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맡은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는 최수일 선생을 가리켜 “한국 수학교육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소개했다. 최 선생은 수학교육의 발전과 수학의 대중화를 목적으로 하는 수학교사들의 연구단체인 ‘전국수학교사모임’((구) 수학사랑)의 결성과 발전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수학교육 정책 부문의 전문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최 선생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수학교사답게 수식으로 표현했다. “10+10=0” 처음 10년의 교사 생활 후 그는 ‘전국수학교사모임’을 결성했고, 10년을 더 교사로 살았다. 하지만 공허했다. 휴직을 감행했다. 제로베이스.. 맨땅에서 그는 다시 시작했다. 그로부터 3년 후 다시 교직으로 돌아온 그의 모습은 달라져 있었다. 열심히 가르치는 부지런한 교사에서 할 수만 있으면 가르치지 않는 게으른 교사로..

‘가르치지 않는 교사’.. 최 선생의 교육철학 제 1조다. 그는 가르치지 않는다. 자료화면에서 보았듯이 그가 수업하는 교실의 삼면을 채우고 있는 칠판들은 그의 글씨가 아닌 학생들의 글씨로 가득하고 수업은 학생들이 이끌어 간다. 그는 이 수업을 ‘배움의 공동체’라고 불렀다.

선생은 이번 강의에 앞서 ‘사전 과제’를 내주었고, 무려 35명의 착실한 응답자가 있었다. 그는 학생(?)들이 제출한 답안들을 보여주었다. 이런 답도, 저런 답도 있었고, 게 중에는 푸념도 섞여있었다. 도대체 답이 뭘까? 그 문제들을 푸느라 끙끙댔던 이들은 허탈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과제를 내준 목적이 학생에게 답을 찾기 위한 치열한 고민의 과정을 경험케 하려는 것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이미 이 수업의 피동적 객체가 아닌 능동적 주체가 되어 있었다. ‘이럴 수가..? 수학시간 맞아?’ 그가 말하는 ‘배움의 공동체’는 ‘바로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사건이었다.

오늘 최 선생을 이 자리에 서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아마도 일본의 교육학자인 사토마나부인 듯하다. 선생은 강의를 하는 동안 사토마나부가 지은 『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손우정 외 역, 2009, 북코리아)을 비롯하여 로버트 & 미셸 루트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박종성 역, 2007, 에코의 서재)에 이르기까지 무려 14권에 달하는 책들을 소개했다. 이 책들은 오늘날 교육 현장의 심각성을 정확히 보게 해주는 것은 물론 문제들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는 수학공부에 있어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으로 ‘경청’하지 않음과 ‘사고’하지 않음을 들었다. 이들이 갖고 있는 지식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관계를 맺는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은 세계 꼴찌 수준이며,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바보가 되어간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학교를 ‘배움의 공동체’로 가꾸어가는 것이다. 사토마나부의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손우정 역, 2006, 에듀케어)라는 책은 우리나라의 학교들을 ‘배움의 공동체’로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 동기와 방법론을 제공한 것 같다. 실제로 그는 우리나라 혁신학교의 대부분을 컨설팅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 열기가 좀 사그라진 것 같은데, 한 때 우리나라 부모들이 유태인의 자녀 교육에 폭발적인 관심을 기울였던 적이 있었다. 많은 부모들이 ‘유태인의 자녀 교육 따라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참 대단한 열심들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배워야 할 점을 빠뜨린 게 분명하다. 유태인 엄마와 한국인 엄마를 대조해놓은 자료 ‘주이시 맘 VS 코리안 맘’이 제기한 결론 가운데 하나는 이러하다. “유태인은 자신의 자녀가 ‘남과 다른 개성적인 인재로 자라기’를 바라지만 우리는 자녀가 ‘남보다 앞서는 1등이 되기’를 바란다.” 이를 두고 유태인 자녀 교육의 ‘한국적’ 적용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대략난감’이란 용어는 이럴 때 쓰라는 게 아닐까. 유엔거버넌스센터에서 일하는 한국인 김정태 홍보실장이 쓴 책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를 한 줄로 줄이면 이렇다. "Not the Best, But the Only!"

목적과 본질을 혼동할 때 ‘주객전도’의 양상이 나타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교육이라고 예외가 될 순 없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푸는 것(Solving Problem)에만 관심을 갖고 있지 문제 푸는 방법에 문제가 있음(The Problem of Solving)을 간과하는 것 같다.

최 선생의 말에 따르면, 수학공부는 공식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원리를 터득하는 것이고, 답을 맞히는 게 아니라 풀이의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 공부의 목적이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수학적 사고력과 창의성이 발달하기 때문이다. 오다 도시히로가 쓰고 박인용이 옮긴 『진짜 수학』(플러스예감)이라는 책은 수학을 못하는 아이의 특성 7가지를 이렇게 말한다. ① 융통성이 없다. ② 일상생활의 감각에만 의존한다. ③ 해법은 하나라고 생각한다. ④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한다. ⑤ 실패를 두려워한다. ⑥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다. ⑦ 푸는 데 집중하지 못한다. 남 얘기 같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수학공부를 해야 할 것인가? 바람직한 수학학습법은? 선생은 이를 6가지로 정리했다.
① 고생해서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오래 가며 자기 것이 된다.(쉬운 공부는 없다.)
② 한 번에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시간을 두고 여러 번 시도한다.
③ 답을 내는 것에 급급하지 말고 다양성에 무게를 두어라.(틀려도 좋으니 이렇게도 풀어보고 저렇게도 풀어보라는 말이다.)
④ 친구와 아이디어를 공유하되 친구의 생각을 끌어낼 생각을 하라.
⑤ 족집게 강의는 없다. 스스로 요약 정리해야만 다른 사람(친구, 교사)의 도움이 진짜 도움이 된다.
⑥ 모르는 내용이 생겼을 경우에만 남의 도움을 요청한다.. 지당하신 말씀. 한 마디로 ‘자기주도학습’을 하란 얘기다. 덧붙여 그는 ‘하루 2시간 넘는 사교육은 추가적인 성적 향상 효과가 미미’하고 ‘자기주도학습이 사교육보다 수능점수 향상에 효과적’이라는 한국개발원(KDI) 김희삼 연구원의 최근 연구 논문 결과(2011년 3월 28일)를 보여주었다.

그는 수학교과서와 교육과정의 문제점도 신랄하게 지적했다. 그것은 첫째, 교과서가 너무 친절하다는 점. 힌트와 풀이과정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스스로 ‘사고’할 기회를 박탈시킨다. 게다가 가상 데이터를 사용한 형식적 도입과 주객이 바뀐 탐구활동이 수학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리고, 알고리즘을 강요하는 유제풀이는 학생을 단순히 문제 푸는 기계로 전락시킨다. 이런 교과서를 과감히 버려야 한다. 둘째, 학문적 위계가 강하게 남아있어서 한 번 놓치면 따라잡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수업 시간에 비해 교육과정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러면 사고를 (연습)시킬 여유가 없다. 셋째, 의미와 맥락이 없는 단순계산문제가 지루하게 나열되어 있다. 사고 능력이 죽을 수밖에 없다.

교사들의 수업에도 문제가 많았다. 학생의 여건은 살피지 않고 교사 혼자 진행하는 ‘나홀로 50분’(수업), ‘클릭수업’(‘아이스크림’과 같이 사용하기 편리한 다양한 자료들이 완비된 프로그램 활용.. 교사는 그저 클릭만 하면 된다), ’공부는 교사가 하고 학생은 그저 따라 하기만‘ 하는 수업,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진도 빨리 나가기, 선행학습을 전제로 하여 수업을 조직하고 상위반에서는 어려운 문제만 풀게 하는 수준별 수업 등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다. 교사가 제공하는 ’활동지‘ 역시 문제다. 스스로 고민해서 해결해야 할 것을 왜 제공하는지.. 학생들은 누구나 스스로 해보려는 욕구가 내재되어 있다. 하지만 현행 교육은 이를 무시하거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수학을 어려워하는 이유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것은 스스로 해볼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왜 수학을 어려워할까?』(안승철, 궁리)라는 책과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Holt, 공양희 외 역, 2007, 아침이슬)라는 책이 그 이유를 말해준다.

데보라 마이어(Deborah Meier)가 쓴 『The POWER OF THEIR IDEAS』라는 책은 ‘게으른 수학교사’를 예찬한다. 속칭 ‘수학학습 총량 보존의 법칙’에 따르면, 교사의 학습과 학생의 학습은 서로 반비례하며 이 둘의 합은 일정하다. 교사의 가르침이 적을수록 학생은 더 많이 학습한다. 여기서 ‘학습’은 학생이 스스로 터득한 것을 말한다. 최 선생은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인용했다. "teaching is mostly listening and learning is mostly telling"(“가르치는 것은 듣는 것이고, 아이들을 말하게 만들어야 한다.(제발 가르치려고 하지 마라)”), "learners first anf teachers second"(“학생을 앞에 세우고 선생은 그 뒤로 가라”) 이는 자신의 가르침의 철학이기도 하다.

수학교사 최수일의 가르침의 철학을 들었다. 그는 2004년부터 자신은 가르치지 않는다고 했다. ‘무지한 스승’-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가 지은 책 제목(양창렬 옮김, 2008, 궁리)-이야말로 최고의 스승이라고 했다. 교실에 앉아 있는 30명의 머리를 썩히는 일은 직무유기라고 했다. 또 하나는 ‘꼴찌도 행복한 교실’을 만드는 것이 꿈이고, 이를 위해서는 독일의 경우처럼 예습을 금지해야 한다고 했다.(『독일교육이야기-꼴찌도 행복한 교실』(박성숙, 2010, 21세기북스) 중에서) 가슴 한 구석에서 의문이 고개를 쳐든다. 가르치지 않고도 가르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의문이 풀리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최 선생은 ‘배움의 공동체’라고 이름 붙인 자신의 교육현장을 짤막하게 소개했다. 2004년부터 해오고 있는 새로운 방식들.. 이를테면, 교과서 버리고, 풀이와 답 버리고, 그룹 활동을 통한 학생들이 발표하게 하고, 자신은 가르치지 않기.. 가르침 없는 가르침. 말장난이 아니었다. ‘배움의 공동체’가 그것을 실현하고 있었다. 나아가 그는 모든 문제를 초등학교 때 했던 방식으로 풀기를 권장한다. 초등학생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수학하기.. Try and error! 수학적 사고는 거듭되는 시행착오를 먹고 자라는 나무다.

수학’하면 떠오르는 근원적 불만일 수도 있겠다. 도대체 수학을 배우는 이유가 뭘까? 그가 마지막으로 소개한 책 『생각의 탄생』에는 관찰에서 통합에 이르기까지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13가지 단계가 나온다. 최 선생에 따르면 이것을 가장 잘 가르칠 수 있는 게 수학이다. 그런데 현행 수학교육이 “이것을 안 가르치고 ‘학문적 위계’만 가르치고 있다”고 그는 이의를 제기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얘긴가? 그는 “순수수학과 교과목으로서의 수학을 철저히 분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페리와 무어가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단다. “한 명의 수학교사를 키워내려다 만 명이 희생되고, 한 명의 수학자를 키워내려다 천만 명이 희생된다.” 이 대목에서 느껴지는 야릇한 흥분과 쾌감은 나 또한 그 많은 희생자들 중 하나였음을 방증한다.

어렵고 재미없다고 느끼는 수학을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라는 게 교과부의 주문이란다. 하지만 최 선생은 말한다. “재미있는 수학? 그런 건 없다.” 그가 가르치고 싶은 수학은 재미있는 수학이 아니다. 쓸모 있는 수학, 꼭 필요한 수학이다. 그래서 공부하면 할수록 창조적인 생각과 깊은 통찰력을 갖게 되는 수학이다. 이를 위해 수학교과서도 버리고 ‘배움의 공동체’를 가꾸며 ‘가르침 없이 가르치는’ 이상한 수학교사 최수일. 난 그를 ‘한국 수학교육의 이단아’라고 부르련다.

 

강의 후 질의응답 시간.. 시간이 많이 흐른 관계로 짧은 시간 동안 5개의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간략히 소개한다.

1. 그래도 입시환경을 고려하여 효율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를테면, 연산 연습 같은 건 해두어야 하지 않을까?수능 30문제 푸는 데 100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많은 학생들이 문제를 다 못 푸는 것은 연산 때문이 아니다. 연산이 안 돼서 못 푸는 게 아니라 사고가 안 되니까 못 푸는 거다. 사고가 되면 연산할 게 줄어든다.

2. 수학적 사고를 증진시키는 방법이 있나?친구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공부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가능하면 답 없이, 풀이과정 보지 않고 고민하여 푼 다음, “넌 어떻게 풀었니?” 묻고, 가르치면서 공부가 된다. 아이를 선생으로 만들어라!

3. 선행학습에 대한 선생의 분명한 입장이 궁금하다.남의 도움을 받는 것을 전혀 하지 않을 순 없다. 다만 충분히 고민한 후, 꼭 필요한 경우, 최후의 순간에 도움을 요청하게 하라. 그리고 그 이후에는 역시 스스로 (고민하며_하는 것이 중요하다.

4. 수학교육을 위해 부모가 해야 할 일은?부모의 생각을 강요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말고 아이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어라. (숙제) 도와주지 마라. 힘들어도 자기 힘으로 숙제하려고 애쓰는 아이가 (수학도) 잘 하게 된다. (이렇게 저렇게)하라!”고 말하지 말고 “뭐 할래?”라고 물어라.

5. 생각하는 수학?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수학? 쉽지 않은데..?연산 자체가 즐거운 것은 아니다. 사고하는 과정이 있기에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연산’이 목표가 될 순 없는 거다. 그건 도구일 뿐이다..

 

 
 
 수원 영통에서 작고 건강한 교회를 일구는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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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맡은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는 최수일 선생을 가리켜 “한국 수학교육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소개했다. 최 선생은 수학교육의 발전과 수학의 대중화를 목적으로 하는 수학교사들의 연구단체인 ‘전국수학교사모임’((구) 수학사랑)의 결성과 발전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수학교육 정책 부문의 전문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최 선생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수학교사답게 수식으로 표현했다. “10+10=0” 처음 10년의 교사 생활 후 그는 ‘전국수학교사모임’을 결성했고, 10년을 더 교사로 살았다. 하지만 공허했다. 휴직을 감행했다. 제로베이스.. 맨땅에서 그는 다시 시작했다. 그로부터 3년 후 다시 교직으로 돌아온 그의 모습은 달라져 있었다. 열심히 가르치는 부지런한 교사에서 할 수만 있으면 가르치지 않는 게으른 교사로..

‘가르치지 않는 교사’.. 최 선생의 교육철학 제 1조다. 그는 가르치지 않는다. 자료화면에서 보았듯이 그가 수업하는 교실의 삼면을 채우고 있는 칠판들은 그의 글씨가 아닌 학생들의 글씨로 가득하고 수업은 학생들이 이끌어 간다. 그는 이 수업을 ‘배움의 공동체’라고 불렀다.

선생은 이번 강의에 앞서 ‘사전 과제’를 내주었고, 무려 35명의 착실한 응답자가 있었다. 그는 학생(?)들이 제출한 답안들을 보여주었다. 이런 답도, 저런 답도 있었고, 게 중에는 푸념도 섞여있었다. 도대체 답이 뭘까? 그 문제들을 푸느라 끙끙댔던 이들은 허탈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과제를 내준 목적이 학생에게 답을 찾기 위한 치열한 고민의 과정을 경험케 하려는 것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이미 이 수업의 피동적 객체가 아닌 능동적 주체가 되어 있었다. ‘이럴 수가..? 수학시간 맞아?’ 그가 말하는 ‘배움의 공동체’는 ‘바로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사건이었다.

오늘 최 선생을 이 자리에 서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아마도 일본의 교육학자인 사토마나부인 듯하다. 선생은 강의를 하는 동안 사토마나부가 지은 『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손우정 외 역, 2009, 북코리아)을 비롯하여 로버트 & 미셸 루트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박종성 역, 2007, 에코의 서재)에 이르기까지 무려 14권에 달하는 책들을 소개했다. 이 책들은 오늘날 교육 현장의 심각성을 정확히 보게 해주는 것은 물론 문제들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는 수학공부에 있어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으로 ‘경청’하지 않음과 ‘사고’하지 않음을 들었다. 이들이 갖고 있는 지식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관계를 맺는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은 세계 꼴찌 수준이며,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바보가 되어간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학교를 ‘배움의 공동체’로 가꾸어가는 것이다. 사토마나부의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손우정 역, 2006, 에듀케어)라는 책은 우리나라의 학교들을 ‘배움의 공동체’로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 동기와 방법론을 제공한 것 같다. 실제로 그는 우리나라 혁신학교의 대부분을 컨설팅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 열기가 좀 사그라진 것 같은데, 한 때 우리나라 부모들이 유태인의 자녀 교육에 폭발적인 관심을 기울였던 적이 있었다. 많은 부모들이 ‘유태인의 자녀 교육 따라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참 대단한 열심들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배워야 할 점을 빠뜨린 게 분명하다. 유태인 엄마와 한국인 엄마를 대조해놓은 자료 ‘주이시 맘 VS 코리안 맘’이 제기한 결론 가운데 하나는 이러하다. “유태인은 자신의 자녀가 ‘남과 다른 개성적인 인재로 자라기’를 바라지만 우리는 자녀가 ‘남보다 앞서는 1등이 되기’를 바란다.” 이를 두고 유태인 자녀 교육의 ‘한국적’ 적용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대략난감’이란 용어는 이럴 때 쓰라는 게 아닐까. 유엔거버넌스센터에서 일하는 한국인 김정태 홍보실장이 쓴 책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를 한 줄로 줄이면 이렇다. "Not the Best, But the Only!"

목적과 본질을 혼동할 때 ‘주객전도’의 양상이 나타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교육이라고 예외가 될 순 없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푸는 것(Solving Problem)에만 관심을 갖고 있지 문제 푸는 방법에 문제가 있음(The Problem of Solving)을 간과하는 것 같다.

최 선생의 말에 따르면, 수학공부는 공식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원리를 터득하는 것이고, 답을 맞히는 게 아니라 풀이의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 공부의 목적이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수학적 사고력과 창의성이 발달하기 때문이다. 오다 도시히로가 쓰고 박인용이 옮긴 『진짜 수학』(플러스예감)이라는 책은 수학을 못하는 아이의 특성 7가지를 이렇게 말한다. ① 융통성이 없다. ② 일상생활의 감각에만 의존한다. ③ 해법은 하나라고 생각한다. ④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한다. ⑤ 실패를 두려워한다. ⑥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다. ⑦ 푸는 데 집중하지 못한다. 남 얘기 같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수학공부를 해야 할 것인가? 바람직한 수학학습법은? 선생은 이를 6가지로 정리했다.
① 고생해서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오래 가며 자기 것이 된다.(쉬운 공부는 없다.)
② 한 번에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시간을 두고 여러 번 시도한다.
③ 답을 내는 것에 급급하지 말고 다양성에 무게를 두어라.(틀려도 좋으니 이렇게도 풀어보고 저렇게도 풀어보라는 말이다.)
④ 친구와 아이디어를 공유하되 친구의 생각을 끌어낼 생각을 하라.
⑤ 족집게 강의는 없다. 스스로 요약 정리해야만 다른 사람(친구, 교사)의 도움이 진짜 도움이 된다.
⑥ 모르는 내용이 생겼을 경우에만 남의 도움을 요청한다.. 지당하신 말씀. 한 마디로 ‘자기주도학습’을 하란 얘기다. 덧붙여 그는 ‘하루 2시간 넘는 사교육은 추가적인 성적 향상 효과가 미미’하고 ‘자기주도학습이 사교육보다 수능점수 향상에 효과적’이라는 한국개발원(KDI) 김희삼 연구원의 최근 연구 논문 결과(2011년 3월 28일)를 보여주었다.

그는 수학교과서와 교육과정의 문제점도 신랄하게 지적했다. 그것은 첫째, 교과서가 너무 친절하다는 점. 힌트와 풀이과정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스스로 ‘사고’할 기회를 박탈시킨다. 게다가 가상 데이터를 사용한 형식적 도입과 주객이 바뀐 탐구활동이 수학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리고, 알고리즘을 강요하는 유제풀이는 학생을 단순히 문제 푸는 기계로 전락시킨다. 이런 교과서를 과감히 버려야 한다. 둘째, 학문적 위계가 강하게 남아있어서 한 번 놓치면 따라잡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수업 시간에 비해 교육과정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러면 사고를 (연습)시킬 여유가 없다. 셋째, 의미와 맥락이 없는 단순계산문제가 지루하게 나열되어 있다. 사고 능력이 죽을 수밖에 없다.

교사들의 수업에도 문제가 많았다. 학생의 여건은 살피지 않고 교사 혼자 진행하는 ‘나홀로 50분’(수업), ‘클릭수업’(‘아이스크림’과 같이 사용하기 편리한 다양한 자료들이 완비된 프로그램 활용.. 교사는 그저 클릭만 하면 된다), ’공부는 교사가 하고 학생은 그저 따라 하기만‘ 하는 수업,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진도 빨리 나가기, 선행학습을 전제로 하여 수업을 조직하고 상위반에서는 어려운 문제만 풀게 하는 수준별 수업 등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다. 교사가 제공하는 ’활동지‘ 역시 문제다. 스스로 고민해서 해결해야 할 것을 왜 제공하는지.. 학생들은 누구나 스스로 해보려는 욕구가 내재되어 있다. 하지만 현행 교육은 이를 무시하거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수학을 어려워하는 이유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것은 스스로 해볼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왜 수학을 어려워할까?』(안승철, 궁리)라는 책과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Holt, 공양희 외 역, 2007, 아침이슬)라는 책이 그 이유를 말해준다.

데보라 마이어(Deborah Meier)가 쓴 『The POWER OF THEIR IDEAS』라는 책은 ‘게으른 수학교사’를 예찬한다. 속칭 ‘수학학습 총량 보존의 법칙’에 따르면, 교사의 학습과 학생의 학습은 서로 반비례하며 이 둘의 합은 일정하다. 교사의 가르침이 적을수록 학생은 더 많이 학습한다. 여기서 ‘학습’은 학생이 스스로 터득한 것을 말한다. 최 선생은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인용했다. "teaching is mostly listening and learning is mostly telling"(“가르치는 것은 듣는 것이고, 아이들을 말하게 만들어야 한다.(제발 가르치려고 하지 마라)”), "learners first anf teachers second"(“학생을 앞에 세우고 선생은 그 뒤로 가라”) 이는 자신의 가르침의 철학이기도 하다.

수학교사 최수일의 가르침의 철학을 들었다. 그는 2004년부터 자신은 가르치지 않는다고 했다. ‘무지한 스승’-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가 지은 책 제목(양창렬 옮김, 2008, 궁리)-이야말로 최고의 스승이라고 했다. 교실에 앉아 있는 30명의 머리를 썩히는 일은 직무유기라고 했다. 또 하나는 ‘꼴찌도 행복한 교실’을 만드는 것이 꿈이고, 이를 위해서는 독일의 경우처럼 예습을 금지해야 한다고 했다.(『독일교육이야기-꼴찌도 행복한 교실』(박성숙, 2010, 21세기북스) 중에서) 가슴 한 구석에서 의문이 고개를 쳐든다. 가르치지 않고도 가르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의문이 풀리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최 선생은 ‘배움의 공동체’라고 이름 붙인 자신의 교육현장을 짤막하게 소개했다. 2004년부터 해오고 있는 새로운 방식들.. 이를테면, 교과서 버리고, 풀이와 답 버리고, 그룹 활동을 통한 학생들이 발표하게 하고, 자신은 가르치지 않기.. 가르침 없는 가르침. 말장난이 아니었다. ‘배움의 공동체’가 그것을 실현하고 있었다. 나아가 그는 모든 문제를 초등학교 때 했던 방식으로 풀기를 권장한다. 초등학생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수학하기.. Try and error! 수학적 사고는 거듭되는 시행착오를 먹고 자라는 나무다.

수학’하면 떠오르는 근원적 불만일 수도 있겠다. 도대체 수학을 배우는 이유가 뭘까? 그가 마지막으로 소개한 책 『생각의 탄생』에는 관찰에서 통합에 이르기까지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13가지 단계가 나온다. 최 선생에 따르면 이것을 가장 잘 가르칠 수 있는 게 수학이다. 그런데 현행 수학교육이 “이것을 안 가르치고 ‘학문적 위계’만 가르치고 있다”고 그는 이의를 제기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얘긴가? 그는 “순수수학과 교과목으로서의 수학을 철저히 분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페리와 무어가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단다. “한 명의 수학교사를 키워내려다 만 명이 희생되고, 한 명의 수학자를 키워내려다 천만 명이 희생된다.” 이 대목에서 느껴지는 야릇한 흥분과 쾌감은 나 또한 그 많은 희생자들 중 하나였음을 방증한다.

어렵고 재미없다고 느끼는 수학을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라는 게 교과부의 주문이란다. 하지만 최 선생은 말한다. “재미있는 수학? 그런 건 없다.” 그가 가르치고 싶은 수학은 재미있는 수학이 아니다. 쓸모 있는 수학, 꼭 필요한 수학이다. 그래서 공부하면 할수록 창조적인 생각과 깊은 통찰력을 갖게 되는 수학이다. 이를 위해 수학교과서도 버리고 ‘배움의 공동체’를 가꾸며 ‘가르침 없이 가르치는’ 이상한 수학교사 최수일. 난 그를 ‘한국 수학교육의 이단아’라고 부르련다.

 

강의 후 질의응답 시간.. 시간이 많이 흐른 관계로 짧은 시간 동안 5개의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간략히 소개한다.

1. 그래도 입시환경을 고려하여 효율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를테면, 연산 연습 같은 건 해두어야 하지 않을까?수능 30문제 푸는 데 100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많은 학생들이 문제를 다 못 푸는 것은 연산 때문이 아니다. 연산이 안 돼서 못 푸는 게 아니라 사고가 안 되니까 못 푸는 거다. 사고가 되면 연산할 게 줄어든다.

2. 수학적 사고를 증진시키는 방법이 있나?친구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공부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가능하면 답 없이, 풀이과정 보지 않고 고민하여 푼 다음, “넌 어떻게 풀었니?” 묻고, 가르치면서 공부가 된다. 아이를 선생으로 만들어라!

3. 선행학습에 대한 선생의 분명한 입장이 궁금하다.남의 도움을 받는 것을 전혀 하지 않을 순 없다. 다만 충분히 고민한 후, 꼭 필요한 경우, 최후의 순간에 도움을 요청하게 하라. 그리고 그 이후에는 역시 스스로 (고민하며_하는 것이 중요하다.

4. 수학교육을 위해 부모가 해야 할 일은?부모의 생각을 강요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말고 아이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어라. (숙제) 도와주지 마라. 힘들어도 자기 힘으로 숙제하려고 애쓰는 아이가 (수학도) 잘 하게 된다. (이렇게 저렇게)하라!”고 말하지 말고 “뭐 할래?”라고 물어라.

5. 생각하는 수학?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수학? 쉽지 않은데..?연산 자체가 즐거운 것은 아니다. 사고하는 과정이 있기에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연산’이 목표가 될 순 없는 거다. 그건 도구일 뿐이다..

 

 
 
 수원 영통에서 작고 건강한 교회를 일구는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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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1학년 수학의 시작은? (허브티님)

초등6학년 초등1학년 딸 둘을 둔 엄마입니다. 큰 애는 조기교육 시킨 탓인지 학교 공부 그런대로 따라갑니다. 둘째는 정말 초등1학년 교과서 수준에 딱 맞는 수준^^ 울 둘째 수학 잘 하려면 아니 재미있어 하려면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요? (...)


↳Re:
어릴 때부터 수학에 대한 첫인상이 참 중요합니다. 수학은 단순 기계적 연산을 하는 훈련과 연습에 초점을 두면 흥미를 잃을 수 있습니다. 초1때는 발달단계상 '구체적 조작기'에 해당하므로 큰 아이와 같이 구체적 활동을 통해 원리를 발견하고 그걸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경험을 하는게 좋습니다.

수학은 또다른 언어입니다. 그래서 수학은 활동과 함께 책읽기로 접근하는게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초등1 수준에 맞는 수학관련 책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래의 책에 나오는 여러가지 활동으로 아이와 소통하면 자연스레 연산과 도형에 대해 흥미를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핀란드 초등학생이 배우는 재미있는 덧셈과 뺄셈
개념부터 차근차근 프랑스 원리 수학 1 (수와 친해지기)
개념부터 차근차근 프랑스 원리수학 2 (도형과 친해지기)
행복한 수학 초등학교 1 (수의 세계)
행복한 수학 초등학교 2 (연산의 세계)       (박종하님)

(원문주소: http://cafe.daum.net/no-worry/96aU/8)


궁금해요 (허브티님)

초 6학년을 위한 사고력 수학 책이나 문제지를 방학에 한번 해보려고 하는데 어떤게 좋을까요? (...) 또 중학교를 위해 특별히 준비해야 하는게 있을까요? 수학 강의 끝나면 답변 못 들을것 같아 주절주절 올려 봅니다.


↳Re
: 중학교 수학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 중학교 수학을 위해 가장 잘 준비해야 하는 것은 초등 수학을 잘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수학적 개념(초등학교에서는 ‘약속하기’라는 이름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과 풀이 과정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문제를 푸는 것과 풀이 과정을 설명하는 것은 ‘질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과정을 설명할 수 있으려면 좀 더 완벽히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개념을 이해, 암기하지 못하고 문제를 푸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충 감으로 푸는 것이지요. 이것은 일종의 학습 결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이 잘 돼 있다면 다음 학기나 중학교 과정을 준비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아이로 키우고 싶으면 ‘특별히’ 준비해야 될 게 있고, 특별한 아이로 키우지 않으면 ‘특별히’ 준비해야 할 것은 없습니다.

사고력 수학 책이나 문제지: 수학을 공부할 때나 가르칠 때 사고력이 당연히 필요합니다. 따라서 ‘사고력 수학’이라는 말 자체가 제게는 낯설게 느껴지네요. 학원에서나 학습지에서 가르치는 사고력 수학은 대개 응용된 문장제 문제를 말합니다. 당연히 단순한 계산보다 난이도가 높습니다. 초등학교의 경우 수학 마지막 단원은 ‘문제 푸는 방법 찾기’입니다. 교과서를 한 번 보세요. 이 단원을 좀 더 심화하고 체계화 한 것이 ‘사고력 수학’입니다. 학생들의 경우 대부분 이 마지막 단원을 힘들어 하고 싫어합니다. 반대로 말해 이 단원을 잘 하는 학생이 진짜 수학적 사고력이 있는 학생이지요. 그런데 이 단원을 잘 하려면 그 전의 단원들을 잘 공부해야 합니다. 이 단원은 이 전 단원의 학습 내용을 응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 사고력 수학을 다니다 그만 둡니다. 사고력 수학의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다음 학년의 문제가 문장제 문제로 응용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문장제 문제 속에 중학교에서 배워야 알 수 있는 방정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방정식을 알면 쉽게 풀 수 있는데 방정식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고 방정식의 알고리즘을 이용해야만 문제를 풀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이 경우도 선행을 해야만 학원을 잘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귀 자녀의 학습 상태를 정확히 알지 못하니 일반적인 조언밖에 드릴 수가 없네요.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함께님)

(원문주소: http://cafe.daum.net/no-worry/96aU/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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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강의스케치의 달인 이세광 선생님의 글을 기다리실 많은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이번주 이세광 선생님의 중요한 스케줄 때문에 긴급하게 강의스케치에 투입된, 자주 인사드려 식상한 이슬기 간사입니다. 늘 수학교실 강의가 시작되면 내가 강의하는 양 가슴이 콩닥콩닥하고, 강사님의 멘트 하나하나에도 다음 날 올라올 소감문이 예상되는 등, 강의를 스케치하기에는 너무 심정적으로 깊숙이 관여하고 있어 강의스케치가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달인 이세광 선생님의 강의스케치와 비교되어도 너무 실망하지 말아달라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기 위해 서두가 참 길었습니다.^^;

박경미 교수님의 연예인급(?) 프로필 사진을 보면서 “이건 사진빨일거야” 라고 기대하고 싶어지던 마음은 교수님의 실물을 뵙는 순간 무참히 깨어졌습니다. 작은 얼굴에 오목조목 자리한 커다란 눈과 오똑한 코......아차, 제가 실물스케치를 하려는 게 아니었지요.^^; 수학교육개선위원회에도 참여하고 계시는 박경미 교수님은 과도한 스케줄 탓인지 몸이 좋지 않으셔서 시종일관 나긋나긋한(?) 목소리였지만, 수학교육에 관한 나름의 관점과 철학을 말씀하실 때에는 중심에서 비롯된 힘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강의의 전반부는 수학학습 방법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지난 강의들이 수학 본연의 재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박경미 교수님의 강의는 작금의 현실 위에 서서 수학학습을 하는데 필요한 팁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지요. 말씀해주신 내용들은 이러했습니다.

1. 수학내용은 용어를 통해 전개되므로, 수학 용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처음 그 용어를 만든 사람이 어떤 사고를 하였는지 그 이면의 아이디어를 더듬어가며 공부하라.
2. 창의력 신장을 위해서도 사고의 기본 재료가 되는 수학 개념에 대한 이해 뿐 아니라 정확하고 신속한 계산 능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3. 수학 공부는 이해의 공백이 생긴 곳에서 시작된다. 수학은 위계적인 과목이므로, 이전 학년에 숙달했어야 할 내용이 결핍되었다면 과감하게 전 학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완해주어야 한다.
4. 수학 문제의 해법은 문제로부터 시작된다. 문제를 단순화시켜 쉬운 문제로 바꾸어보거나, 출제자가 되었다고 가정하고 문제를 만들어 보는 등이 유용하다.
5. 문제를 풀 때 가능하면 답과 풀이를 끝까지 보지 말고 혼자 생각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적당한 순간에 힌트와 해답을 보는 실리를 추구할 필요도 있다.
6. 숫자 게임도 유용하다.
7. 선행학습보다는 적기교육이 답이다.

그동안 3강까지의 강사님들이 말씀하신 내용과 일관성이 있으면서도, 좀더 입시와 가까운 중고등학생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현실적인 조언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선행학습에 대한 이야기. “선행학습은 적당히” 라는 강의안 제목에 그동안 선행학습의 무효과성을 지속적으로 주장했던 우리 단체의 입장과 상충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는 잠시, 선행학습과 적기학습을 총과 칼에 비유한 명언을 날려주십니다. “선행 학습을 한 학생들은 일찍이 강력한 총으로 무장했기 때문에 잠시 우위에 서는 것 같지만, 남들도 동일한 무기를 가지게 되면 별 소용이 없어집니다. 칼이라는 원시적인 무기로 버티면서 다양한 노하우를 축적한 경우가 유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적인 조언을 얻었으니, 이제 적용만 남았다 결의를 다지려는 찰나, 박경미 교수님의 강의 전반부 마지막 멘트가 이어집니다. “수학 학습이 초등학교부터 따지면 적어도 10년에서 12년을 공부해야 되는 장거리 경주이며 후반부로 갈수록 장애물이 많아지는 경기이므로,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뛸 수 있는 지구력이 중요합니다. 스스로가 뛰겠다는 동기와 의지가 뚜렷하여 뛰는 것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여유로움이 이런 면에서 중요합니다.”


수학이라는 도구로 접근했지만 2강 3강을 통해 저에게 던져진 화두는 삶의 열정과 근본적인 자세의 문제인데, 4강에서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로 다가오네요. 수학을 통해 영원하며 변하지 않는 것들을 숙고했다는 피타고라스를 예로 드시며 시종일관 수학이 감동적인 학문임을 설파하셨던 최영기 교수님처럼, 제자들을 “우리 딸들”이라 부르시며 딸들을 위해 에너지를 쏟아 부어 수학수업을 진행하시는 장홍월 선생님처럼, 자기만의 열정의 근원을 만들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아름다움이 정답이다 싶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에 놓여진 다리, 수학에 대한 매료가 그 시작점이 될 수도 있겠구요. (점점 묵상스케치가 되어가는 이 기분은?)

후반부 강의는 박경미 교수님의 주종목(?)이라 할 수 있는 “수학으로 세상 보기”, 즉 실생활에 연결된 수학 이야기로 진행되었습니다. <수학콘서트>, <수학비타민> 등의 저서는 읽어보지 못했어도 그간 신문 등에 꾸준히 기고하셨던 칼럼을 통해, 역사, 문화, 예술, 자연 등에 수학을 접목하여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 노력하신 시도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후반부 강의는 그러한 시도들의 종합판이었습니다. 숫자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신비화했던 피타고라스학파 이야기,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는, 역사상 중요한 책들의 형식에 큰 영향을 미친 유클리드 원론, 칠레 광부 구출이나 스페인 열차 테러와 관련된 수 이야기......구체적으로 설명 드리기에는 저의 지식이 짧은 관계로, 강의를 확인해주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이런 식으로 넘어가기^^;)

수학교실을 운영하면서 여러 고민들에 부딪치고는 합니다. 변하지 않는 그 무언가를 갈망하는 수학, 내면의 감동을 이끄는 수학, 실생활의 문제와 복잡다단하게 연결된 수학, 그 수학의 신비로운 자태를 알아가는 것이 새로운 일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녀에게 이러한 수학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로 모아지는 것 같아 무거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 무거움이 느껴질 때마다, 수학의 즐거움을 조금이나마 맛보아 아는 것이 자녀가 ‘아하 체험’의 희열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다리고 지켜보는 동력이 될 거라고, 수학 전 과정을 가르칠 수는 없으나 최소한 자녀가 수학의 흥미를 가지도록 직간접적으로 도울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우리 아이들의 수학성취도와 수학즐거움인식 국가순위 간의 그 깊고 긴 격차가 조금은 줄어들 수 있을 거라고, 마음을 잡아봅니다. “실물스케치”로 시작한 강의스케치는 “묵상스케치”를 지나 “고민스케치”로 막을 내리네요. 이상, 담당간사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길 바라는) 강의스케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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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묻는다.“이것 배워서 어디다 써먹는 거야?” “도대체 이걸 왜 하는 거지?” 그들이 ‘이것’이라고 말하는 ‘그것’은 다름 아닌 수학이다. 그들에게 수학은 재미도 없고 쉽지도 않다. 그런데 “수학은 감동을 주는 학문”이라고 ‘주장’하는 최영기 교수의 제 1성은 누군가의 말처럼 ‘문화적 충격’ 그 자체였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수학자의 모습을 한 철학자? 철학자의 탈을 쓴 수학자? 그의 정체는 물론이고, 수학과 철학의 경계 역시 모호했다.

수학 성적은 잘 나오지만 수학이 전혀 즐겁지 않은 우리 아이들

TIMSS와 PISA의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는 최상위권이다. 하지만 선호도나 자신감 등에 있어서는 최하위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최 교수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알고리즘’(algorithm)으로 진단한다. ‘알고리즘’은 수학 영역에 있어서 ‘문제를 푸는 자동화된 사고(思考)’를 뜻한다. 말하자면, 비슷한 유형의 문제들을 많이, 반복적으로 연습할 때 체득되는 일종의 ‘관성’이라고나 할까? 이는 얼핏 보기에 상당히 유익한 기술 같지만 실은 치명적인 약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시험 보는 것 말고는 거의 ‘써 먹을 데가 없다’는 것이다. ‘알고리즘’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사고 과정을 거치지 않은, 단순한 문제풀이 기술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래서 결국 ‘쓸모없는 지식’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아이들도 모르지 않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방식이 여전히 통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른 바 후진 그룹이 선진 그룹을 따라잡는 ‘속도전’에서 놀라운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까지! 그 이상은 ‘속도’가 아닌 ‘방향’과 ‘철학’이 좌우한다. 철학이 없고 방향 감각을 상실한 우리의 수학 현실은 아래와 같은 학생들을 낳았다.

“우리 학생들을 보면 (수학을) 무지 열심히 하는데 앞으로 결코 (수학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최 교수의 심정이 느껴진다. 그건 필시 ‘(수학을)하기 싫어도 아니 할 수 없는’ 우리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수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그가 가진 애정이리라. 국내 흥행에 실패한 어느 영화의 제목처럼 그는 ‘수식을 사랑’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출신대학보다 중요한 것

이어 최 교수가 제시한 자료는 흥미로웠다. 아웃라이어(outlier)에서 가져왔다는 터마이트(Termites)의 목록들에는 널리 알려진 명문 대학에서부터 심지어 인터넷 검색으로도 찾기 힘든 이름 없는 칼리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교의 이름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그것은 노벨의학상과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학자들을 배출한 북미 대륙의 학교들이었다.

최 교수의 의도를 간파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출신 대학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뒤틀린 행태와 거기서 비롯되는 엄청난 교육적 낭비를 지적하려는 것이다. 수학자인 그가 철학을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겠다. 마르크스는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했다지만, 의식의 변화 또한 존재의 변화를 이끄는 법이기에.


4명의 노벨상 수상자들과의 인터뷰 또한 인상적이었다. 200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칼 위만(Carl E. Wieman) 콜로라도대학 교수, 1997년 노벨물리학상의 주인공 스티븐 추(Steven Chu) 현 미국 에너지 장관, 1998년 노벨생리의학상 공동수상자인 루이스 이그내로(Louis J. Ignarro) UCLA 의대 교수, 2006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조지 스무트(George F. Smoot) UC버클리 대학 교수가 그 주인공들인데, 이들은 마치 사전에 공모라도 한 것처럼 하나 같이 ‘꿈’과 ‘열정’, ‘끈기’를 강조한다. 그 밖에 ‘비판적 사고능력을 갖추기 위해 많은 책을 읽으라’, ‘개인적 이익을 뛰어 넘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라’, ‘실패와 좌절을 두려워하지 말고 부둥켜안고 가라’는 등 우리가 익히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잘 지키지 못하는 내용들이다.

비전이 이끄는 삶

짧은 동영상도 하나 보았다. 언젠가 리드 대학의 졸업식에서 스티브 잡스가 한 축사다. 세상의 거의 모든 영웅 이야기가 그렇듯 그 역시 숱한 실패와 좌절의 나락에 빠졌지만,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고 그 일에 투신함으로써 이 시대 최고의 성공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의 연설은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이미 여러 번 본 것인데도 볼 때마다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 ‘새로움’이 한편으로는 내 기억력의 급속한 감퇴를 의미하겠기에 유쾌하다고만 볼 수는 없다.

최 교수는 스티브 잡스의 맞수라 할 빌 게이츠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빌 게이츠가 자신의 모교인 하버드 대학에서 “자기만 아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세계를 변화시키는 가치 있는 삶을 주문했다고는 것이다. 최 교수에 따르면 이들의 삶이 말해주는 것은 사회를 움직이는 ‘비전’이다. 하지만 오늘날 입시를 향해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는 ‘비전이 없는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으며, 그 결과는 삶 자체를 소진시키는 비극으로 나타난다.

Sternberg 라는 심리학자의 ‘창의성’ 이론과 창의성을 위해 계발해야 할 10가지 요소도 잠깐 소개되었다. 비전을 강화하고 구체화시키는 능력이 창의성에서 나온다고 보았기 때문이리라. 창의성에는 어떠한 요소에 투자할지 결정하고 실행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는 길이기도 하다. 10가지 요소 가운데 최 교수는 유독 9번째 요소인 ‘애매함에 대한 내성’을 강조하는 것 같았다. 확실한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을 견디는 인내 또는 끈기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었을까?

시계를 보았더니 벌써 한 시간이 되어 간다. ‘수학 얘기는 언제 하시려나?’ 걱정 아닌 걱정을 하고 있으니 드디어 수학 얘기가 나온다. 그는 일본의 유상수학자의 ‘수학 및 과학을 대하는 마음가짐’ 6가지를 간단히 설명했다. ① 호기심 및 동기, ② 지식, ③ 파고들기, ④ 낙관성, ⑤ 합리성, ⑥ 심미성.. 그는 이것이 수학과 과학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라고 했지만 오히려 철학을 위시한 인문학을 할 때 취할 태도일 것 같다. 하지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최 교수의 말처럼 ‘수학이 철학’이라면.

감동을 준 수학자 피타고라스

기원전 300년 경 피타고라스는 수학을 통하여 감동을 주었고, 그의 제자들은 목숨을 걸고 수학을 공부했단다. 그들을 지칭하여 ‘피타고라스학파’라 한다. 하지만 그들이 정치적 이유로 박해를 받아 죽고, 기원전 200년 경 유클리드가 피타고라스학파의 연구 업적 중 일부를 복원하여 책으로 묶었는데, 그는 책의 제목을 “Elements”라고 붙였다. 뜻은 ‘원소’, 즉 ‘수학이 모든 것의 근본’이라는 뜻이 되겠다.

강의는 수학과 철학의 경계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진행되었다. 소피스트, 소크라테스, 플라톤.. 진리의 세계인 이데아의 표상인 수학, 인간의 영혼을 함양시키는 수학은 위대하다.. 그리스 철학사를 수강하는 듯 했다. 최 교수는 2300년 전에 구축된 수학이 아직까지 거의 변함없이 가르쳐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감동받을 사유가 된다고 말한다. “영원하며 결코 변하지 않는 사물의 본질인 ‘이데아’를 공부하는 학문이 ‘수학’이니 수학을 공부하면서 어떻게 감동받지 않겠어요?” “미국의 월가를 움직이는 것도 수학입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 중 수학에 감동받는 아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그리고 많이 수학을 공부하면서도 감동을 받지 못하는 것은 어느 새 몸에 배인 ‘알고리즘’탓도 있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조작된 데이터, 가상의 데이터를 사용하여 문제를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배워서 어디다 써먹느냐’고 물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가 보여준 미국의 고등학교 수학 문제들은 실제적 데이터에 기반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수학은 고스란히 현실이 된다.

수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과 눈에 보이는 현상을 이어주는 다리’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르쳐지는 수학은 본질도 다루지 못하고 현상도 비껴간다. 이것이 문제임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변화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최 교수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새 술을 담을 새 부대가 필요합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 1-1=0

‘불’이 아니라 ‘0’이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은 ‘0’”이라고 말하는 수학자의 얼굴은 빛났다. 수학을 하면서 끝없이 놀라고 숫자 ‘0’에 무한감동 먹는 사람.. 그가 추천하는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0’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느냐고 그는 물었다? 물론 없다. 수학에서 거의 감동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애초부터 무리한 질문이었는지도 모른다. ‘0’의 발견이 산업혁명을 이끌었고, 복소수의 발견은 전자공학을, 4원소(?)의 발견은 양자역학을 가능케 했다는 정보에는 동의한다. 진정성과 호소력이 담긴 눈빛으로 수학의 감동을 전하는 최 교수의 열정 또한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너무도 오랫동안 수학 알기를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해왔고, 그래서 ‘난 잊을 테요~’라고 작심해야만 했던 아픈 경험들이 켜켜이 쌓였을 수많은 안티 수학인들에게 수학의 감동을 안겨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여겨진다.

그가 했던 말들을 곱씹어 본다. “수학의 발견은 위대하며, 수학의 핵심 내용이 담긴 초등학교 수학은 감동의 연속이(어야 한)다.” “어릴 적 감동은 ‘아하~’를 경험하는 순간이고, 이 ‘아하’의 깨달음이 비전으로 영근다.” 아.. 나에게 ‘믿음’이 부족한 건가? 잠시 웃었다. 감동 또한 억지로 되는 게 아닌 것을..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지만..

강의를 마치기 전 최 교수가 내어 놓은 현재 우리나라 수학교육에 대한 해법은 다소 의외였다. 그는 영국의 작가 체스터튼의 한 줄 글로 결론을 대신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것이 제 잘못입니다.” Mia culpa.. 내 탓이오.. 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모든 문제는 다 연결되어 있고, 그것을 푸는 길이 바로 내 안에 있음을 우린 모르지 않는다. 해결을 위해 내가 발 벗고 나서지 않는 한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모든 것이 내 잘못입니다” 라는 그의 ‘고백’은 바로 나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었다.  짧지 않은 인생, 근시안적 자세를 버리고 지금은 조금 부족해 보이더라도 아이가 비전을 품고 열정을 발휘할 수 있도록 믿어주고 기다려주면 아이는 분명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그는 말했다.

수학 이야기를 기대했던 청중들에게 그는 철학으로 대답했다. 땅의 언어와 하늘의 언어의 소통이 어려운 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것을 여기서 확인하게 될 줄이야.. 아마 내 눈이 어두웠던 탓일 게다. 현상계와 이데아 사이에 놓여 있다는 그 다리가 보이지 않았던 이유 말이다.

강의 자료집을 덮다가 다음 시간의 제목을 훑어보았다. 눈에 확 띄는 단어가 있다. ‘아하(A-ha)’ 체험!!!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처음 품었던 의문이 새삼 고개를 디밀었다. 수학과 철학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을 최영기 교수. 그를 수학자의 모습을 한 철학자라고 말하면 실례가 될까? 철학을 하는 수학자라고 부른다면?

 
 
 수원 영통에서 작고 건강한 교회를 일구는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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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묻는다.“이것 배워서 어디다 써먹는 거야?” “도대체 이걸 왜 하는 거지?” 그들이 ‘이것’이라고 말하는 ‘그것’은 다름 아닌 수학이다. 그들에게 수학은 재미도 없고 쉽지도 않다. 그런데 “수학은 감동을 주는 학문”이라고 ‘주장’하는 최영기 교수의 제 1성은 누군가의 말처럼 ‘문화적 충격’ 그 자체였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수학자의 모습을 한 철학자? 철학자의 탈을 쓴 수학자? 그의 정체는 물론이고, 수학과 철학의 경계 역시 모호했다.

수학 성적은 잘 나오지만 수학이 전혀 즐겁지 않은 우리 아이들

TIMSS와 PISA의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는 최상위권이다. 하지만 선호도나 자신감 등에 있어서는 최하위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최 교수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알고리즘’(algorithm)으로 진단한다. ‘알고리즘’은 수학 영역에 있어서 ‘문제를 푸는 자동화된 사고(思考)’를 뜻한다. 말하자면, 비슷한 유형의 문제들을 많이, 반복적으로 연습할 때 체득되는 일종의 ‘관성’이라고나 할까? 이는 얼핏 보기에 상당히 유익한 기술 같지만 실은 치명적인 약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시험 보는 것 말고는 거의 ‘써 먹을 데가 없다’는 것이다. ‘알고리즘’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사고 과정을 거치지 않은, 단순한 문제풀이 기술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래서 결국 ‘쓸모없는 지식’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아이들도 모르지 않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방식이 여전히 통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른 바 후진 그룹이 선진 그룹을 따라잡는 ‘속도전’에서 놀라운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까지! 그 이상은 ‘속도’가 아닌 ‘방향’과 ‘철학’이 좌우한다. 철학이 없고 방향 감각을 상실한 우리의 수학 현실은 아래와 같은 학생들을 낳았다.

“우리 학생들을 보면 (수학을) 무지 열심히 하는데 앞으로 결코 (수학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최 교수의 심정이 느껴진다. 그건 필시 ‘(수학을)하기 싫어도 아니 할 수 없는’ 우리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수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그가 가진 애정이리라. 국내 흥행에 실패한 어느 영화의 제목처럼 그는 ‘수식을 사랑’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출신대학보다 중요한 것

이어 최 교수가 제시한 자료는 흥미로웠다. 아웃라이어(outlier)에서 가져왔다는 터마이트(Termites)의 목록들에는 널리 알려진 명문 대학에서부터 심지어 인터넷 검색으로도 찾기 힘든 이름 없는 칼리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교의 이름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그것은 노벨의학상과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학자들을 배출한 북미 대륙의 학교들이었다.

최 교수의 의도를 간파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출신 대학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뒤틀린 행태와 거기서 비롯되는 엄청난 교육적 낭비를 지적하려는 것이다. 수학자인 그가 철학을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겠다. 마르크스는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했다지만, 의식의 변화 또한 존재의 변화를 이끄는 법이기에.


4명의 노벨상 수상자들과의 인터뷰 또한 인상적이었다. 200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칼 위만(Carl E. Wieman) 콜로라도대학 교수, 1997년 노벨물리학상의 주인공 스티븐 추(Steven Chu) 현 미국 에너지 장관, 1998년 노벨생리의학상 공동수상자인 루이스 이그내로(Louis J. Ignarro) UCLA 의대 교수, 2006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조지 스무트(George F. Smoot) UC버클리 대학 교수가 그 주인공들인데, 이들은 마치 사전에 공모라도 한 것처럼 하나 같이 ‘꿈’과 ‘열정’, ‘끈기’를 강조한다. 그 밖에 ‘비판적 사고능력을 갖추기 위해 많은 책을 읽으라’, ‘개인적 이익을 뛰어 넘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라’, ‘실패와 좌절을 두려워하지 말고 부둥켜안고 가라’는 등 우리가 익히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잘 지키지 못하는 내용들이다.

비전이 이끄는 삶

짧은 동영상도 하나 보았다. 언젠가 리드 대학의 졸업식에서 스티브 잡스가 한 축사다. 세상의 거의 모든 영웅 이야기가 그렇듯 그 역시 숱한 실패와 좌절의 나락에 빠졌지만,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고 그 일에 투신함으로써 이 시대 최고의 성공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의 연설은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이미 여러 번 본 것인데도 볼 때마다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 ‘새로움’이 한편으로는 내 기억력의 급속한 감퇴를 의미하겠기에 유쾌하다고만 볼 수는 없다.

최 교수는 스티브 잡스의 맞수라 할 빌 게이츠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빌 게이츠가 자신의 모교인 하버드 대학에서 “자기만 아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세계를 변화시키는 가치 있는 삶을 주문했다고는 것이다. 최 교수에 따르면 이들의 삶이 말해주는 것은 사회를 움직이는 ‘비전’이다. 하지만 오늘날 입시를 향해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는 ‘비전이 없는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으며, 그 결과는 삶 자체를 소진시키는 비극으로 나타난다.

Sternberg 라는 심리학자의 ‘창의성’ 이론과 창의성을 위해 계발해야 할 10가지 요소도 잠깐 소개되었다. 비전을 강화하고 구체화시키는 능력이 창의성에서 나온다고 보았기 때문이리라. 창의성에는 어떠한 요소에 투자할지 결정하고 실행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는 길이기도 하다. 10가지 요소 가운데 최 교수는 유독 9번째 요소인 ‘애매함에 대한 내성’을 강조하는 것 같았다. 확실한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을 견디는 인내 또는 끈기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었을까?

시계를 보았더니 벌써 한 시간이 되어 간다. ‘수학 얘기는 언제 하시려나?’ 걱정 아닌 걱정을 하고 있으니 드디어 수학 얘기가 나온다. 그는 일본의 유상수학자의 ‘수학 및 과학을 대하는 마음가짐’ 6가지를 간단히 설명했다. ① 호기심 및 동기, ② 지식, ③ 파고들기, ④ 낙관성, ⑤ 합리성, ⑥ 심미성.. 그는 이것이 수학과 과학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라고 했지만 오히려 철학을 위시한 인문학을 할 때 취할 태도일 것 같다. 하지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최 교수의 말처럼 ‘수학이 철학’이라면.

감동을 준 수학자 피타고라스

기원전 300년 경 피타고라스는 수학을 통하여 감동을 주었고, 그의 제자들은 목숨을 걸고 수학을 공부했단다. 그들을 지칭하여 ‘피타고라스학파’라 한다. 하지만 그들이 정치적 이유로 박해를 받아 죽고, 기원전 200년 경 유클리드가 피타고라스학파의 연구 업적 중 일부를 복원하여 책으로 묶었는데, 그는 책의 제목을 “Elements”라고 붙였다. 뜻은 ‘원소’, 즉 ‘수학이 모든 것의 근본’이라는 뜻이 되겠다.

강의는 수학과 철학의 경계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진행되었다. 소피스트, 소크라테스, 플라톤.. 진리의 세계인 이데아의 표상인 수학, 인간의 영혼을 함양시키는 수학은 위대하다.. 그리스 철학사를 수강하는 듯 했다. 최 교수는 2300년 전에 구축된 수학이 아직까지 거의 변함없이 가르쳐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감동받을 사유가 된다고 말한다. “영원하며 결코 변하지 않는 사물의 본질인 ‘이데아’를 공부하는 학문이 ‘수학’이니 수학을 공부하면서 어떻게 감동받지 않겠어요?” “미국의 월가를 움직이는 것도 수학입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 중 수학에 감동받는 아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그리고 많이 수학을 공부하면서도 감동을 받지 못하는 것은 어느 새 몸에 배인 ‘알고리즘’탓도 있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조작된 데이터, 가상의 데이터를 사용하여 문제를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배워서 어디다 써먹느냐’고 물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가 보여준 미국의 고등학교 수학 문제들은 실제적 데이터에 기반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수학은 고스란히 현실이 된다.

수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과 눈에 보이는 현상을 이어주는 다리’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르쳐지는 수학은 본질도 다루지 못하고 현상도 비껴간다. 이것이 문제임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변화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최 교수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새 술을 담을 새 부대가 필요합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 1-1=0

‘불’이 아니라 ‘0’이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은 ‘0’”이라고 말하는 수학자의 얼굴은 빛났다. 수학을 하면서 끝없이 놀라고 숫자 ‘0’에 무한감동 먹는 사람.. 그가 추천하는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0’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느냐고 그는 물었다? 물론 없다. 수학에서 거의 감동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애초부터 무리한 질문이었는지도 모른다. ‘0’의 발견이 산업혁명을 이끌었고, 복소수의 발견은 전자공학을, 4원소(?)의 발견은 양자역학을 가능케 했다는 정보에는 동의한다. 진정성과 호소력이 담긴 눈빛으로 수학의 감동을 전하는 최 교수의 열정 또한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너무도 오랫동안 수학 알기를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해왔고, 그래서 ‘난 잊을 테요~’라고 작심해야만 했던 아픈 경험들이 켜켜이 쌓였을 수많은 안티 수학인들에게 수학의 감동을 안겨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여겨진다.

그가 했던 말들을 곱씹어 본다. “수학의 발견은 위대하며, 수학의 핵심 내용이 담긴 초등학교 수학은 감동의 연속이(어야 한)다.” “어릴 적 감동은 ‘아하~’를 경험하는 순간이고, 이 ‘아하’의 깨달음이 비전으로 영근다.” 아.. 나에게 ‘믿음’이 부족한 건가? 잠시 웃었다. 감동 또한 억지로 되는 게 아닌 것을..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지만..

강의를 마치기 전 최 교수가 내어 놓은 현재 우리나라 수학교육에 대한 해법은 다소 의외였다. 그는 영국의 작가 체스터튼의 한 줄 글로 결론을 대신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것이 제 잘못입니다.” Mia culpa.. 내 탓이오.. 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모든 문제는 다 연결되어 있고, 그것을 푸는 길이 바로 내 안에 있음을 우린 모르지 않는다. 해결을 위해 내가 발 벗고 나서지 않는 한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모든 것이 내 잘못입니다” 라는 그의 ‘고백’은 바로 나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었다.  짧지 않은 인생, 근시안적 자세를 버리고 지금은 조금 부족해 보이더라도 아이가 비전을 품고 열정을 발휘할 수 있도록 믿어주고 기다려주면 아이는 분명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그는 말했다.

수학 이야기를 기대했던 청중들에게 그는 철학으로 대답했다. 땅의 언어와 하늘의 언어의 소통이 어려운 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것을 여기서 확인하게 될 줄이야.. 아마 내 눈이 어두웠던 탓일 게다. 현상계와 이데아 사이에 놓여 있다는 그 다리가 보이지 않았던 이유 말이다.

강의 자료집을 덮다가 다음 시간의 제목을 훑어보았다. 눈에 확 띄는 단어가 있다. ‘아하(A-ha)’ 체험!!!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처음 품었던 의문이 새삼 고개를 디밀었다. 수학과 철학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을 최영기 교수. 그를 수학자의 모습을 한 철학자라고 말하면 실례가 될까? 철학을 하는 수학자라고 부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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