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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걱정없는세상/회원의 이야기

[1차 토론회] 토론후기와 영어사교육 문제에 대한 저의 생각



저는 숭실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김승현이라고 합니다. 어제 토론회는 참 감사하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너무 답답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해갈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어떤 출구를 만들어가는데는 그저 무력하게만 느꼈었는데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과 같은 단체를 알게 되고 이병민 교수님과 같이 사회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전문가들이 올바른 진단과 해법 등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다는 사실이 저에게 무척 위로와 감동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병민 교수님의 발제를 통해 막연하게 문제의식으로 머물던 것들이 많이 정리 되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논찬에 참여하신 분들의 의견 또한 좋았습니다. 특히 이종규 기자님이 논찬 중에 지적하신 내용 중에 영어가 정말 중요하다고 모두가 말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실제적으로 영어가 얼마나 필요하고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가 부족하다는 지적과 유일한 사례로 제시하신 직업능력개발원의 보고서 내용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지적은 이병민 교수님의 발제 내용 중 실제적 필요와 상관없이 사회의 곳곳에 높은 장애물(줄세우기의 도구)로 영어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는 모두가 영어에 목을 매달 수밖에 없다는 내용과 맞물리면서 영어사교육 문제의 해법을 찾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토론회에서 아쉬웠던 점은 논찬 이후에 진행된 시민토론이었습니다. 토론에서는 영어는 흥미있게 공부할 수 있고 그렇게 공부했을 때 영어가 가져다주는 혜택은 무한하며 사교육에 흔들리거나 현혹되지 않고 그런 모델을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첫 토론회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어제 토론의 주제에는 다소 걸맞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영어에 대한 동기가 다양한 방식으로 형성되고 그렇게 영어 공부를 했을 때 개인의 경험의 폭과 삶이 풍부해질 수 있다는 것은 당연히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제 토론회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이런 방향이 공교육 체제에서 실현되는 것을 근본적으로 가로 막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해법을 묻는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영어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이며 어떻게 흥미있게 공부할 것이냐는 문제는 사교육 시장의 무차별적인 과장 광고에 속지 않기 위해 부모 등을 대상으로 해나가야 할 교육의 내용(김혜경 교수님의 논찬 내용에 있었던 대안)에 대한 각론으로 이야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지 영어사교육 해법 찾기 첫 토론회의 중점적인 사항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토론회를 마치고 들은 생각은 거칠었지만 이쯤에서 정리하고 영어사교육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한 총론에 대한 첫 토론회를 마치고 함께 기억했으면 하는 지점에 대해서 저의 생각을 조금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 ESL과 EFL 상황에 대한 오해 또는 의도된 외면

  저는 영어 공교육의 정상화에 대한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공교육에 있는 영어교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의 특수한 영어교육 환경(EFL) 속에서 국가 수준에서 책임지는 공교육이 정할 수 있는 목표가 무엇인지 재조정되어야하며 그랬을 때 개인적인 흥미와 필요에 의해서 영어를 공부하는 시스템과 방식 또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병민 교수님께서는 다른 강좌에서 10년 동안 공교육을 받았다고 하지만 EFL상황인 한국에서 영어에 노출될 수 있는 시간의 한계를 구체적으로 밝히시면서 절대로 우리나라의 영어 공교육이 부실하기 때문에 영어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10년을 공부해도 절대적인 한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ESL환경에서나 가능한 수준의 교수방법과 목표를 강요하는 것은 공교육을 통해서는 불가능하니 각자 알아서 공부하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ESL과 EFL상황의 차이에 대한 무지이거나 영어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집단의 의도된 외면입니다. 저는 후자가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병민 교수님이나 김혜영 교수님이 영어사교육 해법 찾기에 나서는 것은 자신의 보장된 기득권을 포기하고 반대의 길에 서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너무 감사했습니다.) 따라서 한국적 상황에서 필요한 영어 교육의 목표를 철학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재조정하는 것이 첫 출발이라고 생각하며 이것은 순탄한 토론의 과정이라기보다 치열한 싸움의 과정일 것입니다.

  제가 어제 토론에서 이종규 기자님이 제안한 실증적인 연구의 필요성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것은 영어를 실용적으로 접근해서 필요한 사람만 공부할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교육이 책임질 수 있는 영어 교육의 수준을 사회적으로 다시 도출하는 데 있어서 강력한 근거가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실제적 필요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이 교수님의 프로젝트가 거절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깝지만)를 통해 나오는 결과는 대입을 비롯하여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남용되고 있는 영어 줄세우기를 통한 경쟁방식에 문제제기를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또한 영어교육의 필요성과 목표에 대한 철학적인(또는 인문학적인) 성찰 또한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히 기억은 할 수 없지만 교육부에서 밝히고 있는 영어교육의 목표가 국제 경쟁력 강화이며 이에 복무하는 개인을 길러내기 위해 의사소통 중심의 영어교육이 필요하다는 식이라는 것은 영어에 대한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태도가 얼마나 빈곤한지를 반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국제중, 외고, 대입에서 시행되는 각종 특별전형 등의 폐해

  어제 토론에서 주요하게 지적되었던 문제였고 송인수 대표님이 올려주신 토론회 스케치에 잘 정리가 되어있는 것 같아서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 의사소통 중심 교육의 허상 - 다시 읽기교육으로 돌아가자!

  저는 위에서 말씀드린 한국의 영어교육 환경(EFL)이라는 뛰어넘을 수 없는 제약과 공교육은 수월성 교육이 아닌 기본 교양 교육이 중심이 되어야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현재 우리사회에서 영어공교육의 문제로 이야기되고 있는 것(10년이 지나도 말 한마디 못한다!)은 매우 부적절한 진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실제로 영어를 접하게 되는 것은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는 문자화되어있는 영어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영어공부가 개인에게 경험의 폭과 새로운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관심 있는 정보를 인터넷 등을 통해 문자로 읽게 되는 경우일 것입니다. 어제 토론회에서도 어떤 분은 평생 외국인을 만나서 영어를 사용해야할 일은 딱 한 번밖에 없었다고 말씀하셨으며 또 다른 분은 영어의 즐거움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영어를 공부한 후 자신이 읽을 수 있게 된 수많은 글들을 언급하셨습니다.

  읽기교육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과거와 같은 소위 딱딱한 문법번역식 교수법(GTM)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느낌 없이 다른 언어를 통해 어떤 정보나 문학작품 등에 접근할 수 있으며 그것은 우리말과는 다른 어떤 풍요로움을 삶에 더해줄 수 있다는 생각이 학생의 다양한 수준을 고려한 교육과정의 운영을 통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렇다면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주요한 도구는 읽기교육이며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준비해야하는 읽기수업은 문법번역식 교수법과 달리 교사의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읽기교육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교육과정에서 듣기 또는 말하기가 무시되어도 좋다는 주장 역시 아닙니다. 우리가 처한 제약 조건에서 듣기 또는 말하기 교육은 소개와 흥미의 유발을 통해 각 개인이 자신의 개인적인 시간을 낼 수 있도록(어쩌면 사교육을 통해서) 동기를 부여하는 정도가 목표여야지 공교육을 통해 말하고 듣는 능력을 두 언어가 사용가능한 수준(bilingual)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순진한 환상이거나 악의적인 왜곡입니다. 저는 그렇게까지 노력을 못해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제대로 된 영어교육을 위해 악조건 속에서도 노력하시는 영어선생님들의 의사소통중심 교육에도 이런 오해는 사실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말하기/듣기는 (주로 고교 졸업 후에) 개인적인 필요나 상황 속에서 동기가 부여되고 공교육 체계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요약을 하면 말하기/듣기 교육에 비해 읽기교육은 한국적인 제약조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우리나라 학생들이 전통적으로 아주 잘해왔던 그리고 잘할 수 있는 분야이며 읽기를 잘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영어를 통한 즐거움이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

□ 영어교사가 영어를 못해 공교육이 정상화되지 않는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의 연장선에서 영어공교육 정상화의 걸림돌이 영어교사의 의사소통능력 부족 때문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문제의 중심에 영어교사의 의사소통능력 부재가 있기 때문에 교사재교육을 위해 (다른 과목에 비해) 해외연수 등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는 것은 세금의 낭비입니다.(교사의 영어능력과 재교육의 필요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각종 연수 혜택이라는 당근을 주는 한편 영어교사에게 자신의 무능력을 자책하게 하는 방식으로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와 불안을 키우는 방식으로는 영어공교육의 문제가 풀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외국인에게 영어교육을 오랫동안 해왔던 미국인 교수와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 질문을 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영어교사는 개인적인 일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는 어느 정도 지장이 없지만 우리 역시 한국에서 영어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다온 뒤에 영어교사가 된 경우와 같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어민 수준의 영어활용능력을 갖는 것은 각종 연수 기회를 통한다할지라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영어교사에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고 있고 이 때문에 많은 영어교사들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의 대답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물론 원어민 수준의 영어활용능력을 갖는 것은 영어교사로서 중요한 덕목이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영어 교수-학습을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가 더 중요하며 그 이유에 따라서 원어민보다는 비록 영어능력이 떨어질지라도 모국어를 할 수 있고 학생의 학습동기, 개인적인 상황, 그곳의 문화 등을 이해하고 있는 당신과 같은 영어교사가 원어민보다 훨씬 훌륭한 영어선생님일 수 있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말을 영어권 국가로 이민온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ESL 교실에서는 원어민이 훌륭한 교사일 수 있지만 읽기 교육을 통해 다양한 문화 등의 컨텐츠를 접하는 것이 중심인 한국의 영어학습 상황에서는 원어민보다 한국인 영어교사가 훨씬 능력있는 교사일 수 있으며 원어민은 보조적인 역할을 하면 된다라는 이야기로 이해했습니다.

□ 학부모들의 막연한 불안감과 오해를 함께 극복하기 위한 노력

  이 문제에 대해서는 논찬자로 나서셨던 김혜영 교수님이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토론에서 얘기되었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영어를 통해 살아남을 수 있는 강자(승자)가 되는 것은 5%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좁은 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스개 소리였지만 슬픈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는 ‘아빠의 동의와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할머니의 경제력이 있어야 영어 교육을 제대로 시킬 수 있다’는 말이 현실을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봅니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나머지는 자신도 승자가 될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기대 속에서 들러리를 서며 사교육비에 쏟아 붓는 돈 때문에 온 가족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월수입이 500만원 정도 되는 부모가 한국에서는 도저히 부자들의 영어교육을 따라갈 수가 없어서 비교적 비용이 적게 드는 필리핀으로 이민을 결심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부모는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판단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살 길이 될 수는 있겠지만 우리 모두가 그리고 나보다 못한 이가 함께 살아남는 방법은 아닙니다.

  사교육 시장의 광고에 현혹되어서 영어교육에 대한 수많은 오해와 비효율적인 학습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비효율적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투자를 하면 경쟁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법은 영어를 둘러싼 경쟁적인 시스템을 걷어내는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혜영 교수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우리나라의 영어 광풍은 사교육 시장과 기득권층의 불순한 의도 속에서 많은 부분 과장되고 이런 과장은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증폭시키고 있는 것 또한 분명합니다. 이런 오해와 불안을 돌파하는 것은 개인적인 노력으로만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에서 진행한 이병민 교수님의 강좌나 시민토론자로 나와 주셨던 솔빛엄마와 같은 분들의 역할은 아주 중요한 것 같습니다. (며칠 뒤에 솔빛엄마께서는 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울산지부에서 ‘사교육에 휘둘리지 않기’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시더군요.)

  저는 [열린사회 은평시민회]라고 하는 지역시민단체의 회원이기도한데 제가 속한 이 단체에서는 학교를 다니는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만나서 사교육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어 볼 수 있는 자리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전문 강사를 통해 유럽형 교육 시스템은 어떤지 등에 대한 대안을 듣는 자리라기보다는 자녀를 키우면서 자신이 느끼는 갈등과 고민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함께 헤치고 나가자는 취지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런 노력들이 삶의 다양한 공간에서 진행되고 그것을 통해서 개인들이 어떤 순간 멈추어 서서 성찰하고 결단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그럴듯한 해법 또한 무용지물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송인수 대표님이 어느 인터뷰에서 말씀하신 이야기가 마음에 많이 남아있습니다. “사교육문제 접근은 유발요인과 해법 등을 따져 묻는 과학적 접근법도 있겠지만 저는 피해 당사자인 국민들이 나서는 실존적 접근에 무게를 싣고 싶습니다. 미국 노예제의 경우 힘 있는 상류층이 제도변화를 꺼릴 때 흑인과 양심 있는 백인들이 보이지 않는 길을 만들어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이 사교육 팽창으로 인한 피해자입니다. 국민의 목소리를 모아서 제도와 정책변화로 귀결해야 합니다. 더 이상 정치권에게 맡겨둔 채 해법이 나오기만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 마치며

  누가 글을 쓰라고 하면 어떻게 피해볼까만 궁리하는 저인데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과 어제의 토론회가 너무 반가워서 나름대로 열심히 정리해봤습니다. 어떤 역할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더 많은 위로와 힘도 얻고 작은 도움이라도 드리고 그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