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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걱정없는세상/회원의 이야기

방송작가 맨발각시의 생활단상....

[생활단상] 등대지기 1년을 되돌아보며| [서울] 마포 서대문 은평

지난 1월 29일 지역모임에서 한 '생활단상'입니다  

올리라고 해서 올리긴 하는데 무지 쪽팔린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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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람 사귀는 일에 서툽니다.

직업적으로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세계를 탐구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일상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은 일부러 꺼리는 편입니다.

아마도 늘 누군가에 관심을 기울이고 탐색하는 일을 하느라

개인생활에서만큼은 세상과 벽을 쌓고 숨어있고 싶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저에게 지난 2009년은 아주 특별한 해였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여해 보겠다고

제 발로 찾아갔으니까요.

 

3월이었던가요, 사무실에 배달된 ‘시사인’을 뒤적거리다가

등대지기학교 기사를 보는 순간,

갑자기 제 가슴팍에 불꽃이 파박! 일어났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냉큼 입금부터 했습니다.

그리고는 인터넷 카페를 찾아들어가 회원가입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매일 아침 컴퓨터를 켜면

반드시 둘러보는 즐겨찾기 사이트가 되었습니다.

 

사실 등대지기학교가 개강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큰 기대는 없었습니다.

그저 아이 키우는 데 필요한 정보들을 얻고

소소한 공감거리를 나눌 수 있는 정도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육아 정보와 부모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저에겐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으니까요.

그런데 첫 번째 이범 선생의 강의를 듣는 순간,

예상치 못한 충격에 두려움이 엄습해오더군요.

‘아, 내가 잘못 발을 들였구나. 차라리 오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하는 후회 말입니다.

진리를 아는 순간, 모순에 대한 저항을 거역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 같은 걸 느꼈다면 너무 거창한가요?

하여간 대학 1학년 때 운동권 선배들과 세미나하면서

엮여 들어가던 그 때의 느낌과 똑같았습니다.

 

두 번, 세 번, 강의가 더해질수록

부모라는 존재와 역할을 새롭게 발견하고

부모 공부의 재미에 빠져들면서

처음 느꼈던 충격과 두려움은 조금씩 사라졌습니다.

그 대신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아주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든든해졌습니다.

생전 처음, 동네 모임에 나가는 용기를 내게 된 것도

그런 든든함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낯을 많이 가리는 저 같은 사람에게

은평서대문마포 모임을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동네 중국집에서 안면을 텄을 때부터

심상찮은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왠지 친숙하게 느껴지고 앞으로 계속

만나게 될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하여간 그날의 강렬했던 첫인상들이 하나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걸 보면, 우리 모임의 멤버들은

겉과 속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분명합니다.

 

졸업여행을 다녀온 뒤 지역모임을 정례화하고 활성화하는

임무를 부여받았을 때는 과연 잘 될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당장 저부터 매달 두 번씩 만나는 일이 쉽지 않았으니까요.

무엇보다 모임을 끌어가는 방식부터 생경했습니다.

등대지기학교 필독서로 지정된

황주석님의 ‘마을이 보인다 사람이 보인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 취지와 뜻에 가슴 깊이 공감하고 깨우치면서도

과연 내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촛불을 켜놓고 생활단상을 나누는,

그런 쑥스러운 짓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실제로 이렇게 하고 있는 걸 보면

과연 무엇이 저를 이렇게 변화시켰는가

제 스스로도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처음의 계기는 저도 모르게 갈구해온

제 속의 열망들로 시작되었겠지요.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

세상을 바르게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 그런 것들이

제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었겠지만 거기에 불꽃을 댕긴 것은

바로 이 자리에 함께 있는 여러분들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거침없이 하이킥’의 자세로

매사를 시원하게 이끌어 나가는 우리 ‘미모의 방짱’님을 비롯해

김승현 쌤, 자유님, 초록사과님, 선경희님 등등의 개념언니들,

그리고 이들을 능가하는 포스를 가지신 다채로운 캐릭터의

배우자님들과 가족들, 이런 멋진 사람들과 같은 멤버라는 사실이

저로서는 참으로 자랑스럽고 뿌듯합니다.

 

우리 은평 모임 식구들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쯤 저는

등대지기 강의에서 들었던 내용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최고, 일류, 명문, 성공’이라는 키워드만 쫓으며

방송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 제 아이에게는 조바심치며 영어유치원이다 뭐다 하면서

이런 저런 사교육을 들이대고 있을지도요.

 

따지고 보니 제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만난 것은

저한테만 이로운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수혜자는 아무래도 제 아이들이 되겠지요.

제가 이 모임에 참여한다고 해서

아이들의 일상이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어린이집 다니는 것도 그대로고

할머니 손에 자라는 것도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엄마의 태도는 분명 달라졌습니다.

몇 살이 되면 영어를 시작해야 하고

또 언제가 되면 무슨 동화책을 읽어야 하고,

그런 계획표로부터 자유로워지니

당장 목소리부터 부드러워지고

아이를 대하는 시선도 훨씬 따뜻해졌습니다.

 

그래도 워낙에 줏대가 없고 귀가 얇은 인간인지라

아직도 옆집 엄마나 강남 엄마를 만나면

마음이 혹하고 주눅이 듭니다.

지난 졸업여행 이후 두 달 가까이 못 본 탓일까요,

요즘은 초등학생 딸아이를 미국으로 넉 달간 단기유학 보내기 위해

2천만원을 들였다는 직장 선배 얘기에 마음이 흔들려

‘아, 나도 영어캠프 적금 부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자녀교육만이 아니라 당장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지역모임은 기필코 사수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돌이켜보니 우리들의 인연은 이 사회가 맺어준

필연적인 만남이 아닌가 싶습니다.

교육위기의 시대에 스스로 등불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

어둠에 눈감지 않고 제각기 일어나 빛을 내고 있기에

우리는 어둠속에서도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혼자만의 다짐이나 결심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맞이하는 이번 새해는

새로운 기대감으로 설렙니다.

뜻이 통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기에

한결 편안하고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만나면 흥겹고 모이면 즐거워서 절로 웃음이 나는

그런 만남을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인연이 쌓여갈수록

우리가 가는 길도 더욱 넓어지리라 믿습니다.

 

올 한 해, 우리 은평서대문마포 모임 분들,

그리고 새로 맞이한 신입회원분들 모두에게

건강과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저작자 표시컨텐츠변경비영리
 
드뎌 올라왔군요.
'진리'를 아는 순간, '모순'에 대한 '저항'을 '거역'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 그날 등장한 다섯개의 키워드였죠.
10.02.02 09:46
  라일락
맞아요~~ 공감 100 이란게 이거구나! 했던 놀라운 키워드입니다~^^ 10.02.02 15:44
 
우리 모임 이름으로.. '진리모순저항거역숙명(쭐여서.. '진모저거숙' 확쭐이면.. '진숙')모임 어때요??? 꺄오 만세 님좀짱 떡실신
10.02.02 12:21
  김승현
당분간만.. 이해해주세요..^^; 제가 텍스티콘에 재미붙여서.. OTL 10.02.02 12:23
  라일락
넘 잼있어요^^ㅋㅋㅋ(전 텍스티콘 아직도 이해불가랍니당;;) 10.02.02 15:41
 
  anny
맨발각시님! 글로 읽으니 더욱 깊은 감동이 드네요. 이 글 제 대학 동아리 졸업생 카페에 올려도 될까요. 지금은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선후배, 동기들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우리의 삶을 담을 수 있는 작은 실천을 알리고 싶네요.^0^
 10.02.03 02:45 new
  맨발각시
어차피 그분들은 저를 모르시는 분들이니... 저로서야 영광입니다. ^^;; 10.02.03 05:56 new
 
  자유
저도 우리 학교샘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그렇게 회원배가 운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역시 멋진 글. 10.02.03 16:10 new
 
  빠삐
참..작가님이신데도 자기 이야기를 쓰는 것은 쉽지 않겠죠?^^ 솔직한 이야기에 공감해요. 뉴스레터에 퍼갑니다~~ 콩콩 15:42 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