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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걱정없는세상/회원의 이야기

문화제고백① 중학교 교사이자 두 아이 엄마의 고백...

이 글은 2012년 9월-10월 두달동안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선행교육금지법 제정을 위한 성찰과 고백의 광장, 시민 문화제>에서 낭독된 글입니다.



중학교 교사 김원미입니다.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저는 오늘도 어김없이 아이들을 깨워 등교 전쟁시키고 정신 없이 학교에 갔습니다. 아침 자습 시간의 저희 교실엔 제 아들처럼 겨우 등교 시간 몇 분 전에 일어나 밥도 안 먹고 온 아이들이 태반입니다. 대부분 수행 과제물이나 학원숙제를 하거나 아니면 주변 아이들과 떠들고 있습니다. 1교시, 항상 다른 시간 보다 가장 조용한 시간입니다. 집중을 해서 조용한 것이 아니라 아직 잠이 덜 깨서 몽롱하고 조용한 것입니다. 매일 매일이 이렇습니다. 문득, 젊다는 것 하나만으로 서툴고 어설픈 제 모습을 한없이 초롱한 눈망울로 바라봐 주었던 첫 부임지의 사랑스런 아이들이 생각납니다. 시간이 흐르며 그 아이들도 커서 어른이 되었고 저도 나이를 먹었습니다. 이젠 두근거림도 설렘도 없이 그저 그럴듯하게 아이들을 다루는 한 중년의 교사가 출근을 합니다.

 

 

어느 때부터였을까요? 핏기 없이 창백한 모습으로 표정이라곤 하나도 없는 얼굴로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 혹은 책상에 엎드린 채 내내 고개를 들지 않고 자는 척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 저는 알고 있습니다. 승철(이하 가명)이가 날마다 조는 이유를... 과학고를 가기 위해 7~8개의 학원을 전전하면서도 이젠 그것이 습관이 되어 불편함은 없다 말하지만 그 아이가 늘상 조는 것은 단지 잠이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매사에 까칠하다가도 시험 점수 1점 때문에, 울고 불고 하는 수영이가 결코 영악한 성격으로 태어나서가 아니라는 것을... 수업 내용을 알아 듣기 힘들고 도저히 진도를 따라 올 수 없어 일 년 내내 멍하게 엎드려 있어야 하는 진수는 머리가 나빠서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세히, 그리고 오래 바라보아야만 보이는 그들의 감춰진 보석 같은 가능성을 찾기보다 어쩌면 저는 피라밋의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라고 점수를 무기 삼아 경쟁을 부추기는 수업을 여태껏 해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한 마디가 어쩌면 그들을 지켜 주는 최후의 보루였을 지도 모르는데 기차가 정거장에 잠시 멈추었다 지나듯 잠시 그들 곁에 머물다 이내 그 곁을 스쳐 지나왔습니다. 관심을 달라고, 사랑을 달라고,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하는 아이들의 작은 목소리는 잘 듣지 못하고 행정업무에 머리를 박고 지내는 늘 바쁜 선생님이었습니다.


우리 교육의 흐름을 압도하는 세찬 경쟁의 물살 속에 아이들을 위로해 주지도 보호해 주지도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하거나 일개 교사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해 온 오랜 시간들.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더 이상 기쁨이 아니라 고역이고 노동이 되어 버린 이 거대한 모순 앞에 환경 탓이니 어쩔 수 없다며, 당장 바쁜 업무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 그냥 떠나 보냈던 수많은 아이들. 가장 순수한 호기심으로 빛나야할 인생의 한 때를 아이들은 오늘도 환기도 잘 안 되는 먼지투성이 교실에서 양계장의 닭처럼 꼼짝없이 앉아 꾸역꾸역 교과서 내용을 머리에 집어 넣고 별달리 특별할 것도 없는 급식시간을 기다립니다. 학교가 끝나도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마음껏 뛸 수 있는 운동장도, 선선한 바람에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주는 벤치도 아닙니다.


꿈을 꾼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기회조차 없이, 살인적인 공부량과 부모의 기대에 늘상 못 미치는 자신이 왜 그렇게 고통스러워야 하는지 그 신음하는 아이들의 내면을 들여다 본 적이 과연 있었는가? 함께 울어 준 적이 나는 과연 있었는가? 아니 그보다는 제대로 타오른 적도 없이 꺼져 버린 저의 초라한 열정을 먼저 탓해야 옳습니다. 내게서 잠시 머물며 나를 가르치고 다듬어 준 뒤 떠난 무수한 아이들의 이름 앞에 오늘 용서를 구합니다.


학벌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라고 말해 주지 못하고, 학생을 볼모로 삼는 모든 비교육적인 관행들에 맞서기는커녕 오히려 침묵에 더욱 길들여진 저 자신을 오늘 여기 내려 놓고 싶습니다. 그리고 꿈 꾸고 싶습니다. 모든 선생님들이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교실 구석 구석에서 인격적으로 깊이 만나, 입시 경쟁으로 황폐해진 교육의 밭을 다시 일구고, 가르침과 배움이 그 본래의 기쁨의 자리로 돌아와 다시는 공부 때문에 아이들이 죽어가지 않는 그런 나라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