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민교육/등대지기학교

[등대3강 강의스케치] 조기 영어 교육의 미신과 신화를 깨자! (이병민)


본 내용은 2010년 제5기 등대지기 학교 강의 중 제3강 이병민 교수의 ‘조기 영어 교육의 실상과 진실’ 강의스케치입니다.

2010/10/25

영어로 된 PPT 강의 자료의 압박...^^

이번 강의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상설기구인 ‘영어사교육포럼’ 대표를 맡고 있는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학과 교수의 ‘조기 영어 교육의 실상과 진실’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조기 영어 교육으로 인한 과도한 사교육 문제, 영어를 잘 하기 위해 혀 수술을 받는 사례, 모국어인 한국어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영어를 교육받아 두 개의 언어를 배우면서 정신적으로 혼란을 느끼는 아이들의 사례 등 영어 교육과 관련된 폐해가 심각하다. 이러한 사회 현상에 대해 진단과 처방을 내릴 수 있는 이병민 교수의 강의가 무척 기대됐다. 한편, 미리 받아 본 강의 PPT자료에 영어로 된 논문 내용들이 담겨 있어 강의가 어렵고, 지루하지 않을까하는 염려도 살짝 들었다. 기대감과 불안감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들은 2시간의 강연은 어려운 학술 논문 결과를 쉽게 풀어내는 이병민 교수의 탁월한 설명력과 강사의 질문에 적극적으로 답하고 참여하는 현장 수강생들의 열기에 힘입어 즐겁고 활기 넘치는 배움의 장이 되었다.

이병민 교수는 사람들이 ‘영어사교육포럼’이 영어 사교육을 조장한다고 종종 오해하기에 연구소 이름도 ‘영어사교육걱정없는포럼’으로 했어야한다는 재치 있는 멘트로 강의를 시작했다. 오늘 강의는 조기 영어 교육에 대한 오해를 풀어가는 시간이었다.


조기 영어 교육의 미신과 신화를 깨자!

이병민 교수는 모국어를 배울 때 말을 배울 수 있는 결정적 시기가 있다는 것(모국어에 결정적 시기가 있다는 것도 가설이라고 하지 않은 것 같음)은 모국어를 습득한 이후 다른 외국어를 습득할 때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어느 특정 시기를 지나 다른 외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고, 중요한 것은 그가 해당 외국어에 충분히 노출된 환경에서 살고 있느냐의 문제이지, 외국어를 구사해야할 생활의 아무런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소위 ‘결정적 시기’를 넘기기 이전에 영어를 가르쳐야한다는 조급한 마음으로 조기영어교육을 맹신하는 것은 어리석을 일이다.


이병민 교수는 부모가 아이를 이중 언어 사용자로 키우겠다는 욕심을 버리라고 충고했다. 두 가지 언어를 하게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균형 잡힌 이중 언어 사용자로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엄마는 한국어를 쓰고, 아빠는 영어를 쓰면 4살까지는 이중 언어를 습득할 수 있으나 아이가 밖에 나가는 순간 영어를 접할 수 없기 때문에 균형이 무너진다. 인간이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환경(nature)과 교육(nurture)이 모두 충족되어야 하는 것이다. 늑대소년 이야기처럼 말하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도 주위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언어를 습득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병민 교수는 언어는 단지 주입으로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쌍방향의사소통의 과정에서 습득되는 것임을 강조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에 도착한 나이가 언제인가가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할 수 있느냐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하니, 아이가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사용할 수 있게 하려면, 이병민 교수는 지금 바로 ‘이민을 떠나라’고 일침을 가한다. 이병민 교수는 조기 영어교육에 대한 한국인의 과도한 집착을 문제 삼으면서, 한국에서 영어조기교육 주장론은 이론의 잘못된 일반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일상의 경험을 통해서 조기에 배우면 잘할 것이라는 신화가 확산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확실한 실증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고, 존재한다고 해도 상황이나 맥락이 다르다고 한다. 영어조기교육에 대한 국제적 연구를 살펴보면, 모두 모국어 경험을 가지고 영어권 국가로 이민 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연구 결과는 나이가 모국어 습득만큼 절대적이지 않다. 조기교육의 효과가 가장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은 발음이지만, 발음도 시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며, 일상생활에서 영어에 충분히 노출되고 영어교육을 위한 투입이 충분한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무엇을 왜 배우는가에 대한 물음 던지기

제대로 된 영어라는 것이 무엇일까. 도대체 어떤 수준으로까지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러야 하는가. 쓰고, 읽고, 듣고, 말하고 모두 원어민 수준처럼 최상의 외국어를 익히게 하려는 한국의 부모들은 욕심이 과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병민 교수가 언어의 학습에서 강조한 것은 일상적 노출이다. 우리가 만4세가 되어 한국어를 자유롭게 사용할 때까지 모국어에 노출된 시간은 11,680시간이라고 한다. 이를 영어에 적용해 하루에 영어를 한 시간씩 듣고 말한다면 32년이 걸린다. 실로 엄청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영어를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배우는 상황에서 “영어를 잘 한다”고 할 때 그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원어민처럼 하려는 욕심을 가지려면 하루빨리 영어권으로 이민을 가는 게 현명한 일이고, 그렇지 않고 외국어로 배운다 할 때는 학습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춘 연령에 시작하는게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미수다’에 나오는 외국인 학생들, 한국관광공사 사장인 독일인 이참씨, 전 주한미상공회의소 회장인 제프리 존스, 방송인로버트 할리 등은 어릴 적부터 한국어를 배운 것이 아니다. 이들은 일상에서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접하고, 필요에 의해서 언어를 배운 것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소통의 필요성과 환경에 노출되었을 때 두 언어, 그 이상의 언어를 습득할 수 있지만,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이 사라지게 되면곧 잊게 된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일상에서 거의 영어를 사용하지 않고, 사용할 일이 없다. 조기교육, 몰입 교육 등은 한국 사회의 환경에서는 효과가 나타나기 힘들다. 언어 습득과 관련된 요인들인 다국어 환경, 교육시간, 나이, 동기, 모국어, 재능 등에서 나이는 한 가지 요소에 불과한 것이다.


이병민 교수가 강의의 마무리로 보여준 피피티 문구가 인상 깊었다. “영유아기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게 되어있을까? 그것은 살아감의 시기이다. 그 시기는 본능의 시기로 인간이 되어가는 시기다. 그 시기에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아이들은 주변의 애정이 흐르고, 풍부하고, 자연스럽고, 놀고, 만지고, 던지고, 부수고, 나누고, 그리고 대화하고, 어울리고, 말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인간다움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단지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나머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가. 무작정 영어 공부를 하기에 앞서 왜 영어를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먼저 던져보자. 그리고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함께 고민하고,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자.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꿈꾸고, 깊은 성찰과 뜨거운 열정으로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즐겁게 활동하는 김재민 정책 간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