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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교육/수학사교육 정면승부(2011)

[5강 강의스케치] 수학, 내 친애하는 공포여...

사회를 맡은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는 최수일 선생을 가리켜 “한국 수학교육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소개했다. 최 선생은 수학교육의 발전과 수학의 대중화를 목적으로 하는 수학교사들의 연구단체인 ‘전국수학교사모임’((구) 수학사랑)의 결성과 발전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수학교육 정책 부문의 전문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최 선생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수학교사답게 수식으로 표현했다. “10+10=0” 처음 10년의 교사 생활 후 그는 ‘전국수학교사모임’을 결성했고, 10년을 더 교사로 살았다. 하지만 공허했다. 휴직을 감행했다. 제로베이스.. 맨땅에서 그는 다시 시작했다. 그로부터 3년 후 다시 교직으로 돌아온 그의 모습은 달라져 있었다. 열심히 가르치는 부지런한 교사에서 할 수만 있으면 가르치지 않는 게으른 교사로..

‘가르치지 않는 교사’.. 최 선생의 교육철학 제 1조다. 그는 가르치지 않는다. 자료화면에서 보았듯이 그가 수업하는 교실의 삼면을 채우고 있는 칠판들은 그의 글씨가 아닌 학생들의 글씨로 가득하고 수업은 학생들이 이끌어 간다. 그는 이 수업을 ‘배움의 공동체’라고 불렀다.

선생은 이번 강의에 앞서 ‘사전 과제’를 내주었고, 무려 35명의 착실한 응답자가 있었다. 그는 학생(?)들이 제출한 답안들을 보여주었다. 이런 답도, 저런 답도 있었고, 게 중에는 푸념도 섞여있었다. 도대체 답이 뭘까? 그 문제들을 푸느라 끙끙댔던 이들은 허탈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과제를 내준 목적이 학생에게 답을 찾기 위한 치열한 고민의 과정을 경험케 하려는 것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이미 이 수업의 피동적 객체가 아닌 능동적 주체가 되어 있었다. ‘이럴 수가..? 수학시간 맞아?’ 그가 말하는 ‘배움의 공동체’는 ‘바로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사건이었다.

오늘 최 선생을 이 자리에 서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아마도 일본의 교육학자인 사토마나부인 듯하다. 선생은 강의를 하는 동안 사토마나부가 지은 『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손우정 외 역, 2009, 북코리아)을 비롯하여 로버트 & 미셸 루트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박종성 역, 2007, 에코의 서재)에 이르기까지 무려 14권에 달하는 책들을 소개했다. 이 책들은 오늘날 교육 현장의 심각성을 정확히 보게 해주는 것은 물론 문제들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는 수학공부에 있어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으로 ‘경청’하지 않음과 ‘사고’하지 않음을 들었다. 이들이 갖고 있는 지식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관계를 맺는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은 세계 꼴찌 수준이며,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바보가 되어간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학교를 ‘배움의 공동체’로 가꾸어가는 것이다. 사토마나부의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손우정 역, 2006, 에듀케어)라는 책은 우리나라의 학교들을 ‘배움의 공동체’로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 동기와 방법론을 제공한 것 같다. 실제로 그는 우리나라 혁신학교의 대부분을 컨설팅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 열기가 좀 사그라진 것 같은데, 한 때 우리나라 부모들이 유태인의 자녀 교육에 폭발적인 관심을 기울였던 적이 있었다. 많은 부모들이 ‘유태인의 자녀 교육 따라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참 대단한 열심들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배워야 할 점을 빠뜨린 게 분명하다. 유태인 엄마와 한국인 엄마를 대조해놓은 자료 ‘주이시 맘 VS 코리안 맘’이 제기한 결론 가운데 하나는 이러하다. “유태인은 자신의 자녀가 ‘남과 다른 개성적인 인재로 자라기’를 바라지만 우리는 자녀가 ‘남보다 앞서는 1등이 되기’를 바란다.” 이를 두고 유태인 자녀 교육의 ‘한국적’ 적용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대략난감’이란 용어는 이럴 때 쓰라는 게 아닐까. 유엔거버넌스센터에서 일하는 한국인 김정태 홍보실장이 쓴 책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를 한 줄로 줄이면 이렇다. "Not the Best, But the Only!"

목적과 본질을 혼동할 때 ‘주객전도’의 양상이 나타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교육이라고 예외가 될 순 없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푸는 것(Solving Problem)에만 관심을 갖고 있지 문제 푸는 방법에 문제가 있음(The Problem of Solving)을 간과하는 것 같다.

최 선생의 말에 따르면, 수학공부는 공식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원리를 터득하는 것이고, 답을 맞히는 게 아니라 풀이의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 공부의 목적이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수학적 사고력과 창의성이 발달하기 때문이다. 오다 도시히로가 쓰고 박인용이 옮긴 『진짜 수학』(플러스예감)이라는 책은 수학을 못하는 아이의 특성 7가지를 이렇게 말한다. ① 융통성이 없다. ② 일상생활의 감각에만 의존한다. ③ 해법은 하나라고 생각한다. ④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한다. ⑤ 실패를 두려워한다. ⑥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다. ⑦ 푸는 데 집중하지 못한다. 남 얘기 같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수학공부를 해야 할 것인가? 바람직한 수학학습법은? 선생은 이를 6가지로 정리했다.
① 고생해서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오래 가며 자기 것이 된다.(쉬운 공부는 없다.)
② 한 번에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시간을 두고 여러 번 시도한다.
③ 답을 내는 것에 급급하지 말고 다양성에 무게를 두어라.(틀려도 좋으니 이렇게도 풀어보고 저렇게도 풀어보라는 말이다.)
④ 친구와 아이디어를 공유하되 친구의 생각을 끌어낼 생각을 하라.
⑤ 족집게 강의는 없다. 스스로 요약 정리해야만 다른 사람(친구, 교사)의 도움이 진짜 도움이 된다.
⑥ 모르는 내용이 생겼을 경우에만 남의 도움을 요청한다.. 지당하신 말씀. 한 마디로 ‘자기주도학습’을 하란 얘기다. 덧붙여 그는 ‘하루 2시간 넘는 사교육은 추가적인 성적 향상 효과가 미미’하고 ‘자기주도학습이 사교육보다 수능점수 향상에 효과적’이라는 한국개발원(KDI) 김희삼 연구원의 최근 연구 논문 결과(2011년 3월 28일)를 보여주었다.

그는 수학교과서와 교육과정의 문제점도 신랄하게 지적했다. 그것은 첫째, 교과서가 너무 친절하다는 점. 힌트와 풀이과정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스스로 ‘사고’할 기회를 박탈시킨다. 게다가 가상 데이터를 사용한 형식적 도입과 주객이 바뀐 탐구활동이 수학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리고, 알고리즘을 강요하는 유제풀이는 학생을 단순히 문제 푸는 기계로 전락시킨다. 이런 교과서를 과감히 버려야 한다. 둘째, 학문적 위계가 강하게 남아있어서 한 번 놓치면 따라잡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수업 시간에 비해 교육과정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러면 사고를 (연습)시킬 여유가 없다. 셋째, 의미와 맥락이 없는 단순계산문제가 지루하게 나열되어 있다. 사고 능력이 죽을 수밖에 없다.

교사들의 수업에도 문제가 많았다. 학생의 여건은 살피지 않고 교사 혼자 진행하는 ‘나홀로 50분’(수업), ‘클릭수업’(‘아이스크림’과 같이 사용하기 편리한 다양한 자료들이 완비된 프로그램 활용.. 교사는 그저 클릭만 하면 된다), ’공부는 교사가 하고 학생은 그저 따라 하기만‘ 하는 수업,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진도 빨리 나가기, 선행학습을 전제로 하여 수업을 조직하고 상위반에서는 어려운 문제만 풀게 하는 수준별 수업 등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다. 교사가 제공하는 ’활동지‘ 역시 문제다. 스스로 고민해서 해결해야 할 것을 왜 제공하는지.. 학생들은 누구나 스스로 해보려는 욕구가 내재되어 있다. 하지만 현행 교육은 이를 무시하거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수학을 어려워하는 이유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것은 스스로 해볼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왜 수학을 어려워할까?』(안승철, 궁리)라는 책과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Holt, 공양희 외 역, 2007, 아침이슬)라는 책이 그 이유를 말해준다.

데보라 마이어(Deborah Meier)가 쓴 『The POWER OF THEIR IDEAS』라는 책은 ‘게으른 수학교사’를 예찬한다. 속칭 ‘수학학습 총량 보존의 법칙’에 따르면, 교사의 학습과 학생의 학습은 서로 반비례하며 이 둘의 합은 일정하다. 교사의 가르침이 적을수록 학생은 더 많이 학습한다. 여기서 ‘학습’은 학생이 스스로 터득한 것을 말한다. 최 선생은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인용했다. "teaching is mostly listening and learning is mostly telling"(“가르치는 것은 듣는 것이고, 아이들을 말하게 만들어야 한다.(제발 가르치려고 하지 마라)”), "learners first anf teachers second"(“학생을 앞에 세우고 선생은 그 뒤로 가라”) 이는 자신의 가르침의 철학이기도 하다.

수학교사 최수일의 가르침의 철학을 들었다. 그는 2004년부터 자신은 가르치지 않는다고 했다. ‘무지한 스승’-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가 지은 책 제목(양창렬 옮김, 2008, 궁리)-이야말로 최고의 스승이라고 했다. 교실에 앉아 있는 30명의 머리를 썩히는 일은 직무유기라고 했다. 또 하나는 ‘꼴찌도 행복한 교실’을 만드는 것이 꿈이고, 이를 위해서는 독일의 경우처럼 예습을 금지해야 한다고 했다.(『독일교육이야기-꼴찌도 행복한 교실』(박성숙, 2010, 21세기북스) 중에서) 가슴 한 구석에서 의문이 고개를 쳐든다. 가르치지 않고도 가르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의문이 풀리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최 선생은 ‘배움의 공동체’라고 이름 붙인 자신의 교육현장을 짤막하게 소개했다. 2004년부터 해오고 있는 새로운 방식들.. 이를테면, 교과서 버리고, 풀이와 답 버리고, 그룹 활동을 통한 학생들이 발표하게 하고, 자신은 가르치지 않기.. 가르침 없는 가르침. 말장난이 아니었다. ‘배움의 공동체’가 그것을 실현하고 있었다. 나아가 그는 모든 문제를 초등학교 때 했던 방식으로 풀기를 권장한다. 초등학생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수학하기.. Try and error! 수학적 사고는 거듭되는 시행착오를 먹고 자라는 나무다.

수학’하면 떠오르는 근원적 불만일 수도 있겠다. 도대체 수학을 배우는 이유가 뭘까? 그가 마지막으로 소개한 책 『생각의 탄생』에는 관찰에서 통합에 이르기까지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13가지 단계가 나온다. 최 선생에 따르면 이것을 가장 잘 가르칠 수 있는 게 수학이다. 그런데 현행 수학교육이 “이것을 안 가르치고 ‘학문적 위계’만 가르치고 있다”고 그는 이의를 제기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얘긴가? 그는 “순수수학과 교과목으로서의 수학을 철저히 분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페리와 무어가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단다. “한 명의 수학교사를 키워내려다 만 명이 희생되고, 한 명의 수학자를 키워내려다 천만 명이 희생된다.” 이 대목에서 느껴지는 야릇한 흥분과 쾌감은 나 또한 그 많은 희생자들 중 하나였음을 방증한다.

어렵고 재미없다고 느끼는 수학을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라는 게 교과부의 주문이란다. 하지만 최 선생은 말한다. “재미있는 수학? 그런 건 없다.” 그가 가르치고 싶은 수학은 재미있는 수학이 아니다. 쓸모 있는 수학, 꼭 필요한 수학이다. 그래서 공부하면 할수록 창조적인 생각과 깊은 통찰력을 갖게 되는 수학이다. 이를 위해 수학교과서도 버리고 ‘배움의 공동체’를 가꾸며 ‘가르침 없이 가르치는’ 이상한 수학교사 최수일. 난 그를 ‘한국 수학교육의 이단아’라고 부르련다.

 

강의 후 질의응답 시간.. 시간이 많이 흐른 관계로 짧은 시간 동안 5개의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간략히 소개한다.

1. 그래도 입시환경을 고려하여 효율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를테면, 연산 연습 같은 건 해두어야 하지 않을까?수능 30문제 푸는 데 100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많은 학생들이 문제를 다 못 푸는 것은 연산 때문이 아니다. 연산이 안 돼서 못 푸는 게 아니라 사고가 안 되니까 못 푸는 거다. 사고가 되면 연산할 게 줄어든다.

2. 수학적 사고를 증진시키는 방법이 있나?친구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공부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가능하면 답 없이, 풀이과정 보지 않고 고민하여 푼 다음, “넌 어떻게 풀었니?” 묻고, 가르치면서 공부가 된다. 아이를 선생으로 만들어라!

3. 선행학습에 대한 선생의 분명한 입장이 궁금하다.남의 도움을 받는 것을 전혀 하지 않을 순 없다. 다만 충분히 고민한 후, 꼭 필요한 경우, 최후의 순간에 도움을 요청하게 하라. 그리고 그 이후에는 역시 스스로 (고민하며_하는 것이 중요하다.

4. 수학교육을 위해 부모가 해야 할 일은?부모의 생각을 강요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말고 아이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어라. (숙제) 도와주지 마라. 힘들어도 자기 힘으로 숙제하려고 애쓰는 아이가 (수학도) 잘 하게 된다. (이렇게 저렇게)하라!”고 말하지 말고 “뭐 할래?”라고 물어라.

5. 생각하는 수학?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수학? 쉽지 않은데..?연산 자체가 즐거운 것은 아니다. 사고하는 과정이 있기에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연산’이 목표가 될 순 없는 거다. 그건 도구일 뿐이다..

 

 
 
 수원 영통에서 작고 건강한 교회를 일구는 목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