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평가 때문에 한참 어려운 시기를 보내던 때에 택시안에서 메모한 글이다.
나는 그 시절을 가끔 회상할 때마다, 그 시절의 고통과 아픔과 절망이 떠올라,
몸서리가 쳐진다. 조직을 잃는 듯한 위기, 그속에서 도저히, 도저히 교원평가를 찬성하겠다는 말을,
가장 정치적으로 예민한 상황에서 발표해야하는 그 상황을 나는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내게 뜻이 어느날 폭포수처럼 찾아오고, 가야할 길이 명징해진 그때,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의 마음이 이해되고, 나도 그렇게 이 시대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내 인생을 내어주는 십자가의 길을 가야함을 인정하고, 그렇게 살기로 결심하며,
사람들 앞에 서야하는 그 고통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제 이 조직을 떠나겠다고, 실망했다는 그런 회원들의 정당한 비판,
그러나 도무지 그들의 비판에 마음을 접기에는 더 큰 세상, 더 큰 가치가 보이고,
교원들에게 참으로 유익한 또 다른 길이 보이기에, 그냥 모든 것을 가슴에 끌어안고,
침묵으로 견뎌야했던 그 시절의 아픔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보람된 시간을, 그 시절로 생각한다.
그 시절의 아픔은 내 인생의 훈장이요, 그 시절의 고통은, 주를 더 깊게 이해했던,
그래서 말씀으로 위로함을 받았던 생명의 시기라는 것을, 내가 알기에,
고통이었지만 잃고 싶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새로운 길을 가는 지금, 나는 어떻게 다시 내 인생을 살아야할 것인가?
어떻게 그렇게 자신을 죽이는 그 결정을 다시 오늘의 과제로 끌어안고,
수십배 어려운 길을 갈 것인가,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그 모든 것을 넘어가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은, 그 고통보다 더 큰 가치,
변화될 세상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겠지만, 그 미래가 내 생애에 오지 않더라도
나는 이미 받은 증거가 있으니, 내가 추하고, 내가 죄인이고, 내가 매일 휘청거리며 살더라도,
그 증거만 붙들고 모든 것을 견디고 모든 것을 바라며, 내 길을 가야겠다.

- - - -

외로운 일이다  

급한 일 때문에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에 버스를 잘못 타,
결국 고향 가는 길, 엉뚱한 곳에 내려 8만원이나 내고
택시를 탔습니다. 가던 중 택시 안에서 심란한 생각을 몇자
적었습니다.

- - - -
교원평가제도. 이 싸움은 적어도 우리 좋은교사운동 편에서
는 패배가 예정된 싸움이다. 성공해서 도입되어도 패배요,
도입에 실패해도 패배인 이 희한한 싸움.
조직의 이익에는 도무지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패배가 예견된 싸움의 길로 우리는 왜 나섰는가?

내 핸드폰에 문자 항의가 날라오고, 깊은 생각 속에서 사려
깊은 충고를 해주시는 분들의 말씀에 섬뜩 "길을 잘못 왔나"
두려움이 생겨, 돌아보며 왔던 길 틀림은 없었는지 헤아려보
는 세월의 고비를 여러번 겪었다.

대국민 선언을 하기 전, 새벽에 주신 말씀, 교사와 국민들이
하나가 되고 화해하기 위해 우리가 이 부담스런 십자가를 져
야한다는 말씀...

100분 토론 당일 날, 이 부담스러운 짐을 인해 너무 힘겨웠
을 때, 내가 너희 하나님이라는 그 말씀으로 나를 위로하시
던, 큐티 끝나고 기도 끝내고 일어설 때, 그 새벽으로 미국에
서 전화를 걸어, 하나님이 꼭 선생님께 전화하라고 했다고
하면서, "강하고 담대하라"고,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하시며 우시던 그 선생님...

공청회 무산시킨 날,
학부모들의 안타까운 호소에 내 양심이 흔들려, 이제 그나
마 갖고 있던 구실도 내려놓고 조건 없이 수락하기로 했던
그날의 아픔...

문제를 풀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늦은 밤, 산란한 마음
으로 시청 앞 거리를 지나 집으로 오며 흘리던 눈물...

그러나 지금, 마음 속으로, 좋은 이야기든 싫은 이야기든, 이
제 그만, 우리가 할 일은 다 했으니, 더 요구하지 말라고, 정
말 우리는 지금까지도 죽을 고비 넘기며, 어쩌면 이것으로
우리는 다 죽은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이제 얼마 안 남
은 힘으로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그런
마음으로 이제는 나서고 싶지 않고, 개입도 하고
싶지 않다고... 약한 마음이 슬며시 자리를 잡는다.

홈페이지에 교사들이, 회원들이 분노와 섭섭함을 토로할 때
마다, 더 많은 분들의 소리 없이 조용히 물러가며 마음 속 지
지를 거두었을 교사들, 회원들의 돌아선 마음, 그 무서운 침
묵과 그로 인한 고독이 찾아올 때마다, 그동안 쌓아두었던
신뢰의 자산을 다 까먹은 듯한 느낌이 스산하게 찾아온다.  

어디까지 가야할까? 이렇게 다 까먹고 우리가 그래도 가야
할 길이 어디며, 얼마만큼 더 갈 수 있는가?

'교원평가제도'. 이것이 우리 운동의 끝이라면 여기서 장렬
히 전사하고, 우리의 모임을 그만 두면 된다. 그러나 이것 때
문에 우리가 모였던가. 숫한 그 험한 고비를 이것 때문에, 여
기서 죽으려고 넘어 왔던가. 그것이 아니고, 우리는 가야할
길의 한 모퉁이를 겨우 직면한 것이고, 갈길은 아직 멀다면,
여기서 겪는 이 힘겨움은 어찌할 것인가? 전체가 아닌 부분
인데, 여기서 모든 에너지를 다 소모하고, 우리는 어찌할 것
인가?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주님... 10만 기독교사들을 품는
비전을 꿈꾸었는데, 전체 기독교사들을 품고자 애썼는데, 여
기서 "게토"처럼 소수의 무리로 남는 선택으로 몰려가는 이
흐름은 무엇인가?

실패와 패배의 쓴 잔을 각오하고 마셔버린 지금. 마치 다시
무엇을 되돌이킬 무엇이라도 있는 것처럼, 다시 시작하면
잘 할 어떤 아쉬움이라도 남은 것처럼, 무엇인가를 붙들려
는 이 원초적 두려움.

- - -
그러나 교직사회가 우리 때문에 아이들과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더이상 교사들의 잘못과 실수로 인
해 이땅의 아이들과 부모들의 마음에 상처가 생기지 않고,
잘못된 평가로부터 고통받는 교사들을 지켜내고,
교사의 새로운 권위를 키워낼 수만 있다면,

이것을 계기로 오랜 동안 교사들을 힘겹게 만들었던,
그 자존감과 교사의 존엄성을 짖누르던 낡은 제도를 혁파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모두를 승리자로 만들 수 있다면,
우리의 "패배"는 잘된 일이다.

이 패배의 쓴 잔을 마심으로 모두가 누릴 "성공"의 전리품,
그중 우리가 취할 몫을 생각한다.

그러나 황망하게도,
우리가 이땅에서 누리며 취할 몫은 없고,
너희는 여기서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또 다시 나를 따르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그 말씀에,
또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얄량하게 거죽밖에 남지 않은
이 육신을 던져, 다시 소모하는 일, 소진하는 일,
죽는 길을 선택하는 삶은 외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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