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아닌 사람을 남기는 교사 '함께'(양영기)

세상을 바꾸는 일에 동참하는 자랑스러운 엄마 '샤바누'(안순아)

두 분을 소개합니다!

 

 

2011년 5월에 대한민국 최초로 사교육과 관련한 상담을 책임져온 온라인 상담소 ‘노워리 상담넷’이 이제 3살을 넘기며 4년째 활동에 들어섰습니다. 작년까지 ‘노워리 상담넷’을 이끌어오신 박재원 소장님과 윤다옥 부소장님에 이어 올해부터 새롭게 소장과 부소장을 맡아주신 두 분을 소개합니다! ^^

 

 

본명보다는 닉네임이 더 익숙한 두 분이시죠~ 노워리 상담넷을 눈여겨보신 분이라면, 익숙하고 친근하고 너무나도 반가운 분들! 그동안 수학 영역에서 독보적으로 맹활약 해오신 ‘함께’님(양영기)과 학습/생활 및 심리 영역 상담과 사춘기 고수실록을 연재해오신 ‘샤바누’님(안순아)이신데요. 2014년 노워리 상담넷을 이끌어가실 두 분을 자세하게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먼저, 두 분의 활약이 어떠했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매의 눈’으로 노워리 상담넷에서 활약해오신 역사를 꼼꼼하게 찾아보았습니다! (-_-+)  

 


‘함께’님! 돈이 아닌 사람을 남기는 교사...

 

자랑스러운 1기! 대한민국 최초로 사교육 걱정을 덜어주는 강좌로 한겨레 신문, 경향 신문 등에 실리며 전국적으로 알려졌던 등대지기학교 1기를 졸업하셨습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6년 활동의 면모를 모두 다 알고 계시겠죠?^^ 이 운동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늘 고심해오던 ‘함께’님에게 가장 잘 어울리고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한 것이 바로 노워리 상담넷인 것 같아요. 글쓰기를 좋아하시는 ‘함께’님의 상담 글은 하나의 완성된 칼럼 같기도 합니다. 읽으면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글들이죠~ 새벽까지 잠을 아껴가며 정성들여 한 문장 한 문장 상담 답변을 써서 올려주신다니, 읽으시는 분들은 그 정성을 생각해 꼼꼼하게 읽으며 마음에 새겨주세요~!^^

 

 

 

 

그동안 해오신 상담 활동을 살펴보니, 세상에!!! 주 전공이신 수학 상담을 87회나 하셨구요~ 그 외 독서, 생활 및 심리 등 다른 영역에서도 10회가 넘는 상담을 해오셨고, 특히 상담위원 칼럼을 틈틈이 연재하셨는데 벌써 14회나 된답니다. 쓰시는 칼럼마다 팬 층이 두터워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네요. 수백명의 부모님들이 읽으시며, ‘아~ 정말~’ ‘아... 그렇구나!’ 무릎을 치며 고개를 끄덕이시는거 제 눈엔 보입니다, 보여요!!

 

그럼 이 시점에서 ‘함께’님의 과거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젊은(!) 나이에 단단한 내공을 쌓으시고 열정적으로 활동하시게 된 것인지, 그 배경이 몹시 궁금합니다. 예전에 이런 고백을 하셨어요.


“대학을 오래 다녔어요. 십 년 넘게 다녔으니까. 대학을 다니면서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사교육이었어요. 쉽게 벌고 쉽게 썼어요. 그 당시는 그 돈이 어떤 돈인지 몰랐어요. 철이 없었으니까. 상담넷에서의 상담은 제 나름 생각해낸 그때의 빚을 갚는 방법의 하나예요. 지금도 그렇지만 남을 가르칠 자격이 없었는데, 당시는 스스로 유능한 강사라고 착각했었지요. 그러면서 교육을 고민하게 되었고 교사가 되기로 결심했죠. 돈이 아닌 사람을 남기는 교사요.”

 

쉽지 않은 고백이죠. 한때 사교육 시장에서 몸 담고 있다가 공교육 현장으로 옮기실 때, 수많은 날들을 지새우며 고민하고 결단하시지 않았을까요? 그 고민의 시간이 현재의 ‘함께’님 안에 차곡차곡 쌓여서 지금의 진정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중요한 것은 성적을 올려주고 좋은 대학 보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삶 속에 머무르고 존재와 삶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는 것을 일찍 깨우치신 것이지요~ 이러한 중심이 ‘함께’님의 상담 곳곳에 배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논리적이면서도 인간적인 면모가 잘 어우러진 ‘함께’님의 상담! 노워리 상담넷은 복 받았습니다!! >_< 여러분도 복 받으신 거예요~

 


사춘기 고수실록으로 엄마들을 울린 ‘샤바누’님!

 

‘그동안 어디에 숨어계셨던 거에요?!’ 2011년 봄부터 카페에 등장하신 샤바누님의 내공을 한 눈에 알아본 사람이 있었으니... 세 아들을 키우며 고군분투하던 ‘라일락’님의 강력 추천으로 노워리 상담넷의 활동을 시작하셨어요. 노워리 상담넷 뿐 아니라 여러 게시판에서 종횡무진 활약하시고, 강의를 통해 만나는 엄마들에게 눈물 뽑고 콧물 뽑게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답니다. 학습/심리 영역과 영어 사교육, 영유아 교육, 독서 등 샤바누님이 그동안 해오신 상담 활동만 해도 100회가 거뜬히 넘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밤잠 아껴가며 회원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을 60편 이상 써오셨는데, 특히 ‘사춘기 고수 실록’은 한 편의 단편 드라마를 보듯 눈 앞에 펼쳐지는 생생한 묘사와 대사(!)가 압권이지요. 아이들과 실제 일상에서 나눈 대화들을 그대로 옮겨오며 그 속에서 나눈 부모-자녀 간의 역동과 성장의 이야기들을 보면서, 수많은 부모님들이 샤바누님의 글을 읽으며, 허벅지를 찌르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반성의 반성’을 거듭한다지요.

 

 

 


어떻게 아이들을 이리도 잘 키우고 있냐는 카페 회원들의 부러움 어린 칭찬에 눈 앞에서 손사래 치듯 하는 샤바누님의 모습으로 이렇게 겸양의 대답을 하기도 하셨어요. ‘한달 동안 열시간, 시험기간에도 내리 잠만 자는데 제가 말을 안 해 그렇지, 속이 뭉그러지고 다 헤졌습니다. 감동 이전에 허벅지를 찌르는 저의 고통과 인내를 감내하여 주세요.’라구요.

 

보통 엄마표로 성공했다거나 자녀교육에서 성공했다며 호들갑 떨며 책 내고 방송에 나오는 분들을 보면, 그 성공의 기준은 성적과 대학입시 결과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샤바누님의 글을 읽다보면, 진정한 성공의 기준은 그런게 아니라 자녀와 나누는 대화, 자녀와 어떤 얼굴로 서로 마주하고 있는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좋은 성적과 대학 입시는 결코 첫 번째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한 엄마, 행복한 아들 딸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샤바누님의 글은 솔직하며 생기 넘치고, 많은 부모들에게 위로를 줍니다. 매일 갈팡질팡 하며 좌충우돌하는 평범한 부모들에게 희망을 주고 새로 시작할 힘을 주는 것이죠.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게 하는 힘이 샤바누님의 글 속에 있어요.

 

그러니 어떤 분은 ‘샤바누’님의 글을 읽으며 감탄사를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참 꾸준하게 지치시지도 않고 손끝이 무디어지시지 않을까 걱정될 만큼 큰 줄기에서 다양한 가지의 형태로 이야기 글을 올려주시는 샤바누님! 샤바누님의 나눔을 통해 조금이나마 정신줄 챙겨가는 저 같은 엄마도 있으니 위로가 되시려나요.’라구요.

 

이런 두 분이 노워리 상담넷의 소장 부소장으로 함께 해주시니, 어찌 든든하지 않겠어요!^^ 카페에 들어오시는 수많은 부모님들, 자녀 문제로 고민하고 가슴 아파하는 분들에게 노워리 상담넷이 따뜻한 위로를 주는 지혜로운 멘토로 여러분 가까이에 있을 것입니다.

 

두 분의 맑고 밝은 얼굴에서 웬지 힘이 느껴지지 않나요? 그 힘은 아마도 평범한 부모로 남기를 거부하고, 세상을 바꾸는 일에 동참하며 자랑스러운 부모로 살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기 때문일 거에요. 앞으로 두 분이 이끌어가실 ‘노워리 상담넷’의 성장과 도약을 기대하면서, 두 분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마지막으로, 함께님과 샤바누님이 그동안 카페에서 나눠주신 글들 중에서 주옥같은 이야기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주옥같은 이야기들이 너어~~무 많아서 골라내는데 진땀 흘렸어요... 2011년부터 써오신 글들을 읽다보니, 다시금 제 마음에도 새겨지고 뿌리내리는 진리들이 있네요! 여러분들도 읽으시면서 ‘함께’님, ‘샤바누’님과 더불어 참된 부모의 세계로 빠져보아요~^^

 


*양영기, 안순아의 주옥같은 한마디*

 

좋은 씨앗을 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좋은 밭을 만들어 놓는 것이 우선이다. 그 밭은 학생의 ‘마음’이다. 세상에 대한 건강한 시선,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부모의 격려와 기다림, 스스로 만들어낸 시행착오의 경험, 성취감, 공부에 대한 재미 등이 그 밭의 양분이 된다. (양영기, “부모가 보는 눈, 교사가 보는 눈” 중에서)

 

우리 주변에는 돈만 대면 어떻게 해주겠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돈이 있고 자식을 사랑하고 불안하니 그러한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습니다. 저는 이해합니다. 교육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교육계에 있지만 너무도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매일 공부하는데도 빈틈이 생깁니다. 그러니 보통의 분들은 더하겠지요. 그러니 누구를 탓하는 일은 하지 않으렵니다. 다만 위로하고 싶고 함께 가고 싶습니다. 함께 가지 않으면 끝까지 갈 수 없는 길입니다. 힘이 되어주세요. 우리 서로가. (양영기, “참된 엄마표란” 중에서)

 

최고의 사교육을 시키기 위해 이 학원 저 학원, 이 선생, 저 선생으로 우리 아이들을 돌리지만 정작 우리 어른들이 길러내는 것은 무정하고 이기적인 아이들이 아닌가 하는 슬픈 생각이 든다. 비록 부모는 최선을 다해 자식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려고 하지만 아이들은 따뜻함을 잃어버리고 사람을 대하는 기본도 잃어버린 채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그 부모를 그렇게 대할 것이다. 슬픈 역습이 시작되는 것이다. 인과응보다. 내 아이만 세상에서 제일로 키우려고 하는 욕심이 가져다준. (양영기, “사교육 함부로 끊지마라” 중에서)

 

소신이 소수의 신념에 속할 때 소신은 저항을 받는다. 소신을 소유한 개인은 자신의 소신이 정당하며 가치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 반면 소신이 다수의 신념에 속할 때는 사람들은 자신의 소신을 뚜렷이 인식하지 못한다. 별다른 저항을 받을 일이 없으며 고민하며 선택해야할 일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신을 보통 이데올로기라고 한다. 오늘날의 사교육은 이데올로기처럼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그것은 사교육이 선택의 대상이 아닌 필수품임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사교육을 선택할지는 고민해도 사교육을 할지 말지는 거의 고민하지 않는다. 이것이 익숙함이 가져다주는 다수의 선택의 비극이다. 그 비극은 이 시대의 부모와 어린 학생들의 몫이 된다. (양영기, “개천의 용이 사라진 이유” 중에서)

 

정말 문제는 걱정만 하고 자녀가 앞으로 배워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나. 정말 걱정해야 하는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문제를 걱정하는 나. 정말 불안한 것은, 정보가 부족하여 우리 아이가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망상을 하고 있는 나. 정말 안타까운 일은 아이에게 시키고 지시하는 행동이 내가 살고 있는 삶과는 반대되는 나. 완벽한 부모가 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벽한 자녀가 되는 일도 처음부터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문제라 생각되는 것들의 원천을 거꾸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자세. 문제라 여기는 것들을 앞으로 배워갈 수 있는 기회로 삼는 자세. 그 마음 하나입니다. (안순아, “완벽한 부모” 중에서)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은 화가 난 그 순간, 나를 보고 또 돌아보고 돌아보는 일이다. 시간이 많이 주어지던 주어지지 않던 그 돌아보는 일이 없으면 제대로 ‘사람’ 노릇하기 참 힘들다. 좋은 사람이어야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많이 배웠건 못 배웠건, 사회 경제적 지위와 상관없이, 전공과 상관없이, 화가 치밀어 오를 때 나를 돌아보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다. 특히 나 잘났다 계속 우겨대는 실수를 자식 앞에서 하지 않는 일은 너무나 힘들고 힘든 일이다. 휴우~ (안순아, “준비된 화” 중에서)

 

아이가 내 몸을 빌어 세상에 태어난 새로운 인격체라는 사실은 눈을 뜨고 보려 하지 않는다. 부모가 고치고 습관을 만들어 주어야만 이 세상 잘 살아갈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니다. 아이에게서 나오는 좋은 점을 발견해서 세상 안에 잘 섞여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모든 할 도리다. 그렇게 하면 아이의 나쁜 점이라 바라보았던 모든 것들이 소멸된다. 부모는 투자한 만큼 결과가 나오리라 생각하지만, 수많은 아이들은 영어와 수학을 괴물 보듯 하고 어른들의 강압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더 공부할 수 있는 아이들이 손을 놓는 경우가 확률적으로 더 많다. 수포자, 영포자가 그렇다. 이 안에서 그나마 살아남는 아이들은 더 많이 투자하고 더 많이 시킨 아이들이 아니라 거부감이 없는 아이들이다. (안순아, “인지력이 아니라 거부감이다” 중에서)

 

땀흘려 자녀와 놀아본 사람은 안다. 놀아준 부모는 매를 든 부모보다 더 막강한 힘을 가진자라는 것을. 숨이 넘어갈 듯 재밌게 놀아 본 아이들은 놀이 끝에 부모와 갖는 땀흘리는 감동적인 교감이 있다. 그 교감을 많이 느껴봤던 아이들은 부모 말을 안 들을 수 없다. 부모가 베풀고 놀아주고 즐거웠던 시간의 깊이만큼 아이도 똑같이 느끼기 때문에 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말을 잘 듣는다. 놀이는 그렇게 무서운 힘을 갖고 있다. 어린 시절만큼은 내 욕심으로 아이들의 순수한 발달을 짓밟는 무면허 교육을 해서는 안된다. 그리하지 않아도 사춘기- 싸울 날들 투성이다. (안순아, “말 잘 듣게 하는 방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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