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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교육/미니대학(2011)

[미니대학 2강 강의스케치] 조기숙: 한국 대학이 베끼지 않는...

 

한국대학이 베끼지 않는...

 

미니대학 2강 강의는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조기숙 교수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조기숙 교수님은 현실 정치에 활발히 참여하신 것으로도 유명하시지만, 두 아이를 키우면서 겪은 고민을 바탕으로 “왜 우리 아이들은 대학에만 가면 바보가 될까” 등의 교육 관련 저서를 집필하신 것으로도 유명하십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는 그간 등대지기학교의 명강사로 활약하시기도 했지요.(^^) 어떠한 질의에도 막힘없는 답변을 해주시던 조기숙 교수님의 현장강의를 스케치해드립니다.

 

*시사주간지 시사in에서 미니대학 6개 강좌를 지상중계합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1강 홍세화 선생님 강의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시사in 미니대학 중계 기사(2011.7.2. 제 198호) 보기 (클릭)

 

 

“한국대학이 베끼지 않은 미국대학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제목으로 「미니대학」제 2강 조기숙 교수님의 강의가 시작됐습니다. 이 제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부터 보여주셨는데, 바로 길거리에 흔히 볼 수 있는 도로 표지판입니다. 미국의 도로표지판은 고속도로 표지판은 미국 지도를, 주 도로표지판은 주 지도 모양을 띄고 있어 각 도로의 성격과 지역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것을 그대로 베껴오면서 우리나라의 특성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모양만 그대로 베껴왔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대학교육 역시 미국대학의 철학과 정신은 베껴오지 못하고 외형만 따라했을 뿐이라는 것을 이후 강의시간 내내 여실히 보여주셨습니다.

 

미국대학의 철학을 크게 두 가지로 꼽으면 하나는 형평성이고 또 하나는 학생에 대한 인권 존중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 요소가 결합되어 대학이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미국식 교육개혁의 모델인 것처럼 평가되고 있는 서남표 총장의 KAIST대학은 전혀 미국식이 아니라 한국식이라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KAIST대학에서 시행하고 있는 성적순에 따라 차등적 등록금을 부과하는 징벌적 등록금제는 미국대학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제도라는 것입니다. 상대평가를 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위 그룹에 속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학생들에게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제시하는 것을 인권침해로 보기 때문에 상대평가를 하지 않고, 더구나 그것을 기준으로 등록금을 차등 부가하는 것과 같은 발상은 미국대학의 철학에서는 허용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미국대학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이지만, 교육에 관한한 사회주의적이라 할 정도로 상아탑 정신에 투철하다고 강조합니다. 학부에서는 기초인문학 및 순수학문과 응용학문을 서로 경쟁시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미국에서도 직업적 선호가 높은 의학, 법학, 경영학은 학부에 두지 않고 주로 대학원에 두고 있고, 우리나라가 비슷하게 따라하고는 있지만, 그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성적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전공 특성에 맞는 활동을 입학전형요소에서 가장 중시한다는 것입니다. 의대는 봉사활동, 경영대학원은 기업에서 일해 본 경험이라는 것이지요.

 

미국대학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 눈여겨 볼 부분은, 요즘 우리나라가 비싼 대학등록금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는데, 이 등록금제도도 미국을 따라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미국은 주립대가 70%, 사립대가 30%를 차지하고 있는데, 주립대는 물론 정부 지원 부담이 개인 부담보다 월등히 많고, 사립대라 할지라도 일정 소득 이하 저소득층이면 장학금과 생활비의 많은 부분을 제공받으며, 이와 같은 부모의 재산에 따른 장학혜택과 교외장학금제도 등이 워낙 잘 갖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학생의 능력과 형편에 따라 어떤 대학이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정부와 대학의 지원이 그물망처럼 갖춰져 있어서 돈이 없어 대학 진학을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또 하나 한국대학에서 따라하고 싶어 하는 미국의 기여 입학제는 한국에서 구상하는 것처럼 20~30억 씩 기부금을 내고 자녀를 입학시키는 그런 제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레가시(legacy)제도라고 하여 거액이 아니라 하더라도 일정한 금액을 해마다 오랜 기간 기부한 사람들에게 기회가 될 때 혜택을 주는 제도가 있지만 입학을 목적으로 기부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언급하시기도 했습니다.

 

 

조교수님은 미국대학에서 우리나라가 배우지 못한 것은 바로 대학의 사회적 책임임을 강조하고, 사회적 책임은 곧 공공성 강화로 나타나는 것이므로 우리나라와 같이 사립대학 비중이 87%에 이르는 상황에서는 국공립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일각에서 제안하고 있는 ‘국공립대 네트워크’방안 및 부실대학의 국공립화는 기본적으로 추진해야 할 방향으로 제시했습니다. 미국대학을 베껴 온 우리 대학이 미국대학의 철학까지 깊이 이해한다면 국공립대 네트워크 방안이 결코 급진적이지 않다는 점을 역설했습니다. 그 밖에 우리나라 대학은 고교 졸업생 80% 이상이 진학하는 현실에서 상위 학생들을 위한 교육과정이 아니라 학생들 개별에 맞춘 맞춤형 교육이 준비되지 않았다며 제도만 받을 것이 아니라 후속조치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오늘 강의를 통해 경쟁주의적 미국교육만을 상상했던 통념을 여지없이 깨트리며 대학교육에 대한 정부의 책무성, 대학이 지닌 사회적 책임이 철저한 미국대학의 모습을 새롭게 살펴볼 기회가 되었습니다. 다음 세 번째 강의는 하버드대학 등 세계의 유수 대학을 벤치마킹하여 교양인문대학을 설립한 경희대 후마니타스 대학의 설립 추진 위원이셨던 경희 사이버대 안병진 교수님 강의가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