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 제일 자신 없었던 저는 울 큰아들이 수학이 재밌다고 할 때 정말 신기했습니다. 웬만한 문제는 쓱쓱 풀고 사고력 문제 나오면 더 열심히 풀더라고요. 그래서 영재인줄 알았습니다.

중2때 멋모르고 과고 입시에 뛰어들었습니다. 남들은 초등4학년 때부터 준비해야한다는데 그 말이 들리지 않았어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나요. 과고 입학설명회를 가면 과학수학내신만 좋으면 뽑는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죠. 각종 올림피아드 금상 이상 있어야 하고 kmo점수도 있어야하고....

아무리해도 성적은 오르지 않고 떨어지기만 했어요. 학교내신은 그럭저럭 유지했지만 과고 들어갈 성적엔 미치지 못하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원에선 절대로 절대로 1% 가능성도 없다는 말을 안해주더라고요. 마지막 순간까지도.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늦었습니다. 그 과정을 약 2년 정도 지나오면서 친구도 잃고, 중학교 시절 추억도 만들지 못하고, 목표도 못이루고. 결과물이 없는거죠. 게다가 저와의 관계까지 나빠졌고요. 이미 아이는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고 공부에 대한 의욕까지 놓아 버린것 같았어요 .

오늘 강의를 들으니 불과 2년전 제 모습을 다시 보고 있는듯 하여 몹시 불편했습니다. 아이의 공부습관, 성향, 적성등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몰아부쳐 사교육으로 내몰아 '아동학대'를 했다는 죄책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옵니다. 아이한테 정말 미안하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몇만번 사죄해도 용서가 안될것 같은 어리석은 엄마입니다.

아이가 주체가 되지않는 학습은 그것이 사교육이던 자기주도학습이라는 이름의 또다른 그것이라도, 해답이 될수는 없을겁니다. 철이든 아이는 스스로를 객관화해서 볼수있고 스케쥴 관리가 된다고하죠 . 그게 가능할 때까지 기다려 볼려구요.

울 아이는 그 후로 미대를 고집합니다. 어떤 속마음인지는 터놓지않아요. 하지만 이젠 강요하지 않으려구요. 네가 선택하고 최선을 다하고 즐겨라. 대신 결과에 책임지자. 엄마는 60억 인구에서 네가 엄마아들로 태어나 줘서 정말 고마워. 사랑해라고 날마다 문자날려줍니다. 그때의 엄마 욕심을 면죄 받을수 있기를 바라고요. 또 정말 사랑하거든요. 이런 사랑 그동안 많이 못줘서 미안하다. 울큰:)

어려운 질문 공세에도 진심으로 답변해주신 강사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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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사교육 업계의 이단아까진 아니더라도 그는 과연 삐딱했다. 업계의 비밀을 누설한다는 것이 어디 웬만한 배짱으로 가능한 일이던가? 그에게 일종의 ‘반골기질’이 감추어져 있음이 분명하다. 이렇듯 자칭 ‘삐딱한 사교육업자’ 대치동 <쌤 수학전문학원> 원장 최영석 선생의 강의는 ‘대한민국 사교육문제의 근원은 대학 입학’이라는 씁쓸한 명제와 함께 시작되었다.

1. 수학성적에 따라 갈리는 인생의 명암?

대표적인 사교육 과목인 영어와 수학. 이 가운데 어릴 때는 영어사교육이 우위를 점하지만 중학교 이후 차츰 수학사교육에 역전 당한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영어보다는 수학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더 크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 이외에도 다른 아이들과 점수차를 벌릴 수 있는 과목이 수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이과를 선택해야 하는 시기(고1 말기)가 되면, 선택의 기준은 장래 진로나 적성을 고려하기보다는 수학에 대해 느끼는 공포심이 되어버리는 경향이 나타난다. 심지어 ‘수학 때문에 인생이 바뀌었다’는 한탄마저 나온다. 그가 내린 진단은 간단하고도 명료했다. “수학을 피해가려고 문과를 선택하는 겁니다.”


2. 수학 사교육 시장의 변화

최근 과학고나 외고 같은 특목고 입시의 변화에 따라 수학 사교육 시장의 흐름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단다. 영재고나 민사고를 제외하면 내신이 당락의 주요소가 됨으로써 KMO(Korea Math Olympiad : 한국수학올림피아드)를 위한 아동학대(?) 수준의 과도한 선행학습의 명분이 약해진 탓이다.

하지만 교과 선행학습을 위주로 하는 일반적인 학원은 변함없이 90% 정도의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고, 6~7% 가량을 차지하던 KMO 대비반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반해 소수 정예 중심의 고액과외인 ‘사고력 수학’이나 ‘자기주도 학습’이 조금 늘어가는 추세다.


3. 소모적인 선행(학습)의 폐해

수능은 단판 승부다. 삐딱한 사교육업자는 이와 같은 현재의 대학입시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선행학습을 위주로 하는 사교육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요원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선행학습은 무조건 나쁜 것인가? 그는 선행학습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학업성취도에 따른 자연스러운 선행학습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그는 약간 흥분한 듯 힘주어 말했다. 자신의 아이를 출발선 앞에서 뛰게 하려는 불공정함과 학원의 생래적 속성의 합작품인 선행학습의 폐해는 심각하다고. 대부분의 경우 선행학습은 ‘배우기는 했지만 아는 것은 없는’ 학생들을 양산하고, 이와 같은 ‘외형 위주의 학습습관’은 학교 공부의 소홀로 이어지고 결국 내신에도 실패하게 된다.

“학원에서 공부 많이 시킨다고 좋아할 것 없어요. 시험문제를 누가 냅니까? 학교 선생님이 냅니다. 학원에서는 시험에 어떤 문제가 나올지 모르니 기출문제 예상문제 등 나올 만한 문제는 죄다 뽑아서 그것을 풀게 하는 겁니다. 학교 수업에 충실하지 않으면서 좋은 내신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공부의 가장 큰 적은 수동적인 자세다. 또한 배운 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정리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문제를 풀어도 자기 것이 되지 않는다. 선행에 따른 외형 위주의 학습 형태는 스스로를 객관화(되돌아보고 냉정하게 평가)할 기회와 관점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4. 사교육은 최선이 아닌 최악을 모면하기 위한 노력

그는 ‘공부는 철드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철듦이란 스스로 목표의식을 갖고 인내하면서 우선순위를 매기고 시간을 안배하여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을 뜻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녀에 대한 믿음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기다려주지 않을 뿐 아니라 불친절하기까지 하다. 여기서 이른바 ‘관리’의 필요성이 부상하게 되지만, ‘관리’는 외형적인 눈가림에 불과하다.

“(그것은)아이를 철들게 만드는 게 아니라 ‘철든 아이처럼 만들어 줄 뿐입니다.”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은 고난이도 문제에 대한 비교우위를 말한다. 그리고 최근 출제되는 문제들의 유형이 복잡한 계산 문제에서 사고력을 요하는 문제로 바뀌고 있어서 개념에 대한 이해와 응용, 확장 능력이 필요한데, 선행과 반복을 특징으로 하는 학원수업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학습에 있어서 최선은 ‘알아서 공부하고 목표달성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천운이 따라야” 하는 특별한 경우이고, 차선은 입시결과에서는 다소 곡절을 겪을지라도 그 과정에서 ‘자활능력’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는 과도한 사교육을 시키느라 돈은 돈대로 쓰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도 입시에 실패하고 수동적인 아이로 키우는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또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가 내놓은 대안은 이러했다.

“최악의 경우를 피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최소화시켜서 사교육을 활용하는 현명함과 흔들림 없는 소신이 필요합니다.”  딩동댕~! 정답이다. 하지만 왠지 불안하다. 뭔가 찝찝한 구석이 남아 있는 듯. 그래서 이렇게 묻는다.

- 과연 현실에서 학교공부만으로 대학 진학이 가능한가?
- 그렇다면 학교공부와 대입이 간극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 수능 점수로 좌우되는 현생 입시제도는 공정한가?

여기서 생기는 불안감. 사교육은 바로 이 불안감을 먹고 자란다. 그는 역시 삐딱했다. 이번 강의를 통해 수학 사교육에 대한 부담을 떨쳐버리기를 간절히 바랐을 청중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하지만 어찌 첫 술에 배부르랴? 아직 네 번의 강의가 남아 있지 않은가? To be continued ~... 연속극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다. 말미에 그가 던진 질문은 이어질 강의들에 예고편이라고나 할까? “학원에서 만들어진 90점짜리와 스스로 이룬 80점짜리 중 누가 더 경쟁력이 있다고 보십니까?”

강의는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하지만 강의시간과 맞먹는 질의응답시간. 그만큼 목말라있었던 걸 게다. ‘타는 목마름’을 해소시켜 줄 거라 기대하며 나머지 강의들을 기다린다.

 
 
 수원 영통에서 작고 건강한 교회를 일구는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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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사교육 업계의 이단아까진 아니더라도 그는 과연 삐딱했다. 업계의 비밀을 누설한다는 것이 어디 웬만한 배짱으로 가능한 일이던가? 그에게 일종의 ‘반골기질’이 감추어져 있음이 분명하다. 이렇듯 자칭 ‘삐딱한 사교육업자’ 대치동 <쌤 수학전문학원> 원장 최영석 선생의 강의는 ‘대한민국 사교육문제의 근원은 대학 입학’이라는 씁쓸한 명제와 함께 시작되었다.

1. 수학성적에 따라 갈리는 인생의 명암?

대표적인 사교육 과목인 영어와 수학. 이 가운데 어릴 때는 영어사교육이 우위를 점하지만 중학교 이후 차츰 수학사교육에 역전 당한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영어보다는 수학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더 크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 이외에도 다른 아이들과 점수차를 벌릴 수 있는 과목이 수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이과를 선택해야 하는 시기(고1 말기)가 되면, 선택의 기준은 장래 진로나 적성을 고려하기보다는 수학에 대해 느끼는 공포심이 되어버리는 경향이 나타난다. 심지어 ‘수학 때문에 인생이 바뀌었다’는 한탄마저 나온다. 그가 내린 진단은 간단하고도 명료했다. “수학을 피해가려고 문과를 선택하는 겁니다.”


2. 수학 사교육 시장의 변화

최근 과학고나 외고 같은 특목고 입시의 변화에 따라 수학 사교육 시장의 흐름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단다. 영재고나 민사고를 제외하면 내신이 당락의 주요소가 됨으로써 KMO(Korea Math Olympiad : 한국수학올림피아드)를 위한 아동학대(?) 수준의 과도한 선행학습의 명분이 약해진 탓이다.

하지만 교과 선행학습을 위주로 하는 일반적인 학원은 변함없이 90% 정도의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고, 6~7% 가량을 차지하던 KMO 대비반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반해 소수 정예 중심의 고액과외인 ‘사고력 수학’이나 ‘자기주도 학습’이 조금 늘어가는 추세다.


3. 소모적인 선행(학습)의 폐해

수능은 단판 승부다. 삐딱한 사교육업자는 이와 같은 현재의 대학입시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선행학습을 위주로 하는 사교육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요원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선행학습은 무조건 나쁜 것인가? 그는 선행학습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학업성취도에 따른 자연스러운 선행학습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그는 약간 흥분한 듯 힘주어 말했다. 자신의 아이를 출발선 앞에서 뛰게 하려는 불공정함과 학원의 생래적 속성의 합작품인 선행학습의 폐해는 심각하다고. 대부분의 경우 선행학습은 ‘배우기는 했지만 아는 것은 없는’ 학생들을 양산하고, 이와 같은 ‘외형 위주의 학습습관’은 학교 공부의 소홀로 이어지고 결국 내신에도 실패하게 된다.

“학원에서 공부 많이 시킨다고 좋아할 것 없어요. 시험문제를 누가 냅니까? 학교 선생님이 냅니다. 학원에서는 시험에 어떤 문제가 나올지 모르니 기출문제 예상문제 등 나올 만한 문제는 죄다 뽑아서 그것을 풀게 하는 겁니다. 학교 수업에 충실하지 않으면서 좋은 내신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공부의 가장 큰 적은 수동적인 자세다. 또한 배운 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정리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문제를 풀어도 자기 것이 되지 않는다. 선행에 따른 외형 위주의 학습 형태는 스스로를 객관화(되돌아보고 냉정하게 평가)할 기회와 관점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4. 사교육은 최선이 아닌 최악을 모면하기 위한 노력

그는 ‘공부는 철드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철듦이란 스스로 목표의식을 갖고 인내하면서 우선순위를 매기고 시간을 안배하여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을 뜻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녀에 대한 믿음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기다려주지 않을 뿐 아니라 불친절하기까지 하다. 여기서 이른바 ‘관리’의 필요성이 부상하게 되지만, ‘관리’는 외형적인 눈가림에 불과하다.

“(그것은)아이를 철들게 만드는 게 아니라 ‘철든 아이처럼 만들어 줄 뿐입니다.”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은 고난이도 문제에 대한 비교우위를 말한다. 그리고 최근 출제되는 문제들의 유형이 복잡한 계산 문제에서 사고력을 요하는 문제로 바뀌고 있어서 개념에 대한 이해와 응용, 확장 능력이 필요한데, 선행과 반복을 특징으로 하는 학원수업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학습에 있어서 최선은 ‘알아서 공부하고 목표달성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천운이 따라야” 하는 특별한 경우이고, 차선은 입시결과에서는 다소 곡절을 겪을지라도 그 과정에서 ‘자활능력’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는 과도한 사교육을 시키느라 돈은 돈대로 쓰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도 입시에 실패하고 수동적인 아이로 키우는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또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가 내놓은 대안은 이러했다.

“최악의 경우를 피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최소화시켜서 사교육을 활용하는 현명함과 흔들림 없는 소신이 필요합니다.”  딩동댕~! 정답이다. 하지만 왠지 불안하다. 뭔가 찝찝한 구석이 남아 있는 듯. 그래서 이렇게 묻는다.

- 과연 현실에서 학교공부만으로 대학 진학이 가능한가?
- 그렇다면 학교공부와 대입이 간극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 수능 점수로 좌우되는 현생 입시제도는 공정한가?

여기서 생기는 불안감. 사교육은 바로 이 불안감을 먹고 자란다. 그는 역시 삐딱했다. 이번 강의를 통해 수학 사교육에 대한 부담을 떨쳐버리기를 간절히 바랐을 청중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하지만 어찌 첫 술에 배부르랴? 아직 네 번의 강의가 남아 있지 않은가? To be continued ~... 연속극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다. 말미에 그가 던진 질문은 이어질 강의들에 예고편이라고나 할까? “학원에서 만들어진 90점짜리와 스스로 이룬 80점짜리 중 누가 더 경쟁력이 있다고 보십니까?”

강의는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하지만 강의시간과 맞먹는 질의응답시간. 그만큼 목말라있었던 걸 게다. ‘타는 목마름’을 해소시켜 줄 거라 기대하며 나머지 강의들을 기다린다.

 
 
 수원 영통에서 작고 건강한 교회를 일구는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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