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2010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주관한 
"아깝다 학원비" 단행본 출판 기념 국민 수기 공모전에 우수작으로 당선된 글입니다. 



“자유 시간이 참 없구나”


김원미 (42세, 교사, 서울 송파구)


저희 집 아이들에게는 시간표가 각각 2개씩 있었습니다. 하나는 학교 시간표, 또 하나는 학원 시간표 - 큰 아이가 학교 입학 하자마자 일하는 엄마로서 자연스럽게 학원 스케줄을 잡기 시작하였고 아이들은 거의 매일 2~ 3군데 이상의 학원을 다녔습니다. 저학년땐 주로 피아노, 미술, 태권도부터 시작해서 영어, 수학은 꼭 들어 있었지요. 제가 퇴근하고 집에 오는 시간까지 아이들을 그냥 집에 둔다는 것은 '위험한 일’ 이었고 그나마 근처에 사시며 아이들을 가끔 보시는 할머니의 육아 부담을 덜어 드리려는 ‘배려’도 있었습니다.

큰 아이는 워낙 처음부터 학원을 여러 군데 다녀서 초등 5학년인 지금까지 그럭저럭 이런 생활 -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자기 또래 친구들 누구나 그렇듯- 에 적응하는 듯했고 고집 세고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작은 아이(2학년)는 학원 순례에 대한 저항이 컸습니다.

한 번은 제가 직장에서 일찍 돌아온 날이 있었습니다. 두 아이들보다 먼저 와서 학교 끝나고 온 아이들을 오랜 만에 집에서 반겨 주었는데 간식 챙겨 주기가 무섭게 아이들의 학원 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날 오후 내내 집에 있으며 보니 이렇게 학교 끝나고 집에 온 아이들이 학원 몇 번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하루가 금세 다 가는 것이었습니다. 의외로 아이들에게 ‘자유 시간’이 참 없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가슴이 저려 왔습니다.

그러나 가슴 저리던 그 시간도 어느새 잊혀지고 큰 아이가 기말고사를 본 후에는 다시 학원 고민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사고력수학학원’이라는 곳엘 다른 곳보다 더 비싸게 다니며 공부시켰건만 효과는 잘 모르겠고. 여간 해서 잘 오르지 않는 성적, 좀 늦되는 아이들도 있다지만 그래도 못 한다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할텐데... 하는 자괴감,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같은 아파트 아이들에게 ‘넌 어디 학원 다니니?’ 하고 물으며 소위 정보 수집이라는 것도 해 보며 한참 학원 고민이 깊어 질 때 쯤 둘째 아이의 영어가 또 문제였습니다. 둘째는 입학과 동시에 동네 영어 학원에 보냈는데 저학년인데도 슬금 슬금 자꾸 올라가는 학원비도 만만치 않고 해서, 학교에서 하는 방과후 원어민 영어 교실을 보냈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엔 아직 받아쓰기도 서툰 아이에게 웬 단어 암기 숙제가 그리 많은지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교재에 몇 번씩 쓰고 시험을 본다는 것이 기가 막혔습니다. 학교 방과후 교실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원어민 선생님과 매일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저녁마다 학원 숙제했느냐 챙기며 실갱이하다 녹초가 되어 쓰러져 자는 나날이 계속 되었습니다.

 

<아깝다 학원비>와의 만남, 그리고 등대지기 학교

올해 여름이었습니다. 우연히 어느 세미나 홍보 부스에서 ‘아깝다 학원비’라는 소책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작은 크기라 금세 읽었는데 읽고 났을 때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그 시원함이라니....

“영어 공부 초등 3학년 때부터 해도 결코 늦지 않다, 영어 몰입 캠프 별 효과 없다, 맞벌이 부부라고 학원 많이 보낼 것 없다 특히 ‘아이는 스스로 자란답니다’ 라는 말이 참으로 크게 다가왔습니다. 나는 과연 아이들이 스스로 자라날 수 있는 시간이라도 주어보았나 하는 부끄러움과 함께.

집에 오자마자 소책자 50부를 주문했습니다. 작지만 너무도 알찬 이 책을 혼자 보기 너무 아까웠던 것입니다. 우선 남동생 부부와 맞벌이하는 아이의 친구 엄마에게 보내주었습니다. 동네 헬스장 코치님에게 건넸더니 주변에서 너도 나도 관심을 보이시길래 아예 넉넉히 헬스장에 가져다 놓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큰 아이는 영어 학원, 작은 아이는 좋아하는 미술 학원 빼고 모두 과감히 정리했습니다. 갑자기 시간이 많아진 아이들 - 무척 좋아하긴 했지만 바라보는 저는 때때로 ‘정말 잘 한 걸까?’ 하는 불안감이 문득문득 들곤 했는데 10월부터 등대지기학교의 개강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당연히 온라인으로 강의를 들을 생각이었는데 마침 걸려온 권유전화로 한 번만 가서 들어보자 했던 것이 지금껏 계속 되고 있습니다. 박재원 소장님의 첫강의! 충격, 감동 그 자체라고 해야 할까! 사실 애써 외면하던 ‘불편한 진실’과의 대면이라는 말이 더 옳을 듯.

 

학원 정리 그 이후

학원 숙제에 치이던 아이들을 학교 복습 위주의 모드로 바꾸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괜히 나만 순진하게 학원 끊었나 하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할 무렵, 김성천 선생님의 복습과 동기 부여에 대한 내용, 이병민 교수님의 영어 조기교육에 대한 허실 등 등대지기 학교에서 소책자보다 좀 더 깊이 있게 다뤄지는 여러 강의들은 자주 무장해제 되려는 제 마음을 다잡아 주었습니다.

석 달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은 조금씩 변화 되는 아이들의 모습, 그리고 그런 변화를 보며 저 역시 변화됨을 느낍니다.

어느 날은 움직이기 싫어하던 경도비만의 큰아이가 집에 와도 할 일이 없자 제 동생과 함께 공원에 배드민턴을 하러 가더니 요즘은 스스로 도서관을 갑니다. 몇 주 전부터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책도 읽고 간식도 먹고 오곤 했는데 얼마 전부터는 큰아이가 영어학원 없는 날이면 버스 두 정거장 정도의 거리를 걸어서 혼자 도서관에 가서 수학 문제집도 풀고 책도 읽고 옵니다. 물론 매점 가는 재미와 열람실 좌석표 뽑는 것에 대단한 흥미를 붙인 이유도 있지만 엄마가 집에 없는 그 시간 동안 집에서 뒹굴지 않고 밖에서 활동을 한다는 것은 적어도 큰아이에겐 큰 변화임이 틀림 없습니다.

무엇보다 지금은 제 마음이 편하고 넉넉해진 것이 참으로 고맙고 기쁠 뿐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살아 남으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공부, 경쟁 그런 것에서 물론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과의 만남을 통해 교육에 대해 새로운 눈, 아니 어쩌면 애써 외면해왔던 평범한 진리들 - 아이에 대한 사랑, 믿음, 기다려주고 지켜봐주기- 을 이제 믿고 실천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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