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2010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주관한 
"아깝다 학원비" 단행본 출판 기념 국민 수기 공모전에 장려상으로 당선된 글입니다. 



“떠밀려가지 말자”

 

권일한 (39세, 교사, 강원도 삼척)


교육은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합니다.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지만 지금은 변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달리지 않으면 금세 뒤쳐집니다. 뒤처지지 않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교육이겠지요. 그래서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어른들도 평생교육을 외칩니다. 변화는 즐겁습니다. 장식품 하나 바꿔도 즐거운데 공부를 해서 사람이 변한다면 얼마나 즐겁겠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주변 사람들은 변화를 일으키는 공부를 즐거움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세상 변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지다 보니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불안이 찾아옵니다. 불안하면 원하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살핍니다. 경쟁이 곁에 붙어있는 동안 교육은, 변화를 기쁨이 아니라 속도전쟁으로 바꿉니다. 빨리, 더 빨리,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불안이 일으키는 두려움이 얼마나 큰지 수단이 목적을 좌우합니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공부해서 무엇을 할 건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공부 잘하는 자체가 목적이 됩니다. 그래서 학원에 갑니다. 개인교습을 하고 잠을 줄입니다. 초등학생에게 중학생 문제를 가르칩니다. 속도전쟁에 뛰어든 부모들의 안타까운 모습이지요. 사실 저도 조금은 불안했습니다. 저만치 앞서가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 부모가 ‘아이를 위해서 배움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설득할 때 말려들 뻔 했습니다. 지난해, ‘아깝다 학원비’를 받고 참 좋았습니다. 오기로라도 버티기를 잘 했다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경쟁에 떠밀려 한 공부는 정말 재미없었습니다. 스스로 책을 읽고 배우며 깨달아 한조각 한조각 맞추는 기쁨이 너무 컸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배움이 즐거움이 되지 않는 한, 수단으로 전락한 교육은 희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적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 아이들을 기릅니다. 학원은 피아노 학원 한 군데에 다닙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을 확인하는 문제집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제 아이들이 1년 동안 풀어내는 문제집은 2-3권 정도뿐입니다. 문제집은 확인하는 도구이지 교육을 시키는 도구는 아닙니다.

제 딸 민하와 서진이는 공부를 즐거워합니다. 강요받지 않기 때문에 부담을 느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하루에 네 가지를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성경 1장 읽기, 영어 30분, 책읽기 30분, 교과공부 30분입니다. 이것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하루에 4가지를 3주일 동안 75개 이상 하면 외식하고 선물을 사줍니다. 다트도 사고 공주놀이세트, 물총도 그렇게 샀습니다. 65개 이상이면 외식만 합니다. 놀이에 빠져 공부를 안 하는 것 같아도 65개 아래로 내려간 적은 없습니다.

제가 잔소리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집에 오면 교육방송에서 영어공부를 합니다. 아주 가끔 무얼 들었는지 물어보고 아는 낱말이나 표현을 확인하지만 아이들 스스로 하는 공부에는 간섭하지 않습니다. 영어공부에서 제가 하는 말은 두 가지입니다. ‘재미있니?’,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소용이 없단다. 못 알아들어도 자꾸 따라하면 어느날 딱 이해하게 될 거야.’뿐입니다. 교육방송은 듣기 위주라 구경만 할 수 있어 요즘은 제가 가르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노래나 챈트가 나오면 폴짝폴짝 뛰며 무용을 만들어 춤을 춥니다. 책상에 가만히 앉아있지 않습니다. 까르르 웃으며 영어표현을 따라하며 이리저리 뜁니다. 단어시험, 문법시험은 없습니다. 제 아이들에게 영어는 공부해야 할 과목이 아니라 놀이대상입니다. 그래서 영어공부를 어려워하지 않습니다.

교과공부는 한 번 시켜봤습니다. 얻어온 문제집이 있어 풀었는데 문제를 보니 별 도움이 되지 않아 보였습니다. 아이들의 이해력과 판단력을 기르는 문제는 별로 없고 대부분 당연한 결론을 찾거나 단순지식을 확인하는 문제였습니다. 안 해보던 문제풀이라 아이가 재미있어 했기 때문에 그냥 놔두었습니다. 그래도 둘 다 공부를 잘합니다. 학교에서 시험 치면 대부분 백 점입니다. 등수는 당연히 묻지 않습니다. 시험은 그냥 시험이니까요.

너무 문제를 안 풀어서 실수를 하거나 문제유형에 당황할까봐 올해엔 국어, 수학문제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 돌아다니는 4학년 문제집이 있어 2학년 서진이, 3학년 민하에게 풀어보라고 했습니다. 지식을 요구하는 문제는 모르면 넘어가고 지문을 읽고 풀이하는 문제 위주로 하는데 거의 틀리지 않습니다. 선행학습이 아니라 길고 복잡한 지문을 이해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던져주었는데 척척 해결합니다. 책을 많이 읽어서 저절로 이해력이 좋아졌기 때문이겠지요.

제가 강조하는 공부는 책읽기입니다. 배경을 알지 못한 채 외운 단순지식은 너무 얇아 금방 바닥이 드러납니다. 사회문화적 배경, 시대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면 단순지식을 좀 몰라도 공부를 잘합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책을 많이 읽습니다. 초등학교 교사이고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과목별, 관심사별 추천도서를 아이들에게 건넵니다. 학교에서 지도를 배울 때는 도서관에서 지도 관련 책을 몇 권 빌려줍니다. 그럼 아이는 책을 뒤적이다 눈에 띄는 한두 권을 들고는 읽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합니다. 첫째 민하는 사회 과학 분야를 좋아하고 둘째 서진이는 문학을 좋아합니다. 민하에겐 설명형식의 책을, 서진이에게 이야기형식의 책을 주면 잘 읽습니다. 둘 다 좋아하는 작가가 있는데 로알드 달, C. S. 루이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입니다. 이분들 책은 섭렵을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고 하면 제게 배우는 아이들이 부러워합니다. ‘정말 좋겠다, 좋은 아빠 만났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학원에 너무 지쳐있습니다. 뒤지지 않으려고 학원에 보낸다지만 사실은 부모들이 학원에 아이들 맡겨놓고 하고 싶은 일을 하려는 이유도 있습니다. 두려움도 많고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아깝다 학원비’를 나눠주며 이거 읽으면 학원을 줄여주실 거라고, 부모님께 꼭 전하라고 합니다. 제가 속한 여러 모임에서도 강조를 합니다. 교사면서도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분들이 많아 동료들에게도 ‘아깝다 학원비’를 나눠주고 가끔 가는 강의에서도 나눠줍니다. 저를 믿고 학원을 줄이거나 끊은 분을 만날 때마다 두려움을 이겨낸 분이라 참 좋습니다.

공부와 성적에 점점 지쳐가는 아이들 모습을 보니 브레이크 고장난 폭주기관차에 올라탄 승객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달리는 겁니다. 성적-내신-대학-직장-결혼-집 마련이라는 역을 지나면 다시 자녀들에게 똑같은 역을 지나가게 만듭니다. 학원에 보내는 현실 이면에 사람들 모두가 똑같은 역을 지나도록 만든 체제가 있습니다. 그 체제의 주인이 있다면 두려움이겠죠. ‘다른 사람들 모두 하는데……’는 그냥 유혹일 뿐입니다.

저는 부모들을 안심시키고 사교육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 독서라 생각해서 독서반을 운영합니다. 내년부터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중학생 독서반을 할 겁니다. 사교육 줄이기에 티끌만큼의 도움밖에 되지 않겠지만 아이들이 학원에서 꽉 막힌 지식을 달달달 외우는 대신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성장하는 모습을 볼 겁니다. 우리집에 붙어있는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 문패가 강원도 시골의 다른 집에도 붙는 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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