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책자 내용을 완성한 후 이것을 어떻게 책자로 편집할지가 고민이었다. 사실 나는 중고등학교 때에도 나름대로 미술이나 시각 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좀 있었고, 좋은교사운동 시절에도 웬만한 팜플렛은 디자인 간사와 함께 일을 해왔기 때문에 그렇게 풀어갈까 생각했다. 다만, 늘 시각 디자인에 대한 고민을 할 때 도움을 주던 지인 한분을 찾아서 자문은 받기로 했다. 워낙 출중하신 분이라. 그분은 중고등학교에 자녀를 보내본 웬만한 분들은 아시리라 생각되는 초대형 힛트 상품인 ‘우선순위 영단어’라는 단어장을 만든 비전 출판사 안준근 사장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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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영어 단어장을 만들 때 좋은 단어장을 만들어야한다는 일념으로, 대충 만들어 학교 보충수업 영어 교재용으로 영업력으로 밀어넣기보다는, 학생들이 서점에서 자발적으로 구매하도록 경쟁력 있는 책으로 만들어야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늘 새로운 생각을 몇곱절 하시는 분으로 정평이 나있는 분이다.

그분을 찾아가서 시안을 보여드렸다. 3000천 쪽에 걸친 내용을 50여 페이지에 걸쳐 빼곡히 정리한 그 소책자 원고를 보여드렸더니, 대뜸하시는 말씀. “내가 보니 사교육과 관련된 정보를 담은 이 소책자는 아마 대한민국에서 거의 최초일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과학적 근거와 객관적 데이터를 가지고 설득하려는 내용이 너무 좋습니다. 다만 문제는, 너무 표현이 어렵고,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고, 또 표지 제목 또한 너무 어렵습니다. 아무리 좋은 정보이면 뭐합니까? 사람들이 보지 않는데... 밤에 큰 배가 지나가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배를 본 적이 없는데... 철저하게 읽고자 하는 사람들의 눈에 맞추어야합니다. 이 책을 누가 읽기를 원합니까? 학부모이지요? 그럼, 물고기를 잡으려면 자신이 물고기가 되어 봐야하는 것입니다.” 그런 말로, 심혈을 기울여 가져간 내용을 완전히 걸레로 만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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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꼭지 정도로 정보를 분류한 것은 좋습니다. 그런데 3쪽으로 나열하면 시각적으로 순서가 엉킵니다. 2쪽으로 줄이세요. 대안도 너무 많아요. 골치 아파요. 한줄이나 두줄로 줄이세요. 그래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고 싶은 내용을 감추지 말고 헤드라인으로 먼저 드러내고, 그 다음 설명을 붙이세요. 문장도 너무 어렵습니다. 전문가스러운 표현 다 없애시고, 옆집 아줌마 앉혀놓고 소책자 들고 설명해준다는 기분으로 모든 문장을 다 고치세요.”

아, 그때의 절망감이란... 틀린 이야기는 하나 없는데, 그 말대로 하려니, 너무도 큰 공사라고 느껴졌다. 갈 길은 먼데 발목이 잡힌 느낌. 그러나 하나같이 정확한 지적에 착한 학생처럼 순종하며 일을 하기로 했다. 50여쪽, 그것도 턱없이 적은 분량이라 생각했던 그 분량을 24쪽으로 줄이고, 중심 정보를 헤드라인화시키며, 대안을 1-2줄로 줄이는 일은 참 책을 새로 만드는 일에 다름이 아니었다.

입시사교육 거품 정보 12가지, 그런 어려운 표현은 ‘아깝다 학원비’라는 쉬운 제목으로 바뀌었다. 거품이 끼였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학부모들은 그보다 돈을 더 아까워하기 때문에, 학부모에게 실제 유익이 되는 내용을 제목화시켜야한다는 논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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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및 내지 디자인을 하는 것도 큰 일이었다. 원래는 함께 일하던 어느 지인의 도움을 받기로 했는데, 도무지 시간이 여의치 않았고, 이곳 저곳 편집 기획사에 작업을 의뢰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았고, 아무에게나 맡기기에는 작품의 품질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 안준근 사장님의 도움을 받아 끙끙대며 표지 샘플과 내부 틀 한 꼭지를 가까스로 정리했으나, 남은 일을 함께 일하던 지인에게 계속 해달라고 하기에는 너무 무리한 일정이었다. 고민하다가, 결국 모 언론사 김경래 소장님을 만나 마무리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지나고 보면, 김 소장님이 마무리를 하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새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는 대공사를 치루셨다. 수많은 수정 요청, 바쁘신 우리나라 1급 디자인 편집 전문 책임자에게 오탈자 하나씩 이야기하며 수정을 부탁하는 그런 죄송스러운 과정을 통해 책자가 만들어졌다. 그분이 책임을 지고 다른 두 분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이 책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런 수고비용을 드릴 수 없었다. 다만 그분들 이름 석자를 책 표지에 써넣는 것으로 죄송함과 고마움을 대신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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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 필름을 들고, 교정지의 색깔이 문제가 있는 듯해서 색감의 변화를 주어 몇 번의 샘플을 만든 후, 하나를 선택하였지만, 인쇄과정을 안심할 수 없어서, 결국 마지막 인쇄를 하는 날, 윤지희 대표와 함께 인쇄소를 찾아갔다. 거대한 윤전기에서 나온 샘플을 보고, 수정을 지시하는 우여곡절의 과정을 거쳐, 드디어 ‘아깝다 학원비!’ 소책자는 완성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 소책자를 보고 시민단체에서 나온 소책자라고 보기에는 너무 잘 나왔다고 한다. 늘상 NGO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거칠게 하기 마련인데, ‘아깝다 학원비’라는 친숙하고 대중적인 카피로 사람들에게 다가갈 줄 아는 것, 그런 센스를 놀라워한다. 그러나 그런 센스는 우리에게 있었다기 보다, 이 소책자를 만드는데 도움을 그런 두 분의 기여가 결정적이었다. 우리의 공로는 그런 분들의 조언을 들었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피켓과 성명서로 세상을 바꾸는데 익숙했던 사람들이 이런 바깥 세상의 전문가들을 만나, 대중과 소통하는 새로운 안목을 경험하고, 그분들의 힘을 모아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은, 참 힘겹지만 오케스트라의 협연처럼 즐겁고 흥분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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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반드시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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