을 불명확하게 하고 사회나 국가에 책임을 전가시키기 쉽고 나태해지기 쉽게 한다.
일본에서의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와 시민의 공동참여가 가져온 모습을 보면 혼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스스로 교육정책이 실패한 나라임을 자인하는 나라다. 대학이라는 세계에 국가와 시민이 함께 뛰어들어 서로를 밀어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여기에서 조금도 다름이 없다.
오늘날 일본에서의 고등교육 개혁의 핵심은 국립대학을 비국가기관화하는 것이다. 그것이 국가무책임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국가기관이 아니라는 사실만 갖고도 국가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열리는 셈이다.
명치유신이후 대학을 설립하는데 있어 두가지 방향이 함께 제시되어 국립대학 설립과 사립대학 설립으로 나타났다. 국립대학이야 국가기관이니까 당연히 국가책임이라고 할 수 있고 따라서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되지 못함은 분명하지만 사립대학마져 단지 사인에 의한 설립기관으로 남겨두고 대학법인으로 등록을 받지 않았다. 그러니까 고등교육에 대해서 일단 국가가 책임지고 사인私人이 그 일부를 위임받아 가르치는 체제를 만든 것이었다.
이런 상태가 군국주의 일본에서 60년간 계속되다가 종전이 되면서 맥아더 점령하에서 사립대학에 대해 법인격을 부여하는 조치 - 사립대학의 법인화 - 를 내리게 된다. 원래는 국사립을 막론하고 법인격을 부여할려고 하였으나 국립대학은 반발이 심해 실시하지 못하고 사립대학에 대해서만 법인격을 부여했다. 전전의 명치대학이나 중앙대학이나 조도전대학은 사인에 의한 고등교육기관에 불과했고 국가의 사무를 위임받는 형식을 취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전전 사인에 의한 사립대학들은 80%에 육박하는 재학생과 졸업생 비율에도 불구하고 대학사회에서 국립대학에 상위의 자리를 내줄 수 밖에 없었는데 이의 복사판을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20%에 달하는 국립대학들과 25%에 달하는 국립대학 재학생이 있는 나라다.
맥아더 점령 당시 국립대학도 시민사회에 돌려주고 법인화해야 한다고 한 후 다시 60년이 지난 2004년도에 이르러서야 국립대학을 비국가기관화할 수 있었다. 그 동안 남아있던 100여개의 국립대학과 국립연구소들을 89개로 개편한 후 일제히 법인화해 버린 것이 그것이다.
일본이 대학제도를 도입할 때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을 함께 설립하게 하고 나서 이를 일원화시키는데 120년이 필요했던 것이다.
우리나라가 대학의 일원화를 이루기 위해서 얼마만큼 시일을 필요로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국가란 모든 대학에 대해 언제나 일관되고 공정하게 대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킬 수 있게 될 때가 언제일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다.
국가가 공정하게 등거리를 유지하면서 일관된 관점을 지닐 때만이 대학간의 경쟁이 의미를 갖게 된다. 그동안 일본의 대학들이 국립인가 아니면 사립인가에 따라 국가의 시혜가 달라지고 불공정경쟁이 일어나고 그 결과 대학사회의 전반적 낙후를 가져온데 대한 개탄의 글들이 2004년의 일본 국립대학 법인화 주장의 글 속에 많이 담겨있다.
대학이란 성인사회인 이상 시민의 창의보다 유효한 것은 없다. 국가가 우수한 대학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혹시 하나의 국가가 모든 자원을 동원해 우수한 대학을 만들겠다고 한다면 어떨지 모르겠다. 아마도 김일성대학은 국가로부터 그런 시혜를 받고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그런 건 예외이고 국가가 해야할 분야는 너무나 많다. 고등교육에 올인 -다잡기- 하는 국가란 오늘날 생각하기 어렵다. 또 대학이란 존재가 진리를 탐구하는 곳이고 학문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면 국가보다 시민사회 속에 놓이고 시민의 책임하에 발전을 도모하는게 유효할 것이다. 여기서 일본이 국립대학 법인화를 논의하면서 어떤 고민을 했는지를 살펴보자.

일본에서 국가권력으로부터의 대학의 독립을 요구하는 법인화논의는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제국대학 시절에는 주로 대학교수 등이 학문의 자유를 위해 법인화를 요구하고 정부가 여기에 반대했다고 한다면 전후 점령하의 교육개혁 이후에는 정부, 경제단체 등 대학 외부에서 대학의 교육연구기능 강화와 규제완화의 일환으로 법인화를 요구하고 대학교수가 학문의 자유를 내세워 여기에 저항하는 구도를 보이고 있다. 제국대학령이 공포된 지 채 3년이 지나지 안은 1889년에 제국대학 내부에서 관립학교독립론, 자치론이 등장한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토야마 마사카즈 (1848-1900), 기쿠치 다이로쿠(1855-1917) 등 6명의 제국대학 교수가 서명한 제국대학독립안사고와 호즈미 야츠카(1860-1912) 등 39명의 교수가 연명한 제국대학조직사안을 들 수 있다. ‘제국대학독립안사고’에서는 “제국대학은 천황의 특별보호아래 법률상 한 개인과 같이 권리를 갖고 의무를 부담하며 그 업무를 스스로 처리하는”, “일개의 독립체로 해야 한다”고 해 대학을 “천황의 특별보호아래 독립적인 법인격을 갖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향철 동방학지 132집 일본의 고등교육개혁 조류 및 국립대학 법인화 170쪽 2005. 12>


우리나라도 해방과 건국과정을 거치며 고등교육체제를 우리의 의지대로 세울 수 있게 되었을 때 고등교육을 국가책임으로 할 것인가 시장에 두어야 할 것인가를 결정했어야 했다. 그러나 건국이 시급했고 이념대결에서 승리하여야 한다는 명제앞에 차분하게 검토할 여유가 없었다. 일본이 이식한 대학제도를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고 할 수 있다. 미군정당국을 포함하여 건국자들이 일본의 고등교육체제를 비판할 안목이 부족했는지도 모른다. 일본의 고등교육체제의 모순이 이제야 겨우 드러나고 있는 실정이니까.
고등교육을 국가와 시장이 함께 맡는 모순에 대한 이해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건 그리 어려운 논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와 시장이 함께 경쟁한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 국가의 승리는 시장의 패배를 의미하고, 시장의 승리는 국가의 패배를 의미하는데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과 건국 후 6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국사립대학간에 경쟁을 시키는 그런 모순에 대한 비판이 희소한 것을 보면 다른 이유가 있는게 분명해 보인다. 필자는 우리나라 고등교육에 관한한 시장의 패배를 선언해야 한다고 본다. 대학사회의 몰락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지 아니한가.
그것은 일본도 그러했지만 국가기관으로서의 국립대학 출신들이 사회의 상층부를 형성함에 따라 교육철학적 관점도 무시하고 국가와 대학간의 바람직한 관계설정도 무시한 채 막무가내로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의 혼용체제를 유지하려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미 형성된 체제에 대한 단순무비한 수용이 그런 결과를 낳게 한 것이다.
대학은 모두 국립이거나 사립이어야 국가가 일관된 고등교육정책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국사립이원체제는 그를 불가능하게 하는 체제이고 교육철학적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러나 일본이 근대화가 시급한 나머지 혼용체제를 수립했드시 우리도 아무런 비판의식없이 혼용체제를 답습했고 현상유지를 원했다.
이유는 뒤에 잠깐 언급되겠지만 한줌도 안되는 기득권이 소중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어쨌든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국가이고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사립일원화를 하고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무책임화를 단행했어야 했는데 이때를 놓치고 나서 60년이 지나고 이제와서 바로잡을려고 하니 태산을 옮기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제라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가정법이지만 해방 당시에 경성제국대학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국립대학을 설립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경성제국대학을 불하해 사립대학화했으면 그 결과가 어떨까.
비록 고등교육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고 있을지라도 과감하게 시장에 맡겼으면 우리나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처럼 우리나라 대학들이 세계무대에서 낙후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기업이 성공한 것처럼 대학이 못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초중등교육에 전념하고 고등교육은 시장에 맡기는 나라가 되었다면 노벨상은 몇 개쯤 갖고오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한국인의 재능은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기에. 또 고등교육을 시장에 맡겼다면 학벌의 출현은 분명이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국가의 배경을 갖지 않는 대학은 최소한 겸손한 대학일 것은 분명하니까. 시장에서 최선을 다해 1등대학이 되었다면 그런 대학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의 대상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그런 대학을 갖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해방정국에서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은 반대에 직면했었는데 관철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아쉬움을 남긴다.
경성제국대학 출신들이 친일파들인데 그들이 그대로 서울대학교에 남게 되면 친일파에 대해 청산이 되지 않음은 물론 일제시대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지배가 계속된다는 게 주 이유였다.
다 지난 일이기는 하지만 역사의 교훈이라도 얻기 위해서는 해방당시 논의가 분분했던 서울대학교 설립안 - 소위 국대안 -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국대안과 그 반대운동의 이념적 성격을 교육체계와 관련하여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이 정리되었다.
첫째, 국대안은 미군정기 교육정책의 기본방향 속에서 파악되어야 하는 것으로서, 미군정이 표방한 지배이념으로서의 반공이념이나 보수주의 정책과 무관할 수 없었다. 국대안은 당시 교육적 난제들을 해결하기위해 제기된 측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립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시기인 독립정부 수립 이전에 제기되었다는 점,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그 타당성이 미진했다는 점에서 사회적 지지기반을 결여하고 있었다.
둘때, 국대안에 내포된 현실적, 이념적 모순을 지적하면서 전개된 국대안 반대운동은, 초기에는 좌,우익을 초월한 교육운동의 성격을 뚜렷이 나타냈다가, 1947년부터는 좌,우익 정치세력의 대립상황과 맞물려 정치운동의 양상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셋째, 국대안 반대운동의 대항 이데올로기적 성격은 국대안 반대세력의 교육이념과 정치이념을 중심으로 이해되었다. 그 결과 국대안 반대세력의 교육이념은 그 명시적 주장에 있어서는 자주적인 교육, 학교운영의 민주화, 그리고 철저한 일제잔재의 청산으로 요약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정치이념은 현실개혁적, 좌익적 성향의 정치이념이 혼재되어 있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국대안 반대운동이 현실개혁적, 조직적 세력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국대안 반대운동을 좌익정치운동으로만 단순화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미군정기라는 역사적 특수성 속에서 전개되었던 국대안 반대운동은 당시의 교육체제 형성에 구조적인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대안 반대운동은 교육체제내의 비판적 세력들이 갖고 있던 교육적, 정치적 이념을 구체화시켰다는점에서 주목을 받을 만 하다.<최혜월의 연세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국대안 반대운동의 이념적 성격에 관한 교육사회학적 접근 초록- 중에서 1986.12>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을 반대한 자들이 대부분 사회주의자들인데 고등교육기관을 국가기관으로 설립하는 것을 반대한 것은 일종의 자기모순에 빠진 것이다. 지금도 사회주의자들은 고등교육을 국가의 이름으로 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대안 반대자들이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을 반대한 것은 고등교육을 시장이 맡아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 아니고 친일파 청산, 자주교육, 민주화 등의 명분으로 사회주의제국을 건설하겠다는 다분히 정치적 구호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경성제국대학의 국립서울대학화를 반대한 것이지 지방국립대학설립을 반대한 것은 아니다.
한편 국대안을 수립한 자들도 모든 대학을 국립대학화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경성제국대학을 국립대학화함으로서 국가가 요구하는 기예와 학술을 갖춘 인재를 스스로 양성해서 공급받고 싶어한 것으로 일본이 국립대학을 설립했던 이유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물론 친일파가 온존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애써 귀를 막았다.
우리는 이처럼 우리나라 고등교육 체제를 정비할 수 있는 호기를 기득권을 인정하느냐 거부하느냐 하는 좁은 시각으로 바라보기만한 것이다. 결과를 두고 말한다면 양측의 주장은 어느 정도 맞았다고 할 수 있다. 국대안반대론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경성제국대학 시절부터 형성된 기득권은 국립서울대학교를 거치면서 더욱 강화되고 국가의 배려속에 성장을 거듭해 국가학벌로 등극했다.
또 국대안을 수립한 군정측에서 주장한 거처럼 단기간에 국가가 필요로 하는 우수한 인재들을 국립서울대학교가 공급해 개발연대를 감당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잃은 건 개발연대을 지나면서 비로소 알게된 고등교육의 전반적 낙후라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일제가 운용해온 국사립 이원체제를 보면서 이 땅에 똑같은 방식의 고등교육체제가 도입되고 해방과 건국 사이에 국대안 반대운동을 누르면서 우리나라 국립대학은 각도별로 설립된다. 고등교육 수요와 맞물려 국립대학과 사립대학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 그 중에서도 국립서울대학교는 장족의 발전을 이루면서 1974년도에 동숭동에서 관악산 기슭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아마 서울대학교 관계자와 선배들은 좋아했겠지만 이때야 말로 우리나라 고등교육이 묘혈을 판 시기가 아닌가 한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겠지만 서울대학교 졸업식에서 총장의 축사를 뒤로 돌아서서 듣곤 했다. 이유는 여럿이 있겠지만 국가가 베푼 고등교육에 대한 고마움을 그렇게 갚아서는 안되는 게 아니겠는가. 자기 비용으로 고등교육을 받았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최고의 대학을 졸업했다는 자부심을 체제에 대한 거부로 표현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대학을 다니고서 한 행동들이 그랬다.
국립서울대학교가 관악산 기슭으로 이동한 것은 국립서울대학교 자체만을 두고 보면 하나의 축복일 수도 있다. 정통성이 취약한 군사정권이 최고의 에리뜨를 배출하는 대학에 호의를 베푸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그런 대학이 출현한다는 것은 대학이 권력의 경지로 승화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국가학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대학이 스스로 최선을 다하면 최고의 대학이 될 수 있다는 단순한 원리를 무시하고 국가의 권력이 동원될 때 나머지 대학들이 발전할 수 있을까. 한국사회에서 서울대학교를 능가하는 대학을 그대는 기대하는가.
서울대학교는 기회있을 때마다 정부로부터 벗어날려고 했다. 그건 비원悲願이 된지 오래다. 그 해법이 국립대학 법인화이다. 원래는 특수법인이 되기를 기대했는데 그것은 서울대학교만의 법인화를 의미했다. 지금도 서울대학교병원은 법인형태를 갖추고 있다. 서울대학교가 법인이 아니면서 그 부속기관이 법인인 셈이다. 지금 정부에서 추진하는 국립대학 법인화는 모든 국립대학의 법인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특수법인이 아니다.
서울대학교가 1989년도에 연구 발표한 “국립대학의 특수법인화에 관한 연구”를 보면 그 목적과 필요성은 다음과 같다.

그 동안 정부차원에서나 또는 국립대학 자체에서 국립대학의 조직과 운영의 개선을 위한 노력이 꾸준히 전개되어 왔고, 이를 위한 연구도 계속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국립대학이 안고 안고있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국립대학도 국가기관의 일종이기 때문에 정부 자체의 공통적인 법규와 지침에 따라야 하므로 교육기관으로서의 특수성을 살리지 못하고 정부로부터 획일적인 통제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즉 대학으로서의 자율적인 운영을 확보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본연구는 이러한 문제의 인식하에 대학운영의 자율성과 능률성을 확보하는 방안의 하나로써 국립대학체제를 특수법인체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와같은 연구는 현재 여러방면에서 걸쳐서 민주화 자율화가 심도있게 논의되고 있는 시점에서 고등교육기관의 자율화를 위한 연구의 일환으로 그 의의와 중요성이 크다고 하겠다.<김동건, 선우중호 국립대학의 특수법인화에 관한 연구 1989. 서론부분>

정부는 2006년도에 국립대학 법인화안을 만들어 발표하고 공청회를 여는 것을 계기로 국립대학 법인화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서울대학교도 자체적으로 세미나를 열고 의견을 수렴하고 있기는 하지만 조건을 많이 달아 속 뜻을 분명히 드러내지는 않고 있다. 전임 정운찬 총장이나 현 이장무 총장도 법인화를 지지한다고 발표한 바 있지만 교수협의회에서는 반대를 표명하고 있다.
국립대학 법인화는 국가기관으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고등교육이 시장의 책임이어야 하고 국가는 시민들의 자기책임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리가 담겨있다. 또 국가는 어떠한 경우에도 시장과 경합해서는 안된다는 원칙도 담겨있다. 우리나라가 사립대학체제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시장과 경합하지 않지만 사립대학체제를 두고 또 국립대학을 둔다면 자기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국립대학의 법인화를 해야 한다면 당연히 대학의 운영자금도 자기가 조달하게 해야 한다. 사립대학과 아무런 차이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법인화가 자율성을 제고시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은 성립하지 않는다. 법인화는 책임을 누구에게 지는가 하는데서 국가책임인가 아니면 법인책임인가를 논하기 위해서이지 자율성과 관계가 없다. 자율성은 운영자금을 누가 책임지는가와 관계가 있다. 만일 자기가 조달한다면 자율성이 보장되고 국가가 책임진다면 자율성은 보장되지 않는다. 그런데 법인화하면서 자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는 법인화한 대학에 대한 국고지원에 대해 자기가 조달한 것처럼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에 대해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으로 국민의 조세부담원칙을 침해하는 것이다. 이를 모를리 없는 국립대학들이 자율성을 부르짖으니 이해하기 힘들다.
국립대학을 법인화하고 국고지원을 중단해야 한다. 법인화하면서 국고를 지원할 명분이 없다. 무슨 이유로 국고를 지원할려 하고 대학측은 계속적인 국고지원을 기대하는가. 물론 일시적이고 급작스런 국고중단은 대학재정을 파탄에 이르게 할지도 모르고 따라서 그렇게 하자는 것은 아니다. 재정을 마련할 방도를 열어두어야 하고 그때가지 시간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국고를 지원하지 않는 법인화여야 하고 굳이 국고를 지원할려고 하면 법인화를 할 이유가 없다. 비국가기관화하면서 국고를 지원하는 것은 새로운 문제를 발생시킬 것이다.

Ⅱ. 국립대학의 법인화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

국립대학을 법인화해야할 이유는 많다. 그러나 이를 자세히 보면 절대적 조건과 상대적 조건이 있고 이를 나누어볼 필요는 있다. 흔히 효율성이니 공공성이니 하는 가치들은 상대적인 것들이고 절대적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절대적 가치들과 상대적 가치들이 혼재하는 혼란과 모순도 극에 달한 느낌이다. 따라서 이 기회에 국립대학의 법인화에 요구되는 조건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절대적 조건들

1) 고등교육분야를 국가고유업무로 볼 때 국민모두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야 할텐데 이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고등교육분야는 어떤 경우에도 특정된 소수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원하는 자 모두에게 고등교육을 국가의 이름으로 베풀수는 없는 일이다. 국민이 동의한다면 한정된 소수에게 고등교육을 국가의 이름으로 베풀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립대학이 허용되는 상황에서, 또 민주주의 시대에 국민의 절대다수가 동의하는 경우란 상상할 수 없다.

2) 고등교육이란 어디까지나 성인의 자유선택일 뿐이다. 국가가 나서서 누군가에게는 고등교육을 제공하고 누군가에게는 제공하지 않을만큼 세세한 부분까지 간여할 성질이 아니다. 그리고 국가란 그럴만큼 권위를 지닌 존재도 아니다.

3) 국가기관과 민간기관의 경합은 모순이다. 우리나라는 누구나 잘 알드시 고등교육 분야를 국가(국립대학)와 시장(사립대학)이 함께 맡고 있다. 마치 국가와 시장이 서로 보완관계이고 협력관계이기나 한 것처럼. 그러나 실제는 어떤가. 국가기관으로서의 국립대학들이 전국적으로는 국립서울대학교가 지방단위로는 지방소재국립대학들이 한결같이 절대우위체제를 점하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국가는 어떠한 경우에도 사인과 경합할 수 없다. 오직 소송의 당사자로서 국가가 사인과 경합할 수 있을 뿐이다.

4) 고등교육은 국가의 고유업무가 아니다. 이런 문제는 민간이 고등교육을 수행할 능력이 없을 때 그리고 국가만이 그런 능력을 감당할 수 있었을 때는 덮혀져 있었다. 우리의 현대적 의미의 고등교육은 일제시대에 열렸는데 일본제국은 명치유신 후에 곧바로 국립대학 설립에 들어갔다. 동경제국대학의 설립이 그 효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얼마 후 민간에도 대학설립의 기회를 주어 조도전 대학 등 많은 민간대학들이 설립되었다.

이는 일본제국이 고등교육분야를 국가의 고유업무로 파악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방 후 국가건설에 매진하던 시절과 그 이후에도 이런 문제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되지 않은 것은 불행한 일이다. 백보를 양보해 경제재건이 급선무였다고 할 지라도 어느 정도 국가가 안정되고 경제성장의 기반을 다진 후에는 고등교육의 국가고유 업무여부를 논의했어야 한다. 그리하여 고등교육에 대해 전적인 무책임화를 단행했어야 했다고 본다.

5) 고등교육에 대해 국가와 민간이 함께 참여한다는 것은 모든 대학에 대해 일관된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에 위배된다. 언제나 국가는 고등교육기관에 대해 동등한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 특정대학을 배려한다는 것은 그에서 배제된 대학에 대해 불이익을 안겨주는 것으로 대학사회에 대한 국가에 의한 인위적 서열을 조성하는 것이다.

6) 고등교육분야는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 이유는 대학이 학문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중등교육처럼 민주시민의 자질을 갖추게 한다든가 개인의 인격 성장에 기여한다는 역할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학문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학문이란 진리를 탐구하는 것을 말한다. 어떻게 하면 진리를 탐구할 수 있을 것인가. 헌법은 이를 보장하기 위하여 학문의 자유라는 조항을 두고 국민의 기본적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 이는 국가가 학문의 자유와 이를 목적으로 하는 고등교육기관설립을 보장한다는 것을 뜻하지 국가가 스스로 학문의 자유와 고등교육기관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2. 상대적 조건들

1) 효율성

국립대학의 법인화 논의는 국립대학들이 국가기관이고 조직원이 국가공무원이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비효율과 비능률을 제거하고 민간조직과 같은 수준으로 법적 지위를 전환시켜 상황변화에 적절히 적응시키고 독립채산제를 도입해 자기책임의 원리를 도입하고 재직원의 신분도 민간신분으로 전환시키자는 것이 명분이다. 그것이 세계화시대에 대학이 살아남을 길이라는 것이다. 이런 논의는 효율성과 능률성을 제고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민간기구화한 법인이라고 해도 그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상대적 선택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국립대학이 반드시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판단이 성립하지 않는다는데서 더욱 그렇다. 원래 효율성이니 능률성이니 하는 것은 현상황의 존재를 긍정하고 문제점만을 개선하자는 것으로 개혁보다는 낮은 단계의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에서 국립대학 법인화 논의의 핵심으로 삼는 것이 이사회구성과 총장에 대한 선출문제인데 이는 법인화가 반드시 효율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미리 대비하는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국립대학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법인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도대체 누가 한 것인가. 학교법인인 사립대학들은 모두 국제경쟁력이 있다는 말인가.

2) 공공성

흔히 교육의 공공성을 말한다. 이를 위해 국가는 초중등교육의 국가의무화를 선언하고 그의 실현을 위해 진력하고 있다. 그러나 고등교육에 대해서도 공공성을 말할 수 있는가 하는데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즉 초중등교육의 국가책임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고등교육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고등교육이란 기본적으로 고급지식을 의미하고 그런 지식을 누구나 갖출 수는 없는 일이다. 만일 있다면 그런 건 고급지식일 수가 없다. 고등교육이 고급지식을 생산하고 분배하는 것이라면 어짜피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 수 밖에 없다.
공공성이란 그 의미가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가격이 싸다는 의미 이상을 벗어날 수 없지 않겠는가. 고급지식을 생산하는 고등교육이 쉽게 접근하고 가격이 싸야 한다는 것은 필요에 의해서 일하고 원하는 만큼 얻을 수 있다는 구호처럼 달콤하기는 하지만 실현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일 그것이 실현된다면 다시 그 이상의 고급지식을 생산하고 분배하는 교육기관이 생겨날 것이다. 그랑제콜처럼. 그리고 MBA처럼.
교육의 공공성은 초중등분야에 한정되어야 하고 국가의 예산도 초중등교육에 집중되어야 한다. 고등교육의 공공성은 국가의 시장에 대한 감시자 역할이면 충분하고 누구에게나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가 주어진 이상 집행자로서의 짐을 훌훌 내려놔야 한다고 본다. 80%의 사립대학들이 있는나라에서 고등교육 접근기회는 충분히 주어져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싼 비용의 고등교육이란 모순을 담은 말이라고 보여진다.

Ⅲ. 고등교육체제 개혁은 국립대학의 법인화를 의미하는가

그동안 고등교육체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많았는데 그 아이템을 보면 교수의 질을 높이기 위해 외국의 교수들을 초빙한다든지 수업을 영어로 한다든지 교수의 정년을 줄인다든지 하는 자질구레한 것들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국립대학들은 국고의 전폭적인 지원을 늘 요구하고 있고 사립대학들은 등록금의 자율화나 기여금입학제의 도입 등을 주장하고 있다. 국사립대학을 막론하고 정부의 규제 축소를 주장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요구들은 아주 오래된 것들이고 시정이 잘 안되는 걸 보면 주장에 힘이 실리지 않았거나 실현불가능한 것을 주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가운데 유학러시가 일어나고 있다. 외국에서는 다 쓰러져가는 대학이 한국학생들로 인해 활력을 되찾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우리 대학에 대한 실망이 유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지방소재 사립대학들은 폐교를 우려해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온갖 규제를 다하던 당국은 갑자기 자기책임이라고 하면서 나몰라라 하고 있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든지 폐교하든지 알바 없다는 투다.
폐교할 때 폐교하더라도 지방소재 대학끼리 당당하게 경쟁한번 하게 해주는게 어떨까. 무슨 말인가 하면 지방은 지방대로 지방소재 국립대학들이 국립이라는 모자를 쓰고 앉아 공정경쟁을 훼손하면서 독야청청하고 있다. 지금은 서울에 소재하는 사립대학들이 서열상위에 올라 위기의식을 느끼지만 지방소재 대학끼라 공정하게 제스스로의 능력으로 경쟁할 의지는 조금도 없어 보인다. 있다면 당장 국고에 대한 기대를 버려야 한다. 그리고 운영자금을 스스로 조달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사립대학이 그렇게 해왔드시.
고등교육이 국민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국사립을 막론하고 그렇다. 기업이나 일반사회에서도 대학이 인재를 키우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이다. 그러나 해법이 논의의 수준에서 맴돌 뿐이다. 한 나라의 발전이 고등교육에 기초한다면 문제의 본질을 바로 보고 서둘러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우리나라 교육체제가 일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늘 생각해오고 있다. 일본을 넘어 미국을 보아야 한다. 미국의 초중등교육의 국가책임만큼 우리도 국가책임정도를 높혔으면 한다. 미국은 95%의 초중등학교가 공립학교이고 단순학제를 운영한다. 우리나 일본처럼 사립중등학교의 비율이 높지도 않고 복선제 학제를 운영하지도 않는다. 이유는 국가책임을 명쾌하게 하고 초중등교육의 보편교육을 실현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고등교육에 대해서는 무책임으로 일관하고 있다.
물론 고등교육기관을 위한 연구과제별 기금은 최대한 조성해 대학에 제공하지만 그게 운영자금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운영자금을 자동으로 국립대학에 지원하고 있다. 이는 국가에 의한 특혜라는 말 아니고 다른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이제는 사립대학도 충분히 인재를 배출할 능력이 있다. 굳이 국립대학이 있어야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그런 특혜를 없애야 한다. 그리고 사립대학들이 발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그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국립대학에 주는 특혜를 없애기만 하면 된다. 시간은 물론 필요하지만 당위차원에서 하는 말이다.
이 모두는 일본의 교육체제 속에서는 찾아지지 않는다. 미국을 보자. 누군가는 프랑스나 독일처럼 유럽을 보자고 한다. 그러나 그런 나라들이 세계학문을 주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미 상식에 속한다. 비록 고등교육이라는 수요를 채워주는 복지국가로 가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지만 유럽의 국가들이라고 해서 교육복지 수준이 더 높다고 할 수도 없다. 물론 대학이 입학한 자들에게는 교육복지가 돌아가지만 그 비율이 아직도 고교졸업생의 40%를 겨우 상회할 정도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졸업생 중 대학교육이수 희망자가 90%를 넘고 그 중 실제로 대학에 입학하는 자도 90%를 넘는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나 미국은 세계 최고의 대학진학율을 보이고 있는 나라이고 그런 의미에서 유럽국가들보다 더 높은 교육복지를 시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자기비용이란 문제가 있지만 고등교육기회를 획득한다는 측면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일본이 120년만에 최대의 교육개혁에 착수한 게 국립대학을 정부기구에서 배제시키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도 많은 대학개혁 과제가 있을 수 있지만 더 이상 국립대학을 운영하지 말고 국가의 교육에너지를 초중등교육에 집중했으면 한다. 초중등교육에도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이를 해결하기에도 바쁜 정부가 고등교육을 일부(20%)나마 움켜쥐고 있을 이유가 무엇이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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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는 2007년도에 국립대학 법인화안을 국회에 제출할 의사를 갖고 있는 듯이 보인다. 지난해 11월 6일에 우여곡절 끝에 경찰의 호위 속에 공청회를 개최한 것은 그러한 의지를 읽을 수 있는 증표라고 할 수 있다. 2009년도부터 국립서울대학교와 신설될 울산국립대학교와 국립대로 전환될 인천시립대학교와 다른 희망하는 대학 두개 정도의 법인화를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할려면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는 않아 보인다.

국립대학 법인화를 강행할려는 동기를 필자는 일본이 2004년도에 국립대학을 모두 법인화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일본은 2004년도의 국립대학 법인화 조치를 1886년의 제국대학령 공포와 1949년의 사립학교법 제정과 함께 세 번째의 대개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제국대학령은 일본에 고등교육을 최초로 도입한 것이고 사립학교법은 점령하의 일본이 민주주의에 입각하여 사립대학에 법인격을 부여한 것을 말하며 2004년의 국립대학 법인화는 국립대학에도 법인격을 부여한 것을 말한다. 즉 정부기관으로 남아있던 국립대학을 비국가기관화해 시민에게 돌려준 것을 의미한다. 어찌 그 의미가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비록 일본이 서구로부터 고등교육제도를 도입한 지 120년이란 오랜기간이 걸렸고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결국 고등교육이 시민의 영역이지 국가의 고유업무가 아님을 선언하고 또 실행에 옮기고 완성시켰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맥아더 점령 당시에 대학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개편이 이루어졌지만 그것도 사립대학에 대해서이고 국립대학의 국가적 전통과 역할은 크게 위협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굳어진 국립대학의 목적과 역할과 성격 그리고 기득권 등은 당시에도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부분이 긴 세월이 흐른 60년만에 ‘국립대학도 법인화로’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1877년 최초의 국립대학인 토오쿄오 대학이 설립된 이래 국공립ㆍ사립 등 설립형태를 가릴 것 없이 대학은 ”국가의 수요에 부응하는“기관으로 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학에 독립된 법인격을 부여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심지어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가운데 사립대학이 차지하는 비율이 이미 1905년 시점에 전체의 47%를 차지 하고 1925년 52%, 1935년 65%로 급속히 증가하면서 사학의 경영주체에는 특별법인의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되었으나 사립대학에 대한 국립대학의 보완기관으로서의 역할과 국가에 대한 멸사봉공 요구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사립대학이 사법인으로서 법적 지위를 얻게 되는 것은 GHQ의 민간정보교육국(CIE)이 개입한 가운데 1949년 12월 15일 전후교육개혁의 일환으로 성립된 사립학교법을 통해서 였다.’ 이향철 <일본의 고등교육개혁 조류 및 국립대학 법인화> 2005. 12 연세대학교 동방학지 132집 169p

국립대학의 법인화는 고등교육의 국제경쟁력을 위해 최선의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왜냐하면 2004년도의 일본의 국립대학 법인화도 최종적으로는 국제경쟁력 제고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법인화의 목적을 호도하는 것이다. 법인화의 목적은 국제경쟁력 제고 때문이 아니고 고등교육에 대한 시민의 영역이라는 자리매김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비록 현재의 국립대학이 국제경쟁력이 있고 효율적이고 능률적이라고 할 지라도 여전히 법인화해야할 이유는 남는 셈이다.

일본으로부터 고등교육제도를 도입했고 그를 바탕으로 해서 국가발전을 도모한 우리나라가 일본과 궤를 달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또 실제로 우리나라 국립대학 법인화 논의도 일본처럼 효율성과 능률성과 국제경쟁력 제고를 위해 법인화하자는 정부의 주장과 대학자치를 훼손시킬가봐 전전긍긍하는 대학관계자의 팽팽한 긴장관계 속에 진행되고 있고 고등교육을 시민의 영역으로 돌려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잘 들리지 않는다. 국립대학 관계자들은 정부의 보호벽 안에서의 대학자치만을 요구하는 것같다.

그렇지만 사실 시민의 영역으로 넘겨주는 것만큼 진짜 자치가 어디있겠는가. 정부가 추진하는 국립대학의 법인화는 그를 실행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비로소 고등교육에 대한 시민의 자원과 창의가 투입되고 우리 모두가 그토록 바라는 세계화 국제화한 대학의 출현을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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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제도, 우리의 생각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이공훈(학벌없는사회만들기 대표)

이공훈 | 흥사단 교육실천위원회에서 기획실장을 맡아 일했었고 현재는 학벌없는사회만들기 (www.goodbyehakbul.org) 대표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섀먼 에듀』라는 교육소설(2002)과 『교육, 시장과 정부에서 길을 찾다』 (정영섭과 공저, 2006)가 있다.

3불정책에 관한 논쟁이 뜨겁다. 대통령까지 나서 방어하고 있지만, 소위 명문대학과 보수언론의 3불 정책 해체 주장이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좋은교사운동의 여론조사 결과, 3불정책 유지를 원하는 입장이 다수였다. 과연 대학의 경쟁력을 도모하면서도 공교육 정상화를 지킬 수 있는 해법은 없는 것일까? 이런 질문에 오랫동안 고민하고 대답해 온 이공훈 ‘학벌없는사회만들기’ 대표를 만나 보았다.


A(좋은교사) : 선생님께서는 오랫동안 학벌타파 운동에 전념해 오셨습니다. 학벌타파 운동의 양대 단체인 ‘학벌없는사회’와 ‘학벌없는사회만들기’의 차이를 설명해 주십시오.

B(이공훈) :‘학벌없는사회’나 ‘학벌없는사회만들기’는 우리 사회의 학벌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동일하게 인식합니다. 그러나 제시하는 대안이 다릅니다. 원래는 같이 활동하다가 서로 뜻이 달라서 갈라진 것입니다. ‘학벌없는사회’는 고등교육 체제, 즉 대학을 국가가 운영하자는 것입니다. 국립대 평준화가 그런 맥락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학벌없는사회만들기(이하 학사만)은, 대학은 시장 책임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대학을 국가가 책임지느냐, 시장이 책임지느냐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제가 활동하는 ‘학사만’은 약 80%의 사립대학과 75%의 사립대학 재학생이 있는 나라에서 고등교육을 국가 책임제로 했을 때, 제대로 운영하려면 대학 소유권과 운영권의 국가 환수가 필요한데,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물론 엄청난 돈이 드는 것도 문제지만 그럴 필요성도 전혀 못 느끼지고요. ‘학사만’은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이 공정하게 경쟁하는 구도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불공정 경쟁 구조를 먼저 시정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학벌 타파의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A :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이 불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B : 현재 각 대학은 국립이나 사립이나 똑같은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동일한 학위를 줍니다.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립대학은 등록금이 사립대에 비해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또 국립대학은 국가라고 하는 배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립대가 국립대를 능가할 길은 없습니다. 그것이 수십 년간 국립대학들이 대학 사회에서 절대우위에 서게 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왜 국립대학을 운영하려고 하는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국립대학 출신들이 자신의 권력을 승계하려는, 보이지 않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정치 권력, 사회 권력을 후배들한테 넘겨줄 때 제일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국립대학 출신들이 국립대학을 유지하려고 하지요.

우리는 메이저 언론사들에 대해서도 벽을 느낍니다. 메이저 언론사들은 국립대학 출신들, 특히 서울대 문과대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런 메이저 언론사들이 학벌을 타파하자는 우리의 주장을 실어 주지 않습니다.

학벌이 무엇이냐구요? 학연을 매개로 한 국가 권력입니다. 비공식적인 권력 체제인 셈이지요. 우리나라는 국립대학 출신들이 사회를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가의 중요한 의사결정이 그들의 이익과 결코 반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어떤 교육 정책도 국립대학, 특히 서울대의 이익과 반해서는 시행되지 못합니다. 최소한 타협이라도 되어야 시행되지요. 그것은 이미 국립서울대학교가 학벌의 반열에 올랐음을 말합니다. 혹자는 연고대도 학벌 체제 아니냐고 항변합니다만 그것은 국립대학에 대항하는 대항학벌이고 민간학벌로서 학벌이라고 말할 게 못 됩니다. 지방에서는 지방 국립대학이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국립대학이 사립대학과 아무런 기능적 차이가 없지만 특혜를 받는 것은 학벌 말고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대학에 들어가는 나이가 19세에서 20세 전후입니다. 그때 이미 모든 것이 다 결정됩니다. 이후 대학 4년간의 노력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머리를 싸매고 있지요. 국립대학에 들어가는가 안 들어가는가가 이후의 60년 인생을 지배합니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우스운 일이 우리나라에선 지극히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누가 학벌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개인 차원으로 학벌을 보는 것은 우리의 관심사항이 아닙니다. 결혼이나 승진이나 취업이나 교유관계에서 말하는 학벌은 국가권력으로서의 학벌과는 다른 것입니다.


A : '학벌없는사회만들기’가 제시하는 해법들을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B : 학벌 문제 외에도 초중등교육 정상화, 대학입학제도, 고등교육 문제 등의 교육계 내부의 문제가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문제지요. 우리는 그중 우선적으로 대학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학 문제가 다른 여러 문제를 파생시키는 근원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대학 문제 중에서도 국립·사립대학 간의 불공정 경쟁과 특혜와 편애, 간섭과 통제, 그리고 국가라는 이름의 배경 등의 문제가 우리 교육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 문제가 풀리면 교육계의 숙원이라고 할 수 있는 학벌 문제가 풀릴 수 있으며, 입시 위주 교육이라는 정체불명의 교육도 해소될 것입니다. 나아가 초중등교육의 정상화도 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처럼 국립과 사립이 양립하여 경합하는 구조는 문제가 있습니다. 국가가 고등정책을 일관성 있게 펼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독일이나 프랑스를 보면 모두가 국립대학이지요. 미국은 사립대학의 나라이고 주립대학이 보완하고 있지만 양립해서 경합하는 경우라고 할 수 없지요. 미국은 기본적으로 사립대학으로 발전한 나라입니다. 후발 주에서 주립대학을 세운 것입니다. 즉, 주립대학은 보완의 의미이지 경쟁의 의미는 아닙니다. 실제로 주립대학은 사립대학화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주에서, 땅과 건물은 물론 대학의 운영자금도 60% 가까이 부담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운영자금 지원도 10-20%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런 미국의 주립대학을 빗대어 우리도 국립대학을 운영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생떼에 불과하지요.

국립대학이 가난한 자를 위한 대학이 되거나 기초학문을 위한 대학이 되겠다고 해요. 그러나 진심은 그렇지가 않지요. 가난한 자를 위한 대학이 되고자 한다면 가난한 자인지 확인하고 입학시켜야 하지만 그런 적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높은 사회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기초학문을 하는 대학이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도 말뿐입니다. 가장 실용적인 학과를 개설하는 대학이 국립대학입니다.


A : 우리 교육 문제를 다루다 보면 대부분의 문제들이 대학 입시로 귀결되면서 결국 미궁에 빠지고 맙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대학 입시의 대안은 어떤 것입니까?

B : 왜 국립대학은 시험 제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일까요? 국민들의 인식 속에는 국가가 미래를 위해서 우수한 자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래서 국립대학들은 국가가 지원할 만한 우수한 자를 입학 시켰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어합니다. 이것을 인증 받는 데 시험만한 게 없습니다. 입학 시점의 서열화가 국가 지원에 불가결한 요소라고 보지요. 그 상상할 수 없는 메리트 때문에 시험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분들도 많지요. “시험 제도를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느냐. 그렇다면 차선책이라도 내놔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교육의 한계 안에서 대안을 찾자는 것이지요. 그러나 저는 입학 시험 제도를 그대로 둔 채 시도해 볼 수 있는 건 다 해 봤다고 봅니다. 이미 말했지만 시험 제도가 국립과 사립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 시켜 주는 기제로 작용하기 때문에 없어지지 않은 것을 알기 바랍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입학 시험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라고 해서 국가가 지원해 주어야 할 명분은 없습니다. 정말 입학 시험 성적이 우수한 자를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면 우수한 성적을 낸 사립대학 지원자에게도 등록금 할인을 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험 제도가 없어지면 우수한 학생들이 들어가는 대학에 국가가 지원해 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하기 좋은 기대효과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시험 제도때문에 중등교육이 저렇게 힘들고 사교육 시장이 커진 것을 누가 모릅니까? 그래도 그 시험 제도를 국립대학이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A : 선생님의 대안은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전제들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는데요, 대학 입시에 있어서 공정성은 우리 사회가 금과옥조처럼 붙들고 있는 부분인데, 이것을 포기하고 대학에 맡길 때 과연 국민들이 어느 정도 납득할까요?

B : 국립대학이 시험 제도에 집착하는 것도 큰일이지만, 시험 제도를 없애자고 하면 국민들이 일종의 정신적 공황에 빠져듭니다(웃음). 시험이라는 전제를 접고는 더 이상 논리 전개가 안 되는 것이죠. 그 사고를 우리는 뛰어넘어야 합니다. 입학 시험 제도를 없앤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지금 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아졌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미국 대학에 입학할 때 시험치고 들어갔냐”고 물어보십시오. 미국에도 SAT가 있습니다만, 그 점수 0.1 차이가 입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제가 입학 시험 제도를 없애자는 것은 그렇게 단 한 번의 시험 0.1점으로 판가름 내는 것을 없애자는 것입니다. 교육 내용은 국가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를 선발해서 가르치는 것은 가치중립적입니다. 특수성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대학들이 왜 무시험 제도를 도입하지 않을까요? 제가 보기에 그런 입학 제도를 도입하면 서열 상위 대학들이 불리해진다고 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미국 대학 사회도 서열이 있지만 그것은 입학 서열이 아니라 졸업 서열입니다. 대학 졸업 시점에서의 서열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바람직합니다. 4년 혹은 6년의 적공을 평가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학 서열화는 입학 시점의 서열화에 불과합니다. 학벌 사회가 보는 것은 입학 커트라인입니다. 그 대학이 4년간 얼마나 잘 키웠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무시험 제도를 수용하지 않는 것은 입학 시점에서 형성되는 대학 서열화에 흡족해하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시험 제도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나라가 시험 제도를 포기하려면 우선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기득권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포기 시키려는 여론이 형성되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나라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조선과 결별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신적으로 결별하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과거제도입니다. 과거제도는 인재 충원 제도입니다. 지금은 대학에 들어감과 동시에 학벌을 통한 신분을 얻습니다. 물론 관료 충원은 아닙니다만, 사회 상층부에 들어가는 충원이란 점에서는 변형된 과거제도가 지금도 활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제도의 긍정적인 효과는 왕권을 강화하는 셈입니다. 그러나 왕권을 강화하면서 생명력을 다 잡아먹었습니다. 박제가 선생이 ‘북학의’에서 과거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글을 격하게 썼을 정도입니다. 중국에도, 조선에도 과거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들이 꽤 많습니다. 송나라 때 주자도 그 주장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아무도 없애지 못했고, 과거제도로 왕권은 강화되었지만 사회는 죽어 버렸습니다.


A : 무시험 제도에서는 당연히 공정성, 객관성, 변별력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까요?

B : 제가 객관성, 공정성, 변별력을 포기하자고 하면 다들 황당하게 생각합니다. 먼저 공정성을 생각해 봅시다. 내가 어떤 대학에 들어간 것이 공정하다는 것은 제3자로부터 승인을 받는 것입니다. 어느 교수가 어떤 사람을 교육하고 싶고, 어떤 사람이 어떤 학교에서 배우고 싶다 해도 공정성이 개입되면 제3자에 의해 상황이 달라집니다. 다시 말해 주도권이 대학과 지원자에서 제3자에게 넘어가고 맙니다. 그러니 대학과 지원자의 소신과 철학은 공정성이라는 이름의 단두대에서 희생되지요. 물론 공정성을 얻긴 했지만요. 우리는 대학과 지원자의 소신과 철학을 그토록 말하면서도 그것과 공정성이 충돌하는 것은 보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다음으로 변별력 문제도 봅시다. 입학 시험 점수로 순위를 매기고 당락을 결정했다고 해서 그 순위가 졸업 때까지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육은 과정이고 잠재성 개발입니다. 어느 정도 적당한 수준의 점수를 받으면 인정해 주어야죠. 59점은 안 되고 60점은 된다는 것은 교육적으로 매우 파괴적인 일입니다. 도대체 변별력이라는 말이 질그릇을 굽는 도야 과정 중에 있는 아이들에게 과연 타당합니까? 변별력이 선발의 정당성을 위해서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교육적 의미는 아니라고 봅니다.

끝으로 객관성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저는 입시를 위한 서열화 지표를 갖지 말자고 하고 싶습니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저 사람이 나보다 못한 것 같은데 내가 못 들어간 대학을 들어갔다는 것에 고통을 받기 때문에 객관적 지표를 요구하겠지요. 그래야 승복하겠다는 것이지요. 서열화의 메리트가 있기 때문에 대학도 이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고요. 그러나 객관적 지표를 요구하는 만큼 주관적 요소들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시험 준비는 입시 요강에 맞추어서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입시 요강에 없는 것 예컨대 인성이라든가 적성, 장래 포부 같은 것은 완전히 무시되지요. 1-2점이라도 차이가 드러나야 승복하겠다는 것은 입시 결과를 받아들이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인생 자체에서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미국의 대학 입학 제도에서는 아이들이 4-5군데 원서를 넣어요. 동부 대학의 경우에는 정원의 10배수의 서류가 들어와요. 그러면 대학의 사정관이 3배수 정도를 남기고 일방적으로 떨어뜨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서를 여러 군데 보내는 것이지요. 불확실성 속에 움직입니다. 대학에서 학생에게 와 보라고 합니다. 대학에서 비행기 티켓도 보내 줍니다. 학생이 올 수 없으면 대학 측에서 학생을 만나러 가기도 하지요. 미국에서 우리나라에 오기도 합니다. 면접 등을 통해서 다시 1.2배수까지 줄입니다. 그 후 교수들이 모여서 다시 치열한 토론을 하면서 0.2배수를 탈락시킵니다. 이 과정이 모두 비밀에 부쳐집니다. 심사 자료는 학생부가 중심입니다. 더 필요하면 추가 서류를 요구합니다. 교사추천서, 지역인사추천서, 에세이 등이 부가됩니다. 학생을 선발하는 과정이 거의 3개월 정도 걸립니다. 한 시점에 모든 학생을 가르지 않습니다. 최종적인 단계에서 “우리가 너를 받아들이면 등록금 낼 거냐?”고 물어보지요. 지원자 측에서 다른 대학에 가고 싶으면 못 낸다고 하겠지요. 이것은 사적 계약관계입니다. 누가 붙고 떨어지고 하는 개념과는 다른 것입니다. 물론 제3자들은 그 결과를 모르지요. 우리처럼 학원, 학교, 동네 마을에 합격 여부가 알려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저는 선발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고 봅니다. 선발은 우위에 있는 자가 누구를 찍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학을 권력 기관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만큼 시민의 권리가 위축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대학과 지원자가 대등한 관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입시라는 말도 없어져야 할 말입니다. 입시는 입학 시험의 줄임말로서 대단히 왜곡되어 있는 말입니다. 세계적으로 볼 때 대학이 입학 시험 없이 아이들을 받아들이는 게 정상입니다. 정상을 정상으로 볼 줄 모르는게 우리나라, 그리고 교육개혁론자들입니다.

시험 자료는 참고자료여야 합니다. 유럽에도 독일의 아비투어,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등의 시험이 있지만 우리와 같이 소수점으로 판가름 나는 시험 개념은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대학들은 내신이야말로 변별력이 없다고 난리 치고 있습니다. 내신 점수를 가지고 대학에서 뽑으라고 하면 이상하게도 부풀리기 문제가 생깁니다. 변별력 때문이지요. 앞에서 말했듯이, 변별력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고 적당한 범위 안에 들면 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부풀리기가 상당히 사라지겠지만 어쨌든 부풀리기는 막아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학교생활기록부의 평가 기준이 학교 울타리를 넘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평가 기준이 지역 단위나 전국 단위로 동일하면 안 됩니다. 학교 단위로만 나온 성적으로는 어떤 아이가 우수한지 모를까요? 전문가라면 다 압니다. 판단이 어려우면 면접해 보면 됩니다. 문제는 그러한 판단의 자율성에 대해 대학과 사회가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대학이 대학의 권위로 책임의식을 가지고 입학자를 뽑아야 하고, 입학에 동의하는 건 지원자는 인생을 건 고독한 결단을 해야합니다. 그 대학의 권위와 지원자의 고민을 우리 사회가 인정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생각만 해도 전율하게 됩니다. 그런 날이 과연 올 수 있을는지….

A : 선생님의 주장은 국립대 법인화를 통해 공사립간 공정하게 경쟁시키자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입시의 서열화가 아닌 교육 내용 내지는 교육의 질을 통한 서열화를 만들자는 것으로 압축될 것 같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지나치게 대학을 시장으로 내모는 것이라며 평등주의자들로부터 신자유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으실 것 같습니다.

B : 제 안이 혁신적이기는 하지만 파괴적인 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대중적 설득을 못해서 힘들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진보 세력으로부터 신자유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고등학교 평준화를 주장하기 때문에, 시장주의자들은 저를 평등주의자라고 비판합니다. 저는 어디에 서야 할까요? 제 주장의 기저에는 초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이 나누어져 있습니다. 초중등교육은 공교육 논리에, 고등교육은 시장 논리에 서서 보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수만 있으면 많은 게 보일 겁니다. 저는 양쪽으로부터 공격도 받지만, 옹호도 받습니다.

A : 교육 문제를 다루다 보면 결국 입시 제도와 학벌 사회를 탓하게 된다. 이쯤 되면 교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는 회의에 빠져들곤 한다. 또한, 교육을 경쟁과 생존을 위한 도구적 가치로 인식하는 시대의 흐름 앞에서 교육본질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참으로 옹색하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이공훈 선생님의 시각은 시대의 흐름에도 부응하면서도 교육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접근으로 보인다. 그는 우리에게 도전한다. 0.1점으로 합격과 불합격이 결정되는 것을 당연시하고, 그것을 공정함으로 믿어 왔던 우리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너도 나도 고통 받는 이 현실에 대한 해법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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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는 걸 좋아한다. 하루에도 걷는 거리가 제법된다. 재 본 적은 없지만 대충 십리는 넘지 않을까 싶다. 오래된 습관이기도 한데 몸과 마음을 더 없이 편하게 해준다. 몸이야 너무 많이 걸으면 피곤해지지만 운동삼아 걷는 셈이기도 하니 이로울테고 마음을 여유롭고 넉넉하게 해주는 데야 걷기만한 게 또 있을까 싶다.
걷는 묘미를 체득한 후부터 빨리 걷는 경우란 거의 없고 뛰기란 내 인생에서 영원히 없어졌다. 뛸 일이 뭐가 있을 것인가. 원체 숨이 차 오르는 걸 싫어했으니 걷기 체질이라고 해야 솔직한 말이기는 하지만.
걷기를 즐기기 위해서는 혼자 걷는 게 제 격이다. 누군가와 같이 걸을 때는 즐거움을 음미할 수가 없다. 대화에도 신경써야 하고 보폭도 맞추어야 하니 걷는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다. 혼자서 마음의 행로를 따라 느릿느릿 허허롭게 걷는 즐거움을 어디에다 비하랴.

이렇게 혼자서 걷는 즐거움은 내가 개발한 몇 안되는 행복 중의 하나다.
귀한 보물을 혼자 감상하며 거기에 도취되듯이 나는 매일 매일 아무도 모르게 걷는 즐거움에 빠져든다. 그런 취미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잘 기억나진 않치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철들기 시작하면서부터가 아닌가 싶다. 세상을 발견하고 세상을 살피고 세상을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만의 걷기를 시작했던 것 같다. 이를 자아(自我)의 발견이라고 하던가. 어쨌든 생각할 일들이 많아지고 해결해야할 일들도 많아지고 인생의 무게를 하중으로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세상과 거리를 두고 차분하게 살펴보기 위한 나름대로의 나만의 시공(時空)을 요령껏 마련한 셈이다.

바지 주머니에 혹은 잠바 주머니에 두 손을 쿡 찌르고 허리를 약간 굽힌 듯이 하고 어깨를 흔들며 뉘엇뉘엇 걷는다. 그런다고 해서 인생살이의 여러 문제들이 과연 확실하게 풀리더냐 하고 당신이 묻는다면 할말은 없지만, 그런 대로 많은 문제들이 풀렸다고 말할 수는 있다.
때로는 사람들과 어깨를 비비며 번잡한 거리를 걸을 때도 있고 때로는 호젓한 공원길을 걸을 때도 있지만,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구름을 쳐다보기도 하고 지나가는 이의 그림자를 내려다보기도 하면서 한참을 걷다보면 그 동안 고심하던 대부분의 문제들이 머리 속에 남아있지 않는 걸 발견한다.

아무 것도 머리 속에 남아있지 않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가. 나는 그걸 문제가 사라진 것이고 녹아버린 것이고 풀린 것이라고 여긴다. 실은 생각 자체가 없어진 것이겠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생각하던 것들, 보고팠던 것들, 그리고 그리워했고 가슴져려 했던 그 모든 일들이, 아아, 영원히 잊혀질 수 없는 사랑하던 그 모든 것들이 영원히 잊혀진다한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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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자크 루소는 그의 저서 `에밀`에서 우리들에게 최고의 스승은 자연이라고 갈파한 바 있다. 주인공이기도 한 에밀에게 그의 선생이 심혈을 기울여 가르치려 한 것은 사물에 대한 지식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자연을 만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으며 사랑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루소 자신을 의미하기도 했던 선생은 선생의 바람직한 모습을, 학생들을 자연 앞으로 인도해 주는 안내자의 역할에 한정하려 했지 사물의 이치를 훤히 꿰뚫는 능력자로 비추어져서는 안된다고 여겼다. 자연의 심오한 뜻을 스스로 깨달으면서 인간으로 성숙해간다는 그의 자연주의철학은 근대의 교육철학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고, 교육학을 공부해야 하는 자들에게 `에밀`은 필독서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현장을 보면 교사들이 정말 그 책을 읽고 교단에 섰는지 의심이 갈 정도이다. 오히려 자연과 점점 멀어지도록 반 자연친화적 교육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 모르겠다. 예를 들기에는 지면이 허용하고 있지 않지만 사실이 그렇다면 학생들이 에밀을 읽은 교사들로부터 자연을 뺏기고 있다는 역설이 성립하는 셈이다.

교사들이야 입시위주교육 풍토에서 학생들만이 아니고 교사들도 경쟁할 수 밖에 없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냐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로부터 배우고 자란 우리의 2세대들이 어떤 사회를 일구어 나갈지 미루어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어떻게 하면 교사들이 학생들을 자연에 가까이 가게 하며 자신을 그들을 위한 안내자 혹은 동반자적 자세를 갖게 할 수 있을까.

<조선일보 2001.12.25일자 21면 일사일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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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유행했던 실존주의는 인간을 좌절과 방황 속에서도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존재로 파악하고 그런 삶의 조건을 `이유를 알 수 없는 막연한 불안`으로 규정하고 그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존재에 대하여 따스한 시선을 보낼 것을 주문한 바 있다.

이런 요구를 필자는 우리 교육현실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곤 한다. 해마다 입시철이 되면 전쟁을 연상할 만큼 치열한 시험 경쟁이 벌어지고 승자와 패자로 갈리며 희비 쌍곡선이 그려진다.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 자들의 환호와 그렇지 못한 자들의 낙담이 어우러지는 우리나라에서만 보이는 세시풍속은 이미 꽤나 오래되었다.

전쟁으로 비유되는 입시경쟁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그 포연은 넓고 깊게 퍼져나가고 그 영향권 안에 갇힌 자들의 삶은 각박하기가 그지없다. 어떻게 하면 전쟁에서 살아남을까 하고 전전긍긍하던 20 세기 전반기의 시대적 상황과 유사하다고 하면 지나친 비유일까.

어쨋거나 둘 사이의 공통점은 헤어나오기 힘든 `불안`이라고 하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있다는 점이다. 입시를 지켜보는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나 교사들의 생활을 보면 이런 불안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들 모두의 삶을 규정하는 `입시`라는 먹구름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없을까. 이들의 불안을 해소하거나 완화시키겠다는 건 교육개혁의 또 하나의 중요한 목표이다.

그렇지만 웬지 공허하게만 들린다. 어린 학생들이 과외에 내몰리고 밤잠을 줄여 꿈꿀 시간도 모자라고 학부모들도 허리띠를 졸라매느라 허덕이고 교사들도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이런 암울한 시대적 상황은 걷힐 줄을 모른다.<2001.12.4조선일보 19면 일사일언에 게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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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새끼가 강물에서 4~5㎝ 정도 자라면 마침내 바다로 나가게 된다. 강물 속에 사는 많은 물고기들이 넓은 바다로 나가 사는 걸 두려워하며 어린 연어에게 바다는 위험한 곳이라고 일러주지만, 어린 연어가 보기에 그들은 좁은 울타리 속 삶에 만족할 뿐 넓은 바다에서 마음껏 뜻을 펼치며 살기를 포기한 자들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린 연어가 쉽게 바다로 나가지는 못한다. 그들 앞에는 거대한 장벽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바다로 나갔다가는 되돌아오기를 하루 이틀 사흘 거듭하면서 짠물에 몸을 적응시킨다. 이 과정에서 혹독한 시련과 희생이 따른다. 피부색도 바뀌고 몸 속의 살색도 바뀌며 영혼마저도 무쇠처럼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저 멀리 그들이 한 평생 살아갈 북태평양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자연은 어린 연어가 바다로 나아가는 과정에 담금질을 시켜 몸과 마음을 강인하게 해주지만 우리나라의 초중등 교육 12년을 받은 어린 학생들이 성인 사회로 나아가는 관문에서 치러야 하는 통과의례는 사회가 인위적으로 설치한 장벽이다. 그 중에서 성인사회의 일부인 대학사회로의 진입은 어린 연어가 바다로 나갈 때의 시련보다 더 혹독한 것이 아닐까 싶다.

고등학교 3년간의 내신경쟁을 거치고 수능이라는 장애물도 넘고 논술이라는 관문도 넘어야 한다.이 과정에서 젊음이라는 생애 최고의 선물은 거의가 소진되고 만다. 어린 연어가 짠물에 담금질 하는 건 자연의 위대한 섭리이지만 고등학교까지의 정규교육을 마치고 대학을 선택하고자 하는 어린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입시라는 성인식 속에는 어떠한 신비스러움도 담겨있지 않다. 있다면 오직 어른들의 추악한 계산만 있을 뿐이다. (2001.12.15 조선일보/ 일부고침 2008.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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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걱정없는 세상의 출범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칼럼란까지 배려해주어 더욱 고맙습니다. 앞으로 좋은 글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선 옛글 한편 올립니다.  6년전 이글을 보고 충실한 추종자를 얻었던 경험이 새로와 맛보기(?)로 올립니다. 지금은 그 추종자가 대립각을 세우니 조금 뜻밖이기는 합니다만 그것도 교육운동 전선의 한 추억이 되겠지요. 모두들 건강하시고 많은 성과를 거두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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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사계가 다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지만 나에게는 특히 가을이 아름다
운 것 같다. 왜 그런지 가을은 이 여린 가슴마저 한 줌의 재가 되도록 태우는 것 만 같다.
낙엽이 물드는 소리에 이끌리어 놀란 듯이 화들짝 설악행 버스에 올랐다. 목적지는 오색.

나는 설악이라면 오색이 제일 좋다. 오색은 서울에서 갈 때 진부령이나 미시령을 거쳐 설악
동에 가는 것보다 가까워서 접근하기도 좋고 대청봉으로 가는 최단코스가 있는 곳이며 그리
고 단풍의 다른 이름이 오색이 아닐른지. 인제 원통을 거쳐 장수대를 통과하여 한계령 정상
마루를 넘어가면서 감상하는 만산홍엽(滿山紅葉)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장관이다. 금
년은 수해로 지표면이 할퀴어 곳곳의 도로가 보수중이기는 했지만 오히려 단풍에는 더없이
좋은 해라고 한다.

제법 큰 마음 먹고 간 산행이지만 민박을 하고 새벽같이 일어나 보니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
리고 하늘은 구름이 두껍게 내리 깔려 등산은 엄두도 못낼 일이다. 아뿔사. 갑자기 산행에
나서는 바람에 일기예보를 챙기지 못했던 게 불찰이었다. 전날 뉴스에 비구름이 살짝 지나
간다고는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오늘 하루(10월 15일)를 위해 낙엽에 대한 나의 입장을 새
롭게 정리할 필요가 생겼다. 가을 비 속의 낙엽도 `가을비 속의 우산`처럼 낭만이 있을 거라
고.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보니 과연 맑은 날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 특별한 감흥이 일어
나는 것이었다. 역시 설악의 단풍은 일기와 무관하게 그의 장려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옛날 읽은 수필이 생각난다. 낙엽을 긁어모아 태우면서 고소한 커피냄새가 난다고 하던 수
필. 그 글에서 낙엽처럼 인생을 불태우며 살다가 마지막에는 한 줌 재로 미련없이 사라지는
그런 인생이고 싶다고 하던.

어떻게 하면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짙붉게 타오르는 단풍을 보면서 한없이 부러워하고
한편으로 제가슴 타는 아픔도 느끼며 살아온 인생이지만 회한이 남는다. 도저히 잊지 못할
수많은 사연들을 어떻게 한줌의 재로 변하게 태워 없앨 수가 있을 것인가. 겁을 내고 두려
워하고 주저하고 머뭇거리다가 가버린 인생. 덕지 덕지 지꺼기만 잔뜩 쌓인 내 인생을 어떻
게 저 낙엽처럼 선홍의 빛이 감돌며 타오르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아서라. 욕심이러니.

그래도 교육운동하면서 만나본 어린 학생들의 애처러운 눈망울을 잊을 수는 없다. 입시시즌
때마다 좌절하고 자살하는 200명 가까이 되는 청소년들의 간절한 소망을 생각할 때마다 울
컥 솟아나는 분노와 설움에 몸서리를 친다. 30년도 더 지나 우리 사회에 관행처럼 되버린
연속시리즈 자살극을 언제 어떻게 하면 멈추게 할 수 있을런지. 남은 여생을 그들을 위해
바치고 싶다. 그렇게 한 대가로 보상을 받아 죄업을 씻고 낙엽처럼 그렇게 홀연히 흔
적도 없이 사라질 수만 있다면. 아 아 !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산홍엽은 나에게 그렇게
살라고 가르쳐주고 있는 것만 같은데.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을런지. 2002.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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