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안실천/[사연읽기]수기공모전 당선작

[우수③] “한국에서 어떻게 애들을 공부시키려고 그래?” (백선숙)

본 글은 2010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주관한 
"아깝다 학원비" 단행본 출판 기념 국민 수기 공모전에 우수작으로 당선된 글입니다. 



“한국에서 어떻게 애들을 공부시키려고 그래?”

 

백선숙 (44세, 대학강사, 서울 중랑구)


“엄마~기쁜 소식 하나 있어요~ 저 사회시험 이번엔 정말 잘 봤어요! 75점이나 받았어요” 매일 하루에 한번씩 직장으로 전화를 걸어, 기쁘거나 안 좋은 이런저런 학교일과를 털어놓는 큰아이, 오늘은 여느 때 보다 훨씬 즐겁고 행복해 보이는 목소리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직장동료들은 한껏 들떠서 기뻐하는 내 모습에 우리애가 전교1등이라도 한 줄 알았다며 웃어댄다. 아무것도 아닌 일, 누군가 에겐 “어째서 75점밖에 못 받았니?” 하며 핀잔 받을지도 모를 일이 우리 아이에게는 너무나 당당하고 기쁜 일이 될 수 있었던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해 10월, 3년반 넘는 미국에서의 직장연수과정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의 일이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귀국준비를 하고 있을 때부터 이미 우리의 한국행을 말리며 한마디씩 했었다. “한국에서 어떻게 애들 공부 시킬려고? 그냥 미국에 살어, 일부러 교육땜에 이민 못가서 난리들인데...”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은 교육에 관한 한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지옥 같은 곳, 무서운 고국, 그래서 돌아가고 싶어도 못 가는 곳이 돼 버린 지 오래였다. 그런 지옥 같은 한국에 돌아왔을 때, 불과 3년 반을 떠나있었던 것 뿐 인데도 내 눈에 비친 우리나라는 모든 부모들이 애들 교육 때문에 다 미쳐 있는 것 같았다. 이젠 더 어리고 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까지 죄다 영어유치원에 수학학원에 내몰고.. 그러면서도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더욱 더 불행해 보이는 모습들뿐이었다.

가까이 살던, 대학 동창 하나는 조금 똑똑하다 싶은 초등학교 6학년 큰애때문에 대치동으로 이사를 가고 없었다. 나중에 만난 자리에서 하는 말 “예~ 대치동 오길 너무 잘했어. 난 그동안 너무 무지하게 애들 키웠던 것 같애..너도 생각 잘 해봐. 기왕 여기 올 거면 아주 일찍부터 와라~ 나만 해도 좀 늦었어.” 그 이후로 들려온 소식은 그 친구 아이는 이미 중학교1,2학년 과정을 겨울방학때 끝냈다고 했다. 또 한 후배는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는 3살짜리 딸애를 월 백만원 더 드는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것도 부족해서 “언니, 여기서 배우는 영어로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애, 내년쯤엔 미국 있는 친척집에 보내서 제대로 영어 배우게 해야 할까 봐”

귀국해서 만난 친구들, 친척들을 대부분 그런 모습들뿐이었다. 그들은 내게 아직 여기 실정을 잘 몰라서 그러고 있으려니 하면서 홍수 같은 사교육 정보들을 계속 쏟아냈다. 가령 초등학교때 학습기초는 확실히 잡아야 하고 그럴려면 이런 학원을 보내라는 둥 미국에서 익힌 영어 안 잊어버릴려면 그런 애들만 다니는 고액 OO원어민 학원은 필수라는 둥 초등학교 때부터 놀기 시작하면 나중에 바닥을 기니까 빈틈없이 학습계획을 세워야 할거라는 둥... 그런데 그 숨막히는 생활은, 마냥 뛰놀면서도 배울거 다 배우고 행복해했던 미국에서의 애들을 떠올리면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슬프고 우울하기만 했다.

그렇게 고국의 친구들이 보고파서 왔는데도 아무와도 만날 수 없는 외롭던 시간은 계속되었다. 그들을 설득할 어떤 명분도, 내 아이를 그런 노예 같은 생활에서 자유롭게 키울 수 있다는 어떤 대안도 확신도 없이 방황하면서 보내던 길고 추웠던 겨울은 끝이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때였으리라. 속이 타도록 손주들 그리워하셨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품에 안겨 벅찬 기쁨과 행복감에 빠져있는,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한 10살, 6살 두 아이들을 뒤로 하고 우리부부는 어느새 한국행에 대한 후회와 자책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겨울이 길면 봄은 멀지 않다고 했던가..우연히 서점에서 나는 희망의 박씨를 물고 온 제비 한 마리를 만날 수 있었다. ‘굿바이사교육’이란 책 한권, 거기에서 시작된 사교육걱정없는 세상과의 인연 그리고 잊지 못할 등대지기학교.. 이 땅의 올바른 교육을 걱정하고 우리 아이들이 살게 될 행복한 나라를 꿈꾸는 사람들의 실체를 확인하면서 벅찬 감동과 위로의 눈물을 흘렸고 그렇게 우리는 지난 봄, 희망의 박씨를 가슴에 심으며 겨울을 끝내고 있었다.

과학에 유난히 흥미가 많은 큰아이 민기에게 유독 어렵고 생소한 사회과목, 그 아이가 오늘 기뻐하는 건 점수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 동안 자기 혼자 모르는 용어도 정리해보고 교과서도 여러 번 읽어보고 했던 성과, 그 성취감에 기뻤던 것이다. 아직 모든 과목에서 점수로만 본다면 부족하기 이를 데 없지만 난 이제 행복감을 갖고 여유롭게 그 아이를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그에게는 아직 무궁무진한 호기심과 즐거움에 가득 찬 지적 욕구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가 초조해하고 조급해 하지만 않는다면 그 아이는 지금 뒤떨어지고 있는 게 아니라 큰 건물을 짓기 위한 기초공사중이고 질주를 하기 위한 준비운동을 하고 있는 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등대지기 학교, 박재원 선생님 강의중에서).

아직 한글도 잘 모르지만 늘 자기만의 행복한 그림 그리기에 열중인 둘째 범기도, 가끔씩 깜짝 놀랄 만큼 창의적인 그림을 그려내는 걸 보면서 ‘가르친다고 배움을 일어나게 하는 건 아니다. 공부를 즐길 수 있게 하라’(김성천 선생님의 강의중에서)는 등대지기학교가 가르쳐준 교훈을 떠올리게 된다. 굳이 억지로 주입해서 학습해야 하는 글자 몇 개 때문에 그 아이의 자유로운 창작과 즐거운 상상의 시간을 뺏고 싶지 않다.

오늘 하루도 기쁨과 행복에 찬 아이들의 전화 목소리를 들으며 즐거이 직장에서의 일을 마무리하고 있다. 빨리 돌아가서 우리 아이들과 함께 한가로이 뛰놀며 단란한 저녁시간을 보내고 싶을 뿐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등대지기학교가 아니었다면 상상하지 못했을, 평범하지만 너무나 행복한 한국에서의 우리 가족 저녁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