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2010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주관한 
"아깝다 학원비" 단행본 출판 기념 국민 수기 공모전에 우수작으로 당선된 글입니다. 




 “시장에 가면 사회, 자연, 과학이 있다”


김수진 (42세, 주부, 경기 용인)


나는 386세대의 마지막 세대로서 공부를 잘하여 좋은 학벌을 가져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교육을 받았다. 나는 소위 강남 교육 특구에서 중고시절을 보내고 공부에 관한 모든 지원을 할 준비가 되어계신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양육 태도는 세습이어서일까? 나 역시 우리아이는 다양한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는 생각에 유아기부터 미술, 발레, 오르다, 음악 등 옆집엄마들이 좋다 하는 다양한 사교육을 시켰다. 사실 우리 아이의 유치원 친구들에 비하면 많은 사교육을 하는 편은 아니라 위안했다. 친구들처럼 방과후 영어수업에 수학, 과학 학원은 안 다니고 예체능만 시켰으니까.

이렇게 1학년이 되고 영어학원을 두 달여쯤 다닌 후 아이가 학원에만 가면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했고 난 과감히 영어 학원을 정리했다. 그때 엄마들의 반응은 참 다양했다. 그 즈음 난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전업 주부가 되어 있었으므로 비로소 아이의 학원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주변의 엄마들이 학원을 맹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혼자 여러 교육, 심리 서적 등을 많이 읽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굿바이 사교육’을 만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아깝다 학원비’ 와 ‘사교육 걱정’의 모임, 그리고 등대지기학교까지 수강하게 되었다.

‘굿바이 사교육’을 읽을 때 맨 마지막 챕터에 있는 송인수 선생님의 글이 나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눈물까지 났으니 나의 감동은 그 어떤 소설보다도 더 했으리라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모든 학원을 정리하지는 않았다. 이 모임 역시 넘쳐나는 정보 중의 하나일 수도 있다고 여전히 의심했다. 그러던 중 ‘엄마 학교’, ‘나로부터의 공교육’ 등 몇 가지 책을 더 읽었고 조금 더 용기가 났다.

한 달쯤 후 3~4개월 다니던 수학학원을 정리했다. 때마침 아이가 학원 선생님이 모르는데도 계속 다음으로 넘어간다고 다니기 싫다고 했고 ‘아깝다 학원비’의 문구가 절절히 생각났다. 영어 학원이야 그전부터 느껴왔던 것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는데, 엄마들에게 평이 좋았던 수학학원이어서 좀 실망스러웠다. 옆집엄마의 말이 필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주에 한번 가는 과학학원이 있었는데, 실험 위주, 체험 위주라 해서 재미 있으라 해서 보냈는데 한두 번 빼고는 재미가 없다고 했다. 실험은 별로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만지면 깨지고 다칠 위험이 많아서 아직 저학년들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과학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낸 것이었는데 더욱 관심으로 부터 멀어지는 것 같아 단계적으로 정리했다.

학원들을 정리하고 나니 우리 아이에겐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 학교 끝나면 이 친구 저 친구와 약속해서 놀기에 바쁘다. 아이들이 바쁘기 때문에 아이들과 스케줄을 확인하고 어떻게든 시간 맞는 친구와 놀고 싶어한다. 그 남는 시간 동안 좋아하는 DVD를 보면서 영어공부(?)도 한다. 스스로 규칙을 지키고 시간조절을 할 줄 안다. 내가 그렇게 걱정하던 수학도 혼자 하는 습관이 들어서 알아서 하루 몇 페이지씩 문제집을 풀고 이젠 심화문제 한 두 문제도 매일 풀면서 수학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는 것 같다. 시간이 많으니 매일 수영을 하는 선수반에 들어가서 매일 한 시간씩 수영을 한다. 수영대회에도 나가서 입상도 했다. 짧은 시간 연습했는데도 입상하게 되어 본인이 대단한 성취감을 느꼈다. 요즘은 본인이 목표로 하는 속도가 나오는 날은 너무 기뻐한다. 스스로 인터넷을 검색하여 수영 영법을 연구하기도 한다. 물론 우리 딸은 수영선수가 될만한 실력은 아니다. 그저 취미로 하고 있는데 수영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 많은 것 같다. 학원을 다녔다면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주변의 친구들에게 매일 수영하는 장점을 아무리 설명해도 학원 때문에 할 수 없다고 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아이들은 혼자 놔두어도 스스로 앞으로 진행하는 힘이 충분히 있다고 하는데 난 그것을 믿지 않았다. 학원을 안 다니고도 내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이 점을 몸소 체험하고 우리 아이를 믿게 된 것이다. 아이를 믿게 되니 조바심이 나지 않고, 조바심이 나지 않으니 지금 당장 남보다 좀 뒤떨어진다고 해서 불안하지도 않다. 이렇게 혼자 알아서 자기 스스로 숙제 및 할일 들을 잔소리 하지 않아도 시간 조절해가며 한다는 것이 뿌듯하고 아이에게 감사하다. 우리아이를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학원을 다니고 시간에 쫓기면 결코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나의 교육관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교육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우리끼리 해 낼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가능성 같은 것… 그런 가능성을 기대하니 주변에 학원을 다니지 않고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도 꽤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꼭 공부가 아니어도 우리 아이의 장점들이 눈에 들어오고 모든 것이 감사하기 시작했다. 100점을 맞지 않아도, 중간, 기말고사 때 아이에게 무리한 공부를 시키지 않아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다. 공부 잘하지 않아도 우리 아이는 언젠가 반드시 본인의 실력을 어딘가에서 충분히 발휘 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영어 공부 하나도 하지 않는데, 그저 CD듣고 책 가끔 보고, DVD 열심히 보는데 막연히 몇 년 후엔 영어를 잘하게 될 것 같은 말 도안되는 배짱도 생겼다.

그러면서 아이를 끌고 가지 않고 아이를 따라가는 것을 체험하기 시작했다. 생활습관에 관한 것은 지적도 하고 때론 혼도 내지만 공부에 관한 것은 아이의 뜻에 많이 맡기게 되었다. 나는 학교에서 어떤 대회가 있는지 잘 기억도 못하는데, 아이가 먼저 기억하고 ‘엄마 이렇게 하는 건 어떨 것 같아?’ 하고 묻는다. 그리고 도서관에도 가고 싶다면서 도서관 가는 시간을 기다린다. 천천히 책 읽는 것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 실컷 놀고 나니 다른걸 하고 싶은 생각도 드나 보다 싶다. 이렇게 본인의 일을 알아서 챙기는데 왜 따로 공부를 시켜야 하나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고생한다고 지금 선행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엄마들에게 말하고 싶다. 아이가 받아 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한번 잘 확인 해 보라고. 학원을 가지 않고도 세상에는 배워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 며칠 전 평일에 우리 딸과 남대문 구경을 갔는데 우리딸 눈에 모든 것이 새로웠다. 노숙자, 외국 관광객, 노점상, 시장 건물 모두모두가 말 거리가 되었다. 평일에 남대문 다녀왔다고 친구들에게 말하니 모두 ‘어떻게 평일에..’ 하는 눈빛이다. 사실 낮에 대형 마트에 가면 마트에 있는 초등학생은 우리딸 뿐인 것 같다. 시장에 가면 사회가, 자연이, 과학이 있다. 한가로운 마트를 실컷 구경하면서 우리 모녀는 즐겁다.

이런 한가로움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우리 가족은 이사도 생각하게 되었다. 사교육을 안 하니 학원주변에 살지 않아도 되고 비싼 동네에 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딸은 매일 짧은 동화책 쓰기가 취미 인데 넓고 푸른 자연을 좀 더 접할 수 있는 곳에서 맘껏 동화책을 쓰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아빠의 일만 허락 한다면 지방으로 가도 상관없을 것 같다. 정말 이런 말도 안 되는 배짱은 1년 전에는 생각도 못했는데… 작은 변화 하나가 우리 가족의 주거지까지 변화하게 만드는 것 같다. 나의 배짱이 어디까지 갈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것이 우리 아이를 소위 말하는 일류 대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행복하게 만드는 것인 것 같기는 하다.

어디서 알았는지 오늘은 우리 딸이 부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 부부는 단 한번도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나는 우리 딸에게 자신 있게 말한다. ‘부자가 되지 않아도 행복한 일은 얼마든지 있어. 마음이 부자여야하고 나눌 수 있어야 한단다. 공부도 나누려고 하는 것이지 너 혼자 부자가 되려고 하는 게 아니야. 부자인 사람도 불행한 사람이 너무나 많더라.’ 라고… ‘ 그래, 딸아.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부자가 되지 않아도 행복하다는 사람이 아주 많은 그런 사회가 왔으면 좋겠다. 그런 날이 올 때 까지 우리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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