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걱정없는 세상의 출범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칼럼란까지 배려해주어 더욱 고맙습니다. 앞으로 좋은 글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선 옛글 한편 올립니다.  6년전 이글을 보고 충실한 추종자를 얻었던 경험이 새로와 맛보기(?)로 올립니다. 지금은 그 추종자가 대립각을 세우니 조금 뜻밖이기는 합니다만 그것도 교육운동 전선의 한 추억이 되겠지요. 모두들 건강하시고 많은 성과를 거두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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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사계가 다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지만 나에게는 특히 가을이 아름다
운 것 같다. 왜 그런지 가을은 이 여린 가슴마저 한 줌의 재가 되도록 태우는 것 만 같다.
낙엽이 물드는 소리에 이끌리어 놀란 듯이 화들짝 설악행 버스에 올랐다. 목적지는 오색.

나는 설악이라면 오색이 제일 좋다. 오색은 서울에서 갈 때 진부령이나 미시령을 거쳐 설악
동에 가는 것보다 가까워서 접근하기도 좋고 대청봉으로 가는 최단코스가 있는 곳이며 그리
고 단풍의 다른 이름이 오색이 아닐른지. 인제 원통을 거쳐 장수대를 통과하여 한계령 정상
마루를 넘어가면서 감상하는 만산홍엽(滿山紅葉)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장관이다. 금
년은 수해로 지표면이 할퀴어 곳곳의 도로가 보수중이기는 했지만 오히려 단풍에는 더없이
좋은 해라고 한다.

제법 큰 마음 먹고 간 산행이지만 민박을 하고 새벽같이 일어나 보니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
리고 하늘은 구름이 두껍게 내리 깔려 등산은 엄두도 못낼 일이다. 아뿔사. 갑자기 산행에
나서는 바람에 일기예보를 챙기지 못했던 게 불찰이었다. 전날 뉴스에 비구름이 살짝 지나
간다고는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오늘 하루(10월 15일)를 위해 낙엽에 대한 나의 입장을 새
롭게 정리할 필요가 생겼다. 가을 비 속의 낙엽도 `가을비 속의 우산`처럼 낭만이 있을 거라
고.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보니 과연 맑은 날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 특별한 감흥이 일어
나는 것이었다. 역시 설악의 단풍은 일기와 무관하게 그의 장려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옛날 읽은 수필이 생각난다. 낙엽을 긁어모아 태우면서 고소한 커피냄새가 난다고 하던 수
필. 그 글에서 낙엽처럼 인생을 불태우며 살다가 마지막에는 한 줌 재로 미련없이 사라지는
그런 인생이고 싶다고 하던.

어떻게 하면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짙붉게 타오르는 단풍을 보면서 한없이 부러워하고
한편으로 제가슴 타는 아픔도 느끼며 살아온 인생이지만 회한이 남는다. 도저히 잊지 못할
수많은 사연들을 어떻게 한줌의 재로 변하게 태워 없앨 수가 있을 것인가. 겁을 내고 두려
워하고 주저하고 머뭇거리다가 가버린 인생. 덕지 덕지 지꺼기만 잔뜩 쌓인 내 인생을 어떻
게 저 낙엽처럼 선홍의 빛이 감돌며 타오르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아서라. 욕심이러니.

그래도 교육운동하면서 만나본 어린 학생들의 애처러운 눈망울을 잊을 수는 없다. 입시시즌
때마다 좌절하고 자살하는 200명 가까이 되는 청소년들의 간절한 소망을 생각할 때마다 울
컥 솟아나는 분노와 설움에 몸서리를 친다. 30년도 더 지나 우리 사회에 관행처럼 되버린
연속시리즈 자살극을 언제 어떻게 하면 멈추게 할 수 있을런지. 남은 여생을 그들을 위해
바치고 싶다. 그렇게 한 대가로 보상을 받아 죄업을 씻고 낙엽처럼 그렇게 홀연히 흔
적도 없이 사라질 수만 있다면. 아 아 !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산홍엽은 나에게 그렇게
살라고 가르쳐주고 있는 것만 같은데.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을런지. 2002.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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