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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학부모의 고백

 죽을 때까지 학원 가라는 나라 

안 병 화(중학교 교사이자 학부모)

         

지난 5,6년간 저는 학교와 가정에서 참으로 힘들게 생활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문제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생각하면 제 고통과 아픔은 알게 모르게 우리나라의 입시제도와 사교육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는 듯합니다.

저는 공립중학교에서 23년간 근무한 평범한 교사입니다. 학교 교사로 생활하면서 항상 아이들의 문제에 대한 고민은 있게 마련이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 양상은 달라진 것 같습니다. 학업에 전혀 무관심한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더 공부를 시킬까 고민하며 학교에 남겨 공부를 시켜 보기도 하고 학부모님께 아이들의 학업에 신경을 좀 써 주십사 부탁드리기도 했었는데, 요 몇 년 동안에는 그런 고민보다는 부모님의 과도한 기대와 무한경쟁 속에서 과중한 학업의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우리 아이들이 측은하고 불쌍하다는 생각만 많이 하게 됩니다. 아이들과 가까이 있으면서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고 아파하는가를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를 볼 때 바르르 떨리는 아이들의 손과 긴장된 얼굴을 보면 수능 감독교사로 들어갔을 때 온 학교 전체에서 느껴지는 숨 막힘과 그 무거움이 느껴져 이 아이들이 지내야할 그 6년의 세월이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아이들이 점수에 얼마나 민감한지 감점한다고 말을 제일 무서워합니다. 차라리 때려달라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저도 모르게 점수로 아이들을 통제하려고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한 반에서 학원 안다니는 아이가 거의 없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시간 틈틈이 학원 숙제를 부지런히 하다가 학교가 끝나면 부지런히 집에 가서 가방을 바꿔들고 학원을 향합니다. 수업 시간에 십년 전의 ‘사춘기’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중학생들이 학교 끝난 후에 저녁 내내 친구들과 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은 “말도 안 돼. 쟤네들은 학원도 안가냐?!” 말하며 학원 안다니는 생활을 진짜로 신기하게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시험기간이 되면 학원은 8교시를 한답니다. 학교에서 6교시, 학원에서 8교시..... “선생님. 저 어제 14교시 했어요.”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항상 바쁘고 피곤하고 분주합니다. 아이들이 그렇게 기다리던 임원 수련회 가는 버스 속에서 놀란 적이 있습니다. 신나게 재잘대며 떠들 줄 알았던 아이들이 너무 조용해서 뒤를 돌아보니 모두 자고 있었습니다. 수련회의 설렘 앞에서도 그 아이들은 그렇게 피곤했나봅니다.

이 아이들의 뒤에는 역시 고통 중에 있는 엄마들이 계십니다. 성적 확인표가 나오는 날에는 엄마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외출을 삼간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성적이 잘못 나온 아이의 엄마는 속상해서, 잘 나온 아이의 엄마는 미안해서 못 나온답니다. 그래서 아이가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해서 심리 치료를 받으면서도 학원을 보내고 과외를 보내는 것은 그만 둘 수가 없다고 고집 하는 어머니도 보았습니다. 담임반 아이들과 모둠모임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미술치료를 한답시고 그린 나무 그림과 사람 그림은 전문가가 아닌 제가 봐도 그 아이들이 얼마나 힘이 없고 죽어가고 있는지 마음이 정말 아팠습니다. 한 아이가 말문 열자 서로 얼마나 힘든지 이야기하면서 ‘나만 힘든 것이 아니었구나.’하며 서로 위로하며 엉엉 울어버려서 저도아이들과 함께 울어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도대체 교사로서 애통한 마음만 있지 이 고통 받는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야할지 별 해답이 없어 아이들에게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그저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뿐입니다.

그러나 집에 오면 저의 고통의 양상은 달라졌습니다. 저는 6년 전에 늦은 결혼을 했습니다. 그 때 초등학교 6학년을 막 졸업한 아들이 올해 고3이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애통해하며 이 나라의 교육제도에 분개하며 안타까워하던 어찌 보면 공의롭고 격조 높은(!) 제 고민은 집에서는 적나라한 고민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 아들은 제가 학부모로부터 많이 들어왔던, 공부를 참으로 안하고 컴퓨터 게임에만 시간을 보내는 전형적인 남학생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아들의 낮은 성적표를 보며 애통해하며 종일 컴퓨터 게임하고 앉아있는 모습에 분개하며 분노했습니다. 아들이 공부를 못한다는 것이 왜 그렇게 속상하고 절망스럽고 화가 나는지......  제 자신도 이해가 가지 않고 어이가 없었고 정말 답답했습니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지만 20여 년 동안 공교육 교사로 일하고 있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주변의 선생님들의 조언을 받아 여기 저기 학원을 보내고 과외를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별 효과도 없이 사교육비가 뭉텅뭉텅 나갔습니다. 어쩌다보니 고액과외도 한 번 받아 보았습니다. 선교사로 나가있는 언니가 한 달 생활비로 받는 후원금의 두 배의 과외비를 꼬박 꼬박 과외 선생님께 보내면서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내가 정말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지?!’ 답답하다 못해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아이의 성적은 쉽게 오르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게임은 이미 끝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성적을 올리기 위해 돈을 들이고 수고를 하는 사이에 아들은 아들대로 상처를 받고 저는 저대로 지쳐가면서 서로의 관계는 더 힘들어졌습니다. 어떤 때는 ‘어떻게 이렇게 믿음이 없는가?’ 제 자신의 믿음을 탓해보기도 하며 회개합니다. 목사님 설교 말씀을 들으며 제 마음을 추스려 보기도 합니다. “꼴찌도 사랑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약한데 강함이 되시는 주님께서 공부 못하는 제 아들도 분명히 인도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기도하며 믿음으로 이겨보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현실 속에서는 다시 어떻게 해야 할지 해답이 못 찾겠습니다. 이 무한경쟁 시대의 급류 속에서 학부모가 도대체 믿음으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정말 알 수 없었습니다.

얼마 전에 예레미야 애가 2장 12절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자기 어머니에게 “곡식과 포도주가 어디에 있어요?”라고 묻는다. 그들이 부상당한 군인들처럼 성 광장에서 쓰러지고 어머니 품에서 죽어간다.“ (쉬운 성경) 우리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우리 아들을 포함해서!)도 길거리에 혼미하여 쓰러져 죽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참 행복이 어디에 있어요?” 라고 물으며 부상당한 군인처럼 도시에서 쓰러지고, 엄마 품에 있지만 보호받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전 ‘24시간 학원교습’을 허용하려는 서울시위원들의 뉴스를 보았습니다. “아직 공부 많이 해서 죽은 아이는 없다.”라는 섬뜩한 시의원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학원에 가라는 어른들이 있는 나라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이야기가 무지한 시의원의 말로 들리지 않습니다. 이 땅의 아이들이 죽을 때까지 한 번 해보겠다는 사단의 선포로 들립니다. 새로운 운동은 어찌 보면 이 세상 정사 권세와의 싸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제발 이 땅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그리고 엄마 아빠들이 사교육 걱정을 하지 않고 아이들의 ‘자기다움’을 기뻐하며 서로를 인정하며 함께 살아가는 그런 세상이 빨리 왔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이 내용은 3월 19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개소식 때 안병화 선생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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