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강의스케치의 달인 이세광 선생님의 글을 기다리실 많은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이번주 이세광 선생님의 중요한 스케줄 때문에 긴급하게 강의스케치에 투입된, 자주 인사드려 식상한 이슬기 간사입니다. 늘 수학교실 강의가 시작되면 내가 강의하는 양 가슴이 콩닥콩닥하고, 강사님의 멘트 하나하나에도 다음 날 올라올 소감문이 예상되는 등, 강의를 스케치하기에는 너무 심정적으로 깊숙이 관여하고 있어 강의스케치가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달인 이세광 선생님의 강의스케치와 비교되어도 너무 실망하지 말아달라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기 위해 서두가 참 길었습니다.^^;

박경미 교수님의 연예인급(?) 프로필 사진을 보면서 “이건 사진빨일거야” 라고 기대하고 싶어지던 마음은 교수님의 실물을 뵙는 순간 무참히 깨어졌습니다. 작은 얼굴에 오목조목 자리한 커다란 눈과 오똑한 코......아차, 제가 실물스케치를 하려는 게 아니었지요.^^; 수학교육개선위원회에도 참여하고 계시는 박경미 교수님은 과도한 스케줄 탓인지 몸이 좋지 않으셔서 시종일관 나긋나긋한(?) 목소리였지만, 수학교육에 관한 나름의 관점과 철학을 말씀하실 때에는 중심에서 비롯된 힘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강의의 전반부는 수학학습 방법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지난 강의들이 수학 본연의 재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박경미 교수님의 강의는 작금의 현실 위에 서서 수학학습을 하는데 필요한 팁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지요. 말씀해주신 내용들은 이러했습니다.

1. 수학내용은 용어를 통해 전개되므로, 수학 용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처음 그 용어를 만든 사람이 어떤 사고를 하였는지 그 이면의 아이디어를 더듬어가며 공부하라.
2. 창의력 신장을 위해서도 사고의 기본 재료가 되는 수학 개념에 대한 이해 뿐 아니라 정확하고 신속한 계산 능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3. 수학 공부는 이해의 공백이 생긴 곳에서 시작된다. 수학은 위계적인 과목이므로, 이전 학년에 숙달했어야 할 내용이 결핍되었다면 과감하게 전 학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완해주어야 한다.
4. 수학 문제의 해법은 문제로부터 시작된다. 문제를 단순화시켜 쉬운 문제로 바꾸어보거나, 출제자가 되었다고 가정하고 문제를 만들어 보는 등이 유용하다.
5. 문제를 풀 때 가능하면 답과 풀이를 끝까지 보지 말고 혼자 생각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적당한 순간에 힌트와 해답을 보는 실리를 추구할 필요도 있다.
6. 숫자 게임도 유용하다.
7. 선행학습보다는 적기교육이 답이다.

그동안 3강까지의 강사님들이 말씀하신 내용과 일관성이 있으면서도, 좀더 입시와 가까운 중고등학생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현실적인 조언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선행학습에 대한 이야기. “선행학습은 적당히” 라는 강의안 제목에 그동안 선행학습의 무효과성을 지속적으로 주장했던 우리 단체의 입장과 상충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는 잠시, 선행학습과 적기학습을 총과 칼에 비유한 명언을 날려주십니다. “선행 학습을 한 학생들은 일찍이 강력한 총으로 무장했기 때문에 잠시 우위에 서는 것 같지만, 남들도 동일한 무기를 가지게 되면 별 소용이 없어집니다. 칼이라는 원시적인 무기로 버티면서 다양한 노하우를 축적한 경우가 유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적인 조언을 얻었으니, 이제 적용만 남았다 결의를 다지려는 찰나, 박경미 교수님의 강의 전반부 마지막 멘트가 이어집니다. “수학 학습이 초등학교부터 따지면 적어도 10년에서 12년을 공부해야 되는 장거리 경주이며 후반부로 갈수록 장애물이 많아지는 경기이므로,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뛸 수 있는 지구력이 중요합니다. 스스로가 뛰겠다는 동기와 의지가 뚜렷하여 뛰는 것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여유로움이 이런 면에서 중요합니다.”


수학이라는 도구로 접근했지만 2강 3강을 통해 저에게 던져진 화두는 삶의 열정과 근본적인 자세의 문제인데, 4강에서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로 다가오네요. 수학을 통해 영원하며 변하지 않는 것들을 숙고했다는 피타고라스를 예로 드시며 시종일관 수학이 감동적인 학문임을 설파하셨던 최영기 교수님처럼, 제자들을 “우리 딸들”이라 부르시며 딸들을 위해 에너지를 쏟아 부어 수학수업을 진행하시는 장홍월 선생님처럼, 자기만의 열정의 근원을 만들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아름다움이 정답이다 싶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에 놓여진 다리, 수학에 대한 매료가 그 시작점이 될 수도 있겠구요. (점점 묵상스케치가 되어가는 이 기분은?)

후반부 강의는 박경미 교수님의 주종목(?)이라 할 수 있는 “수학으로 세상 보기”, 즉 실생활에 연결된 수학 이야기로 진행되었습니다. <수학콘서트>, <수학비타민> 등의 저서는 읽어보지 못했어도 그간 신문 등에 꾸준히 기고하셨던 칼럼을 통해, 역사, 문화, 예술, 자연 등에 수학을 접목하여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 노력하신 시도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후반부 강의는 그러한 시도들의 종합판이었습니다. 숫자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신비화했던 피타고라스학파 이야기,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는, 역사상 중요한 책들의 형식에 큰 영향을 미친 유클리드 원론, 칠레 광부 구출이나 스페인 열차 테러와 관련된 수 이야기......구체적으로 설명 드리기에는 저의 지식이 짧은 관계로, 강의를 확인해주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이런 식으로 넘어가기^^;)

수학교실을 운영하면서 여러 고민들에 부딪치고는 합니다. 변하지 않는 그 무언가를 갈망하는 수학, 내면의 감동을 이끄는 수학, 실생활의 문제와 복잡다단하게 연결된 수학, 그 수학의 신비로운 자태를 알아가는 것이 새로운 일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녀에게 이러한 수학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로 모아지는 것 같아 무거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 무거움이 느껴질 때마다, 수학의 즐거움을 조금이나마 맛보아 아는 것이 자녀가 ‘아하 체험’의 희열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다리고 지켜보는 동력이 될 거라고, 수학 전 과정을 가르칠 수는 없으나 최소한 자녀가 수학의 흥미를 가지도록 직간접적으로 도울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우리 아이들의 수학성취도와 수학즐거움인식 국가순위 간의 그 깊고 긴 격차가 조금은 줄어들 수 있을 거라고, 마음을 잡아봅니다. “실물스케치”로 시작한 강의스케치는 “묵상스케치”를 지나 “고민스케치”로 막을 내리네요. 이상, 담당간사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길 바라는) 강의스케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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