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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교육/행복한 진로학교(1~2기)

[진로6강 BEST 소감문] 만감이 교차하는 자화상을 들여다 보며... (라일락)



진로학교 첫번째 소감문을 씁니다. 6강까지 수강하는 내내 저는 마음을 두드리는 새로운 질문들을 자녀에게 적용하기보다 제 자신에게 계속 묻고 자서전을 읽는 심정으로 제 삶의 여정에 끝나지 않는 요구들을 담담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어제 들은 6강을 시작으로 소감문을 정리하면서 귀한 강의들을 제 속에 잘 내면화하고 삶의 관점과 행동반경에 발전적 변화가 있길 바랍니다.

임영신님을 본 첫 느낌은(생방) 가수 권진원님과 닮은, 선이 가늘고 여성적인 미모에 독특한 강한 흡인력과  보이는게 다가 아닌... 매력을 느끼며 인생은 진정 불공평한 것인가? ~~~하는 씁쓸함이었습니다. ㅎㅎ

저런 외모와 분위기에다 공정여행가라는 남다른 풍성한 인생여정의 전문 이력이... 듣고 보니 저와 나이도 같은게 아닌가요 애도 셋이고 남편도 훌륭하시고... 강의가 진행되면서 약간 질투와 시기심이 불쑥 들어설 뻔 한 저의 부끄러운 반응에 스스로 놀라면서 지난 20대를 떠올리고 30대를 돌아보았습니다.        

저는 인생이 여행이고 나의 정체성은 "나그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전 40이 넘도록 해외여행은 한번도 못해 보았습니다. 국내여행도 새로운 만남을 전제로 하는 여행은 다섯 손가락에 들고 관광 역시 몇 차례일 뿐입니다.

20대 때 해외여행을 갈 기회가 여러 번이었지만 부모님께서 너무나 완강히 반대하시고 제 인생 전체에 대한 걱정으로 여기셔서(제가 일단 떠나면 메니아가 될까봐^^;;) 그 비밀한 걱정이 저도 부담되어 뛰쳐 나가진 못했습니다. 졸업후에는 현장에서 진로를 찾으라고 해외에 보내시려고 까지 했지만 제 모험심은 다시 안정감에 묶여서 여행은 제 인생과 넘 먼 얘기가 되어버렸지요.

결혼 후에도 기회는 있었지만 여행의 초대에 계속 사양거절...(애셋이라는 부담...물론 재정도)ㅎㅎ 작년에는 여행가 경력이 있는 후배가 애셋두고 함께 주부휴가 다녀오자고 했지만 간이 콩알만해진 저로서는 아이들을 누군가 맡아준다면 모를까 절대 불가라고 오히려 설득했지요. 남편은 뒷걱정말고 다녀오라지만 ㅎㅎ 친정부모님과 애들 고생시킬 생각에 엄두가 안 나더군요.

일상이 흔들리는 것이 긴장되고 모험을 저지른 후 뒷수습할 힘겨움이 걱정되고 미리 채워버리는 뒤죽박죽 그림은 소심함을 더 강화시키곤 했습니다. 도전이라는 것과 원래 안 친했지만 도전은 남편 것, 애들이 새도전을 원하면 지지해주는 것 정도로 내 몫은 후방노릇하는거 잘 하자~였지요.

시민운동활동가로서 열심히 9년을 살아왔고 인생의 전환점에서 삶의 본질을 흔드는 질문에 직면하고 용기있는 선택을 한 임영신강사님의 10여년의 여행 여정은 하나님의 선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선물은 하나님 앞에 손을 내미는 자가 받고 풀어 볼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한비야씨의 강의를 들었으면 책보다야 간단하게 재미났을지 모르지만(그분은 멋있는 사람이지만 전 그분의 책을 열지는 않았을 겁니다.) 임영신님의 당당함과 수려한 말솜씨가 좀 거부감이 들더라도 ^^:; 갠적으로 같이 울고 웃고 평화의 희망을 꿈꿀수 있었던 이유는 그 분 삶의 겸허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의 나눔의 근거는 자신의 탁월한 실력이나 주도면밀한 계획-사업성-능력이나오랜 꿈의 결과물이 아니라고 합니다.

성장기에 꿈이 없었다는 약한자의 음울한 배경이나 30에 이르도록 해외여행을 못해 보고 아시아에 문외한이었다는 경험과 재정적 지원이 가시적이지 않은 조건이나 전문가로서 입지를 다진 홀가분한 여행전문가가 아닌 세 아이의 엄마이고 단지 가족들이 걱정어린 지지를 해주고 있다는 현실이 생명력 있는 나눔이었습니다.

주변에 보면 20대에 평화운동을 하러 방학동안에 떠나는 청년들, 30대에 시간과 재정을 감수하고 심플하게 떠났다 오는 싱글들을 보면  격려를 하는 입장이지만 제 현실은 때때로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에 씁쓸한 심정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 아이들이 그런 선배의 경험을 따라 가면 좋겠다 막연한 기대를 했었는데 임영신님의 30이 넘어서 모험으로 떠난 인생을 듣자니 지금 이미 시작되어 이루어지고 있는 그 평화의 꿈이 더욱 실감나고여행이라는 것이 오감이 즐거운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관계에서 빚어질 때 삶의 한 부분으로 엮어진다는 사실이 내 얘기처럼 설레이고 좋았습니다. 

책이나 전해들은 얘기로 평화여행을 알았다면 또하나의 좋은 것으로 여기고 말았을 텐데 강사님께 직접 들으니 우리나라가 정말 경제적으로나 사회의식이 많이 성숙해졌구나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더 좋은 세상으로 가는 희망을 꿈꾸기에 좀더 열렸구나 감사한 맘이 들었습니다.          

전 20대에는 아프리카와 아랍을 포함한 아시아권과 동유럽, 중앙아시아에 대해 관심을갖기 시작했었고 분쟁지역이거나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지역에 대해 걱정하는 맘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결혼 후에는 북한과 팔레스타인에 대해 계속 관심을 두고는 있었지만 맘 뿐이었고 mbc에서 한밤중에 방영하는 <W> 때문에 울기도 많이 울고 사회적으로 빚진자의 정체를 잊지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  W라는 알파벳은 weak(약자), woman(여성) 등 주로 세상(world)의 억압받는 사람들을 주제로 다루었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잠시나마 이 세상에 고통과 슬픔, 악이 만연해 있다는 것을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얼마전에 종영한 것에 대해 넘 미안하고 서명운동이라도 해서 살렸어야 하는데 이것 역시 생각에 머물고 끝나 버렸습니다.

임영신님의 강의를 들으며 한 시민운동가가 "평화공정운동가"라는 정체성을 갖은 것이 그 시작은 미약했지만 얼마나 현세상이 요구하는 절박한 일인가 가슴 절절했고 뭐든지 20년 앞서는 일본이 "PEACEBAOT"를 운항하는 것이 얼마나 발전하고 성숙한 면모인가 부럽기도 했습니다.

전 성장기를 나름 감성적이고 자유롭게 지냈고 사회적으로 연약했습니다. 근거없는 낙천주의자였고 형이상학적인 것을 고상하게 여기고 몸이 고단한 것은 겁내고 가슴과 머리의 활동만 좋아했습니다. 대학까지 줄곧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는 만큼 했으니 사실 매우 게으르고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도전해 볼 용기도 없었습니다. 몸도 둔하고 불편에 예민하고 모험에 따르는 걸림돌에 늘 주저 앉은 것 같습니다. 

제 아이들을 생각할 때 미안하지만 저보다 훌륭하기를 바라는 면이 있다면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미리 경험을 많이 해서 사소한 불편이나 불안요소에 흔들리지 않고 담담하며 생각하는 방향이나 방법이 넓고 명분이 있고 늘 겸허하고 용감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물론 늘 관계지향적이며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맘이 깊기를 기도합니다. 저의 이런 바람들은 제가 사는 인생여정을 나그네처럼 살아야한다는 생각에서 나옵니다. 이 땅에서 호의호식하며 이룰 것을 다 가져야 한다는 야망이 있다면 지금 저의 삶은 참 더없이 지치고 허망할 것 같습니다.

제 아이들이 무엇을 하든 이 땅의 깨어짐을 잊지 않고 가난과 질병과 억압의 분쟁 속에서 희망를 꿈꾸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라일락님 가족사진입니다. ^^ )

그것을 위해 제가 가르치는 학생에게뿐 아니라 삼형제와도 지속적으로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지구촌의 빚진자의 정체성을 상기시키며 평화를 지키고 만들어 가는 삶에 대한 관심이 흘러가게 해야겠습니다. 엄청난 양의 이야기를 쉴새없이 듣고 강사와 함께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열혈자원봉사자 무급 상근자anny님 말고는 그렇게 오타 없이 스페이스바 없이 좔좔좔 (초)속달변이신 분은 처음이다 감탄했습니다.^^;;

연약한 몸짓으로 평화를 일구는 임영신님의 개척하신 좁은 길을 따라 가고 싶습니다. 열심히 다고진 걸음으로 한걸음한걸음 내딛는 평화를 위한 공정여행에 우리 사회가 동참하며 국가적 체질도 더욱 건강해지고 OECD국가의 정체성이 선하게 성숙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